[장행훈 칼럼]

공영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9월 4일 파업에 들어갔던 문화방송(MBC) 기자 피디들이 12월 10일 최승호 전 피디가 사장으로 선출돼 부당하게 해직된 기자와 피디 6명을 전원 복직시킨 뒤 170일간의 파업을 끝내고 정상으로 돌아갔다. 최승호 사장도 해직 피디 중 한 사람이다. 촛불혁명이 이명박근혜 정권이 박살낸 MBC를 원상회복할 수 있는 기틀이 잡혀 가고 있는 것 같다. 시사 주간지 <시사인>이 실시한 2017년 여론조사에 의하면 MBC는 한국에서 가장 불신받는 언론매체 1위(22.4퍼센트)로 조선일보(20.7퍼센트)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시사인>이 2009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MBC는 32.1퍼센트로 가장 신뢰받는 언론매체였었는데.... 전두환 집권 때는 “땡전 뉴스”에 진저리가 난 시청자들이 단골로 보던 뉴스 채널이었는데....

그런 MBC를 이렇게 추락시킨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언론을 정권의 시녀로 만들기 위해 낙하산에 실려 보낸 김재철 사장이었다. 최승호 사장 체제가 왕년의 명예회복을 위해 단단히 각오를 다짐하고 있다니 기대해 보려고 한다.

한데 KBS는 이명박근혜 정권의 꼴라보로 비치고 있는 고대영 사장과 대다수 사원들 간에 생각이 달라 보인다. 고 사장은 사원들 사이에 신망도 높지 않은 것 같고 국정원이 노무현 대통령 수사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보도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받고 현금 200만 원을 받았다는 보도로 수세에 몰려 있으면서도 자리를 물러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본인이 KBS보도국장, 사장으로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충실한 꼴라보 역할을 한 것에 대한 가책도 전혀 없어 보인다. KBS의 개혁을 위해서는 빨리 퇴장해야 할 인물 아닌가. 고 사장은 파리 특파원 경험도 있다. 사회가 꼴라보(협력자, 부역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도 잘 알 것 같은데 버티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프랑스의 꼴라보는 나치 점령군에 대한 반역행위지만 자국의 반민주 정권에 붙어 좀 출세했다고 그게 뭐 큰 죈가 하고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정의를 중시하는 언론인에게는 두 가지가 크게 다를 게 없는 게 아닌가.

2차대전 후 프랑스인들은 나치 점령하에 꼴라보들을 엄하게 처벌했다. 언론인들은 재판을 받고 부역의 정도에 따라 언론인 복귀가 금지되거나 복직하는 데 햇수의 제한을 받았다. 프랑스에서는 금년까지 80년간, 전업기자 신분증이 없으면 언론인으로 활동할 수 없는 제도가 있다. 신분증은 매년 갱신하며 갱신 때 심사를 받는다. 언론매체 노사 대표가 동수로 참석해 심사한다. 탈락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이런 심사 제도가 있다는 것은 기자가 언론인 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 기자 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는 심리적 압박을 주기 때문에 탈선을 자제하게 하는 심리적 효과가 있다. 우리 언론계에서도 검토해 볼 만한 제도라는 생각이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자유는 그 혼이다. 그러므로 언론자유 없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 스스로 민주주의라고 표방하지만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국가를 민주국가라고 간주하지 않는 주요한 이유의 하나가 언론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도 매년 국제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파리의 ‘국경없는 기자회’와 미국의 프리덤하우스의 언론자유 평가를 받는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 매긴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는 세계 180개 국 중 31위였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 들어 그 순위가 계속 떨어져 박근혜 정권 말기에는 70위까지 내려갔다가 작년에 오랜만에 두 자리를 줄여 68위가 됐다. 박근혜 정권 때도 언론자유 순위는 연속 하락했다.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 우리의 언론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객관적으로 보여 주는 수치다. 프리덤 하우스는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을 민주국가로 보기 어렵다고 ‘부분적 민주국가’로 강등시켰다. 한국 민주주의의 수치였다.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한국은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유한국당은 자기들의 당수인 박근혜 정권의 언론정책이 얼마나 반 민주적이었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그런데도 오늘의 한국당은 이명박근혜의 MBC나 KBS의 정책을 개혁하려는 문재인 정권의 개혁을 반대하고 있다. 정치보복이라고 소리친다.

지난 12월 8일, 5년 만에 박성제, 박성호, 이용마, 정영하, 강지웅 등 MBC 해직 언론인 6명이 복직했다. (사진 출처 = MBC뉴스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 갈무리)

이명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언론을 정치도구로 남용했는지는 두 정권의 언론정책을 일별하면 금방 드러난다. MBC와 한국방송이 2012년과 2017년 두 차례 170일과 70여 일의 장기 파업을 단행했다. 청와대가 정권의 지시를 잘 따르는 낙하산사장을 임명해 두 공영방송을 정권의 도구로 농단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국민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게 만든 것에 대한 항의인 동시에 이제 정권이 바뀌었으니 공영방송다운 방송을 하게 해 달라는 결의의 표현이었다.

언론노조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5년간 정부의 언론장악에 반대해 싸우다 방송 언론인 17명이 해고당했다. 132명이 정직 처분을, 66명이 감봉 처분을, 120명이 경고 처분을, 그리고 62명이 대기발령을 받는 등 언론인 400여 명이 징계를 받았다. 언론자유의 사명을 이행하게 해 달라는 방송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징계했다. 세계 방송사에 기록될 폭거였다. 이것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다.

보수 언론은 어땠나? 12년 대선 때 국정원이 박근혜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댓글 부대를 모집하고 군 사이버사령부까지 동원해서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막판에 드러났다. 민주당원들이 이를 고발하려고 행동에 나선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대선 후 가톨릭 성직자들이 이를 문제 삼아 전국을 돌며 순회 미사를 올렸다. 그러자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댓글 수사를 견제했고 보수언론은 수사를 계속하려는 검찰총장을 몰아내려는 정부의 음모에 보이지 않는 공동 전선을 폈다. 끝내 채동욱 총장의 혼외 아들 소재를 알아냈다. 최대 보수 신문은 자사 기자들이 열심히 취재해서 그걸 알아냈다며 신문에 요란하게 선전했다. 그러나 2014년 2월 미 국무부가 발표한 인권보고서는 혼외 아들 소재를 알아낸 것은 정보기관이었고 정보기관이 이를 신문에 알려 준 것이라고 기록 발표했다. 박근혜정권과 보수우익 언론이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합작한 증거 아닌가?

이 같은 사실은 최근 국정원 TF팀 조사로 전부 사실로 밝혀졌지 않았나? 이건 언론이 아니라 정권의 보호견(保護犬) 아닌가? 경찰 수사도 국정원과 경찰이 사전에 시나리오를 만들어 합작한 사실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았나? 그러고도 박근혜의 득표수는 문재인 후보보다 불과 100만 표를 좀 넘을 정도였다. 댓글이 없었으면 당선은 어림도 없었으리라는 추리가 가능하다.

언론은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소중한 무기다. 그러나 동시에 재벌 또는 정치세력과 유착해서 민주주의를 파괴할 수도 있는 사탄의 비수가 될 수도 있다. 언론이 세계 도처에서 동네북 신세가 되고 있다. 경언(經言) 또는 권언(權言) 유착의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친구이면서 경계를 게을리할 수 없는 위험한 동반자로 경계할 대상이다. 언론인이 그걸 알고 스스로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부단히 반성해야 한다.

'장행훈 칼럼'은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1년 정도 쉬었다가 다시 시작됩니다.

 

 
 

장행훈(바오로) 
언론인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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