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모든 성인들' 이콘, 독일 부르크 딩클라게 성 스콜라스티카 베네딕도 수녀원 제작, 2017. (이미지 제공 = 박유미)

11월, 보이지 않는 어두움 속에서도 더 더욱 깊은 곳으로 
산 이와 죽은 이 함께 생명을 품어 안아가는 시간을 향하여 
로마의 판테온 성전, 켈트족 풍습을 담은 할로윈 안에 담긴 구원의 길을 향한 선조들의 성찰과 노력을 새겨 보며 
삶과 죽음을 넘어, 죄와 인간의 부족함을 넘어 함께
평화와 구원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시는 사랑의 신비 안에서
작은 묵주 손에 쥐고 기도 드린다.

"우리를 바로 일으켜 세우시고, 굳세고 강하게 하시어
함께 공동체로 사랑과 정의의 기반 위에 굳건히 서서                           
창조하신 모든 것의 구원과 평화를 이루는 당신 영원한 권능에 참여하게 하소서.“

10월도 마지막, 로사리오 성월을 보내며 위령 성월로 접어드는 시기에 있다.

가을을 지나 겨울로 접어드는 길목. 풍요롭게 추수를 마치고 다음해 농사를 시작하기까지 준비하며 기다리는 시간이 시작되는 때. 자연스럽게 기쁨과 두려움이, 삶과 죽음이 마주하는 시간이다.

동방 정교에서 추수를 마친 뒤 9월 1일을 전례력의 시작으로 하고, 저 북쪽 여름과 겨울 두 계절을 지녔던 아일랜드의 켈트족이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했듯이, 여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 한 해 추수를 마치고 다음 농사를 기다리는 시기를 감사의 축제로 마치며 새해를 시작하는 곳들이 있어서 여러 번 삶의 매듭을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런 시기에 교회는 신학적으로 그 의미를 담아 위령 성월을 지낸다.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을 모두를 살피고 다스리고 구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뜻 안에서 살아 있는 이들과 돌아가신 분들의 통공을 새긴다.

'모든 성인들의 날과 위령의 날', 독일 남부 보덴 호수 인근 마리아첼 공동묘지. (사진 제공 = 박유미)

오랫동안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과 전례력에 담긴 토착화를 중심으로 이 시기를 성찰하다가, 이번 글을 준비하며 문득 산 이와 죽은 이들의 '통공'에 생각이 머무니, 로사리오 성월의 의미도 또한 새롭게 다가온다. 로사리오 성월은 계절이나 그리스도교 이전의 풍습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지만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의 통공에서도 구원의 도구로서 위령 성월에 연결되고 있다는 새로운 깨달음. 이런 경험을 통해서도 어느 시각에 매여 있으면 보면서도 가려져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고, 그런 만큼 새롭게 눈이 열리는 깨달음의 순간은 늘 새롭고 풍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위령 성월의 시작에 자리 잡은 모든 성인들의 날과 이어지는 위령의 날. 역사를 돌아보면 남쪽의 로마와 북쪽의 아일랜드 지역의 풍습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연결해서 설명하는 토착화와 연결되어 있다. 초대교회 때 박해 속에서도 영원히 하느님 집에 머물게 되리라는 믿음으로 기꺼이 순교하신 모든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기리던 것에서 이어져 오는 '모든 성인들의 날'. 잘 알려져 있는 성인들만이 아니라 하느님만이 아실 뿐 우리에겐 이름조차도 알려져 있지 않은 순교성인들 모두를 기억하는 날.  

아레오파고스에서 아테네인들에게 그들의 신전에 세워져 있던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한 설명으로 그리스도를 전했던 사도 바오로(사도 17,23)처럼 교황 보니파시오 4세가 609/610년 5월 13일 로마의 모든 신들을 모신 신전 판테온을 성모님과 순교성인들을 기념하여 봉헌하면서 부활시기의 마지막, 성령강림 다음 주에 기념하며 그들 부활을 기리던 날이었다. 여러 신을 섬기던 지역민들의 신앙을 그리스도 신앙 안에 성모님과 성인들과 함께 연결하여 이해하도록 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백 년도 훨쩍 넘어 교황 그레고리오 3세 때에 성 베드로 성당에 모든 성인들을 위한 경당을 봉헌하며 로마에서 11월 1일을 모든 성인의 날로 경축하도록 하였고, 835년 그레고리오 4세가 서방 모든 교회에 이를 선포하였다.

'모든 성인들' 색유리창, 쾰른 대성당 니콜라오 경당, 1330년경. 고딕 양식 중 독특한 양식. 천궁을 상징하는 푸른 하늘 위에 봉헌자 문장 두 개가 놓이고, 그 위에 9품 천사들이 그에 해당하는 사람들과 번갈아 배치되며 열을 이룬다. 제일 위에 왕관을 쓰신 마리아와 그리스도가 자리 잡고 있다. (사진 제공 = 박유미)

그리고 10세기 말 급격한 변화와 개혁시대에 클뤼니 개혁수도원에서 모든 성인들의 날 다음날인 11월 2일을 죽은 모든 영혼들, 특히 아직 성인들과 함께 하느님나라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날로 정한 것이 수도원들과 로마로 퍼져 가며 모든 교회에 전해지게 되었다. 모든 영혼들을 위한 '위령의 날'은 특히 연옥에 대한 교리와 함께 연옥 영혼들을 위한 기도의 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천상 하느님나라에 있는 성인들과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이 기도와 덕행으로 연옥 영혼들을 구원한다는 '통공'의 의미다. 교회에서는 특히 11월 첫 번째 8일을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와 보속의 기간으로 정해서 이때에 묘지를 방문하고 이분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연옥 영혼들에게 더 큰 구원의 힘이 전해진다고 가르친다.

이것은 다음에 한 번 더 나누게 되겠지만, 11월 말 산 이와 죽은 이 모두를 다스리시는 '그리스도 왕' 대축일과 연결되며 구원사 안에서 통공의 의미를 완성하게 된다. 

이 시기를 성찰하며 내게 첫 번째로 눈을 열어 준 할로윈, '모든 성인들의 날 전야제'라고 해석되지만 사실은 '모든 성인들의 날' 다음날인 '위령의 날'에 연결된다. 할로윈과 모든 성인의 날 연결에 대해 논쟁이 있기는 하지만, 할로윈으로 인해 모든 성인의 날과 연령의 날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켈트족의 풍습을 지니고 있던 아일랜드인들의 신앙 토착화 과정, 그리고 그런 전통을 가지고 아메리카로 이주한 아일랜드인들의 풍습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오늘날 상업적으로 많이 변질되기는 했지만, 신앙 안에서 그 원래의 종교적 의미와 오늘날까지 믿음을 전해 온 선조들의 노력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 

'연옥', 독일 오버슈바벤의 성당 제대화, 1510년 경.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중요한 시기마다 제물을 바쳐 복을 기원하고 신을 위한 축제를 했던 켈트인들, 그중 가장 중요한 축제의 하나가 여름을 마치고 겨울로 넘어가며 새해를 시작하는 Samhain이다. 유대인들처럼 켈트인들에게도 저녁에 하루가 시작되는데, 그들은 해가 바뀌는 이날 어두운 시간이 산 이와 죽은 이의 세상 경계가 얇아져 두 개의 세계가 접하는 시간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가 용해되어 있는 시간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죽은 이들이 살아 있는 가족들에게 돌아오는데, 이중 가족이나 집이 없어진 사자(死者)들은 마을을 헤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못된 짓을 하기 때문에 이들을 피하기 위하여 집 안에 있는 불을 모두 끄고 바깥 다른 곳에 불을 피워 이들이 불빛을 따라 다시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가도록 하고 무서운 가면과 시끄러운 소리로 이들을 쫓기도 했다. 

원래 순무로 만들었던 등을 북미로 이주하며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호박으로 대치해서 만들었다. 일찌감치 그리스도교화된 곳으로 그리스도교화된 뒤에도 이들의 풍습을 유지하도록 했지만, 악령을 쫓기 위한 의식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미래 구원의 완성을 향해 가는 구원 과정으로,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성인들의 통공을 기억하며 따르는 '모든 성인들의 날 전야제'로 연결하며 그들과 함께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로 이끌도록 했다.    

'연옥 연혼을 위한 효과적 기도'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이름도 알려져 있진 않지만 어느 때 어디선가 하느님의 빛을 밝혔던 분들, 그리고 오늘 하늘나라에서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고 청하고 계신 분들을 기념하고 기리면서 우리 또한 죽음을 넘어 새로운 삶을 바라며 살아가도록 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고 지상에 있는 우리와 천상에 있는 모든 이들이 연대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려 했던 것.

이런 '통공' 안에서 우리 신앙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로사리오 기도의 힘은 연옥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힘으로도 작용한다. 산 이와 죽은 이를 모두 평화와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힘이 되는 로사리오 기도의 달이 위령의 달에 이어진다는 것이 이런 점에서도 내게는 새로이 아주 의미 깊게 다가온다.

11월, 보이지 않는 어두움 속에서도 더더욱 깊은 곳으로 함께 생명을 품어 안아 가는 시간을 향하며 삶과 죽음을 넘어, 죄와 인간의 부족함을 넘어 함께 평화와 구원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시는 사랑의 신비 안에서 작은 묵주 손에 쥐고 베드로 사도의 기도를 드린다.   

"그리스도 예수님과의 공동체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도록 저희를 불러 주신 모든 은총의 하느님, 저희를 바로 일으켜 세우시고 굳세고 강하게 하소서. (당신 사랑과 정의의) 단단한 기반 위에 굳건히 세우소서. 당신의 권능 영원하리이다. 아멘." (베드로 사도의 첫째 편지 5,10-11)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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