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14일은 십자가 현양 축일이다. (이미지 제공 = 박유미)

: 구원의 시작이자 마침이신 그리스도

'오메가'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의 길,

시대의 징표에 따라 생명과 평화 이루어 가는 복음화의 길

가장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에 순교자 성월이 있다. 그리고 글을 쓰려는 이 시기에 14일 십자가 현양 축일, 15일 성모 통고, 그리고 17일 빙엔의 힐데가르트 축일, 그 이틀 지나서 내게 특별한 수산나 성녀의 축일까지 연이어 있다.

힐데가르트 성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가 막상 글을 쓰려 앉으니 이번엔 십자가 현양, 그리고 성모 통고의 의미가 같이 겹쳐 온다. 성주간 수난과 십자가의 길은 부활을 향해 가는 길의 의미라면 십자가 현양 축일과 성모 통고는 부활 이후에 구원을 위한 고통을 다시 보는 의미, 그래서 어쩌면 우리 삶을 더 담아서 보게 되는 날이어서일 것이다. 힐데가르트 축일을 기념하고 기리는 의미들도 이와 같다. 어느 시대에나 그러했듯이 그 시대의 상황에서, 오늘 우리의 상황 안에서 그리고 시대의 징표에 따라 변화하고 새로워지는 신앙의 길을 생각하고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배하나이다.
그 안에서 우리에게 구원이 되고 부활과 생명이 되었나이다.
당신의 십자가를 통해 저희가 구원되고 해방되었나이다."
 

아이빙엔 성 힐데가르트 수녀원 성당. 성녀 빙엔의 힐데가르트 죽음에 하늘에 거대한 십자 표시가 나타나다. 성인으로서, 십자가의 구원에 함께 하였음을 보여주는 표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진 제공 = 박유미)

"전능하신 하느님/ 당신 뜻에 순명하여/
당신 아드님이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셨나이다.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저희가 십자가의 어리석음에서
당신의 힘과 지혜를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영원 안에서 구원의 열매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십자가 현양 축일의 시작기도와 낮기도다.

십자가 안에서,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구원이 되고 부활과 생명이 되신 분, 그리고 그 구원을 중재하면서 잉태의 순간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고통을 기꺼이 담고 함께하셨던 어머니.

빙엔의 힐데가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한 질서, 우주의 시작이자 마침"이라 하고 어머니 마리아를 “모든 창조물을 중재하신 어머니“, "가장 빛나는 푸르름", "모든 창조물을 당신 아드님께 불러 모으시는 분", "여성의 본질에 담긴 축복을 일깨우시는 분"이라 노래하며 그 뜻을 기렸다.

'오메가 점' 전시회장. 아이빙엔 성녀 힐데가르트 수녀원 지하 전시실. 시대별 그리스도의 얼굴과 성녀 빙엔의 힐데가르트, 튀링겐의 엘리사벳을 나타내는 관과 유골함이 배치되어 있다. (사진 제공 = 박유미)

작년 힐데가르트 축제기간 독일 아이빙엔 힐데가르트 수녀원에서는 특별한 전시회가 있었다. 필립 쇤보른 작가의 "오메가 점"이라는 전시회다. 그는 이 전시회에서 우주 진화 안에서 구원을 이끄는 동력이자 목표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떼이야르 드 샤르뎅과 성녀 힐데가르트, 그리고 자비의 성녀 튀링겐의 엘리사벳의 영성을 연결해서 표현한다. 

요한 묵시록 22,13의 말씀처럼 오메가는 떼이야르 드 샤르댕에겐 종점이자 목표점이다. 그는 하느님이 작용하시는 하나의 창조적 움직임 안에서 생명과 우주를 보았다. 아직 완성에 이르지 않았지만, 끊임없는 이 움직임은 유기체의 복잡성과 유기체적 통합으로 특징 지워진다. 떼이야르에 의하면 이런 움직임, 진화의 동력은 바로 사랑이다. 그리고 모든 존재의 유기체적 통합인 이 사랑은 이미 한 사람 안에서 온전히 실현되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래서 그는 요한 묵시록에 주어진 존엄의 이름, 오메가 곧 진화의 동력이며 지향이며 목표인 오메가로 그리스도를 불렀다.

이 전시회에서 작가는 모든 세기의 그리스도 얼굴을 80개의 사진 작업으로 전시했다. 모든 사진의 이마에 상징적으로 떼이야르 드 샤르댕이 창조적 진화의 목표점이라고 지칭한 오메가를 표시했다.      

빙엔의 힐데가르트도 이미 12세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선한 질서 우주의 시작이자 마침’이라고 했다. 그래서 작가는 뤼데스하임 힐데가르트 순례 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힐데가르트 유골함에 사진 작업으로 힐데가르트의 모습을 나타내고 또 자비의 성녀 튀링겐의 엘리사벳을 나타내는 관으로 작품을 그들에게 바쳤다.

베로니카의 수건에서처럼, 모든 세기에 사람들은 하느님의 얼굴은 볼 수 없다 하지만, 십자가를 통해 부활과 생명, 구원을 보여 주신 분의 얼굴을 보고자 했다. 그리고 그 바램을 표현했다. 이러한 사랑과 자비의 이끄심 안에서 구원으로 향하는 과정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금년 9월부터 "힐데가르트 순례의 길"을 시작한다. (사진 제공 = 박유미)

성인들에 대한 공경도 시대에 따라 내용과 형식이 변화한다. 900년 이상 지역 성인에서 보편 성인으로 공경을 받아 온 힐데가르트 성녀도, 당대에는 교회쇄신과 하느님의 뜻을 향하는 정의로운 정치를 하도록 경고하는 예언자적 소명으로, 어머니와 같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깃털로, 엄격한 금욕주의의 시대에 몸과 영혼의 관계를 일깨우는 실천가로, 종교개혁 시기엔 새로이 태동한 개신교 신학자들에게 교회쇄신의 정당성과 책임을 전한 예언자로서, 낭만주의 시대엔 아름다운 창조를 노래하고 자연과의 관계를 일깨우는 시인이자 음악가로, 교회비판과 무신론적 흐름이 강해지는 가운데 국가의 교회 탄압이 있던 문화혁명 시대엔 굳건하고 용감한 신앙의 모범으로, 산업혁명과 이주의 시기, 노동자와 여성문제가 대두하던 때에는 여성들에 담긴 축복과 책임을 일깨우는 교육과 복지시설 필요성을 드높이는 가르침으로 신자들에게 더 깊이 전해졌다. 그리고 현대에는 다양한 종교적 환경 안에서 기독교를 넘어서는 기본적인 종교성으로 종교간 대화에만이 아니라 문화에 미치는 영향과 치유의 힘으로, 환경문제가 대두하며 통합적 생태 영성으로 더 많은 관심을 일으켰다. 

순례의 행렬로, 연극과 노래, 문학으로, 그리고 음식 섭생과 음악, 미술, 자연 치료법, 그리고 그에 담긴 일상생활 안에서의 생활지침을 되새기기를 교육과 피정 프로그램으로....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 형식도 다양하게 펼쳐져 왔다. 

"하느님, 당신께서는 성녀 힐데가르트에게 천상의 선물을 주셨나이다. 비오니 저희에게도 은총을 주시어 그분의 자취와 가르침을 따라 세상의 어둠에서 나와 당신 영광의 빛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오늘 힐데가르트 축일에 그분의 유골함을 모시고 행렬하며 드리는 호칭기도의 마지막 기도다.

금년 9월부터 "힐데가르트 순례의 길"을 시작한다. (사진 제공 = 박유미)

"예언자적인 정신으로 가득하신 분,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는 분, 치유의 은총을 받으신 분, 약함 안에서 하느님의 힘으로 강하신 분, 하느님의 말씀과 업적을 전하는 분, 진리와 정의(법)의 투사, 혼란한 세상에서 빛을 비추는 별, 병자와 가난한 이를 도와주는 분“  많은 이름으로 그분의 가르침과 덕을 기리며‚ 창조물 안에서 하느님의 정신을 더 깊이 알아보도록, 모든 것 안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그리고 언제나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 따라가도록 도와주시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약속에 맞갖게 되도록 빌어 주실 것을 청한다.

금년 9월부터는 힐데가르트의 삶과 관련이 있는 장소들을 도보순례하는 137킬로미터 "힐데가르트 순례의 길"을 시작한다. 각각의 지점에서 자연과 역사와 가르침을 체험하는 길이다. 탈핵평화순례, 생명평화순례, 창조보전의 순례를 생각하게 된다.

덕과 악덕의 대화로 구성한 두 번째 비전서에 나오는 자비와 정의의 말을 다시 보며 구원을 향해 가는 순례자의 길, 이 세상에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나아가는 복음의 길을 그린다.

금년 9월부터 "힐데가르트 순례의 길"을 시작한다. (사진 제공 = 박유미)

"자비, 나는 공기와 이슬, 그리고 모든 푸르름 안에서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약초다.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넘쳐 있다.
.…
나는, 사랑의 눈으로 모든 삶의 어려움들을 살피며 모두와 결합되어 있다고 느낀다.
쓰러지고 부서질 것 같은 이들을 일으켜 세우고 그들이 회복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나는 어떤 아픔도 아물게 해 주는 연고이며 나의 말은 행복과 건강을 이룬다.“

금년 9월부터 "힐데가르트 순례의 길"을 시작한다. (사진 제공 = 박유미)

정의가 비겁함에게 대답한다.

"나는 샘솟는 물줄기의 근원에서 나왔다. 세상의 어떤 조건들도 나를 놀라게 할 수 없다. 나는 하느님의 가장 사랑받는 연인이니 그에게 머물고 그를 떠나지 않으리라. 겨울에 시들지 않고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는 모든 나무들을  꽃피게 하는 힘이니, 이글거리듯 뜨겁게 메마른 황야 에 쓰러지지 않는다,“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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