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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성 마르티노 축일, 어둠을 밝히는 어린이들의 축제[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성 마르티노, 추위에 헐벗은 거지에게 외투를 나누다.", 독일 마인츠 주교좌성당. (사진 제공 = 박유미)

11월 11일, 성 마르티노 축일
죽음도, 삶도 마다하지 않던 사랑과         
영원함, 천상에의 갈망으로 새겨진 신앙의 모범
어둠을 밝히는 등으로 이어 가는 
어린이들의 축제
그리고 충전을 위한 일탈의 계절, 
바보들의 계절 시작    

박해시대가 지나고 순교하지 않고 신앙의 덕으로 성인이 된 첫 성인, 투르의 성 마르티노(316?-397)


성 마르티노 축일은 우리나라에선 큰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지만 독일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큰 축제다. 특히 산타클로스로 많이 알려진 니콜라오 성인의 날과 함께 어린이들의 큰 축제일이기도 하다. 유치원 어린이들부터 청소년까지 모두 자신들의 등을 만들어 밝혀 들고 '성마르티노'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한 뒤 장작불 둘레에 모여 추위에 헐벗은 거지에게 자신의 외투를 나누어 주었던 마르티노 성인을 모습을 재현한다. 그리고 작은 무리로 집집을 돌며 노래하고 초콜렛 과자, 과일 등 선물을 받는다.

추위에 헐벗은 거지를 만나 자신의 외투를 나누어 주고 꿈에 예수님을 만나 자신의 길을 깨닫게 된 그는 로마 군사로서의 길을 버리고 사제가 되었다. 그리고 은수자와 같은 삶을 살아 가며 그 당시에 이미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의 수도원을 세우고, 사제로서, 치유자로서, 위기에 처한 이들을 도와주는 사람으로서 수도자 상을 모범적으로 보여 준 이상적인 수도자이자 정의의 의미를 살아 가는 신앙인, 사도적으로 세상을 향하고 받아들이는 모든 면을 연결해서 평생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의 이상을 보여 주었다.      

성 마르티노 행렬에 부르는 노래 셋.

'성 마르티노'
https://youtu.be/HrFwtGQyjfM

'나 등불을 들고 간다네'
https://youtu.be/oixRjkUsV1g

'등불, 등불, 등불'
https://youtu.be/6cV1o_JlgWY

(사진 제공 = 박유미)

은수자와 같은 삶을 살면서도 아프고 힘 약한 이들,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늘 함께하여 많은 이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고, 원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청으로(!) 주교가 되었다. 주교가 된 뒤에도 성 밖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금욕과 절제의 생활, 기도생활을 계속했다. 그래서 그의 이 뜻을 기억하는 의미로 그에 대한 공경이 가장 컸던 프랑스 지역에서 마르티노 성당은 늘 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다.

마르티노 주교는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는 것만이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고 약한 이들이 작은 잘못으로 중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헌신 노력했다고 한다. 이들을 위해서 추운 겨울 성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밤을 새우기도 하고, 의롭지 않다고 만나지도 않고 예를 표하지도 않던 고위 권력자를 찾아가기도 했다. 신성한 장소, 특히 켈트 족의 신목(神木)에 자주 가곤 했는데, 그렇게 이방인들의 신성한 곳, 전례, 축제와 풍습을 그리스도교적으로 새로이 되살리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였고, 또 늘 화해를 도모하며 뜻이 다른 이들을 받아들였던 사목자이기도 했다. 인근 지역에 잘못된 가르침으로 파문된 주교가 있었는데 주교, 사제, 부제들만의 시노드를 소집해서 비공식으로 파문된 주교를 초대해 시작 전, 비공식적 미사를 함께 드리며 참회경을 응송하고 이렇게 참회를 하였으므로 그도 공식 미사에 함께할 수 있다고 하여 화해와 사죄의 미사를 드리게 하였다. 그리고 공식행사가 시작되기 전 그 주교는 떠났다. 

법과 사랑을 모두 존중하고 배려하는 성인의 이런 자세 때문에 그때 그때 마르티노 성인의 행동이 못마땅한 이들도 이를 빌미 삼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행진이 끝나면 장작불 둘레에 모여 추위에 헐벗은 거지에게 자신의 외투를 나누어 주던 마르티노 성인의 모습을 재현한다. (사진 제공 = 박유미)

'화해'를 본인 성덕의 완수로 생각했던 마르티노 주교는 81살에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도 분열된 공동체의 화해를 위해 방문을 청하는 공동체를 찾아가 화해를 이루고 쇠약해진 몸으로 자신의 수도공동체로 돌아왔으나, '목자 잃은 양'이 될 자신들의 미래에 울며 의지하는 수도자들을 보면서, '고난의 짐'을 더 지워도 좋으니 당신 뜻대로 하시라고 눈물로 기도하셨다고 한다. "죽음도, 삶도 마다하지 않던 사랑과 영원, 천상에의 갈망!" 마르티노 성인의 삶을 돌아보며 돌아보는 구절이다.

미스텔이라 불리는 기생 나무.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유럽에서 마르티노 성인에 대한 공경이 크기도 했지만 그의 축일에 다양한 축제가 함께 있는 것은 이 시기가 원래 유럽에서 가장 성대했던 신의 축제, 북구의 신 보단의 축제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 년 농사가 끝나고 지내는 추수감사제와 같은 풍요의 축제이기도 하고, 품삯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남녀 일꾼들이 마음에 두었던 여인들에게 이 시기에도 아직 푸르르며 연록의 투명한 열매를 맺는 미스텔(기생 나무) 가지를 전하며 사랑을 고백하던 날이기도 했었다. 다음 해 농사가 시작될 때까지 휴식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유럽이 그리스도교화되면서 이 축제일 가까이 축일이 있는 마르티노 성인의 업적을 기리고 기억하도록 하는 축제로 예전 축제의 의미들을 받아들였다. 특히 어린아이들을 사랑했던 성인을 기억하며 어두움이 시작되는 시기에 아이들에게 빛을 밝히는 축제의 장이 되었다.

'마르티노 성인의 삶', 샤르트르 대성당. (사진 제공 = 박유미)

라인 지역, 특히 쾰른에서는 같은 날 밤이 되면 특별한 의미를 담은 어른들의 시간이 시작된다. 카니발 시기의 시작이다. 11월 11일 11시 시작이지만 대부분 밤에 카니발의 시작을 즐긴다. 일년 추수를 끝내고 휴식에 들어가는 시간, 이때부터 카니발의 정점을 이루는 재의 수요일 직전 카니발 축제까지가 카니발 시기다. 다섯 번째 계절, 바보의 계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특별히 11월 11일 11시에 시작하는 것은 숫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 때문이다. 12시 5분 전과 같이 삐딱한 선, 그리고 10계명을 벗어난 일탈의 숫자, 바보의 숫자 11은 카니발을 상징하는 숫자다. 이 기간 동안 각종 카니발 행사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행사위원회 위원들의 수도 11명이다. 계명의 틀, 질서의 틀을 벗어나 유쾌하고 흥겹게 유머러스하게 지내는 계절이라는 의미다.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군의 점령기를 거치면서 '11'이라는 숫자의 독일어 발음 'elf'를 기존 구제도를 뒤집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 평등(egalite), 자유(liberte), 박애(형제애: fraternite)의 이니셜로 보는 또 다른 의미가 덧붙여지기도 했다. 모든 가치들이 상대화되고 개인주의화 되어진 현대에는 이 바보들이, 바보의 숫자가 현대 사회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정말 많은 진리들이 바보 같아진 사회'를....

독일에서는 프랑스 점령군들이 주둔했던 중서부 지역, 쾰른과 마인츠 지역에 카니발이 큰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Koele Alaaf!"(쾰른 최고!) 카니발 때에 쾰른에서 누구나 연호하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쾰른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쾰른 카니발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한 이것을 보면 점령시절 축제로써 쾰른 사람들의 대동단결을 도모했던 역사적 배경에서 이 지역에 카니발이 더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거리 축제만이 아니라 대규모의 실내 카니발 축제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정치, 사회 풍자 만담이라는 것도 이런 점을 반영한다. 

'보름스 막사에서 율리아누스 황제에게 전쟁 참여를 거부하는 마르티노 성인', 독일 뮌헨글라트바하 성 비토 성당. (사진 제공 = 박유미)

11, 질서가 필요하지만, 질서가 잘 유지되도록 일탈의 충전이 필요함을 가르치는 지혜가 담긴 바보의 숫자! 일하고 쉬고 일정한 주기를 지니며 살아 가던 시대도 지나가고, 계절과 시간의 의미를 잃고 살아 가는 시대가 오면서 그 상징을 생각하고 택했던 옛분들의 깊은 삶의 지혜, 그 의미를 다시 돌아본다.

날짜조차도 전쟁을 반대하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을 이해하고 화해하며, 정말 의지할 곳 없이 힘없고 약한 이들이 중벌에, 과한 규제에 고통받지 않도록 사랑으로 헌신했던 마르티노 성인 삶의 의미가 배어 있는 날, 질서가 잘 유지되도록 짜여진 틀에서 벗어난 일탈의 충전이 필요함을 일깨우는 날, 그렇게 사랑과 화해, 정의와 평화를 이루어 가는 모습을 그려 본다.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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