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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사, 하느님을 향하도록 격려하는 힘[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대천사, 함께 하나로, 하느님의 뜻을 향하도록 지원하고 격려하는 힘
: 열 번째 천사의 열을 이루도록

토비아와 동행하는 라파엘, 미카엘, 가브리엘 (프란체스코 보티치니, 1470) (사진 출처 = commons.wikimedia.org)

9월 29일,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 축일이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구원의 완성 과정에서 모든 면에서 활동하고 작용하는 구품 천사들 중에서도 특별히 인간의 형태로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살피고 싸우고 도와주는 천사들의 최고존재들.

“하느님이 구원(치유)하셨다”라는 이름을 지닌 라파엘과 “하느님이 당신의 강함을 나타내신다”는 이름을 지닌 하느님의 전령특사 가브리엘, 그리고 “누가 하느님과 같겠는가”라는 이름으로 악에 맞서 싸우는 미카엘 대천사의 축일이다.

예전에는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대천사들의 축일을 9월 29일, 3월 24일, 10월 24일로 각각 경축했는데, 1969년 전례 개혁에 따라 미카엘 대성전 봉헌기념일에 경축해 온 미카엘 대천사의 기념일, 9월 29일에 공동으로 경축하게 되었다.

9월 29일 미카엘 대천사 축일은 493년 교황 젤라시오 1세가 로마에 미카엘 성전을 봉헌한 날이다. 미카엘 대천사의 날이라 부르며 기념하는 이날은 가톨릭교회에서만이 아니라 개신교를 비롯해서 그리스도교 전체에서 경축해 왔다. 중세에는 학교도, 농노들의 노동도 쉬는 휴일이면서 임대료나 소작료, 이자가 삭감되는 날이기도 했다.

농부들에겐 “이날 날씨가 좋으면 가을 한 달 날씨가 좋고, 비가 오면 축축한 가을이 이어진다”는 말이 전해 온다. 그래서 미카엘 대천사의 날에 성전에 모여 다가오는 가을과 겨울에 천사의 힘으로 도와주시기를 청했다. 삶의 구체적인 순간순간에, 창조물들과의 관계성 안에서 풀어 가야 할 일들이 ‘악’에 맞서 하느님 뜻에 맞게 이루어 가도록 힘과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천사들의 모습도 다양하게 표현된다. 미카엘 대천사의 형상들. (왼쪽부터) 쾰른 안드레아 성당, 반 데어 바이어작의 영혼 저울, 쾰른 대성당. (사진 제공 = 박유미)

하늘과 땅에서 악에 맞서 싸우는 천사들의 영주 미카엘은 그래서 많은 경우에 칼을 높이 들고 용을 떨어뜨려 밟고 있는 형상으로 많이 표현된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나라들의 주보성인이기도 해서 미카엘 대천사를 주보로 하는 성당과 수도원도 많다. 미카엘 대천사가 사후에 인간의 선과 악을 모두 가늠해서 심판하고 결정한다고 믿기도 했다.

4세기부터 이어 온 미카엘 천사의 영향에 대한 믿음과 공경이 9세기 이후부터는 성서에 나오는 다른 두 대천사, 가브리엘과 라파엘에 대해서도 확대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미카엘의 날, 미카엘 대천사에 대한 믿음과 풍속이 다른 두 대천사들에게 같이 적용됐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 악을 막아 주며 보호하는 대천사들의 힘이 날개로 표현되며 하늘과 땅 사이에 존재하며 이들을 연결하는 힘을 나타냈다. 성녀 힐데가르트는 세 개의 날개로 표현한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며 균형을 잡아 주는 세 개의 날개로.

구원의 힘 삼위일체, 빙엔의 힐데가르트

창조물들의 구원을 위한 힘으로 “누가 하느님에 비길 수 있는가”라는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인간의 삶의 조건, 창조물들의 삶의 조건에 악한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에 맞서 싸우는 대천사의 힘은 가을 수확에도 적용되며, 추수한 것에 대한 감사와도 연결되었다. 자연에 넣어 주신 하느님의 힘과 사랑에 대한 감사로.

오늘날 우리에게 막연한 듯, 때론 이단과 같이 보이는 천사들의 힘과 영향에 대한 믿음과 전례들을 다시 돌아본다. 신앙의 역사 안에서 초대교회로부터 인간의 약함을 인정하며 자연과 몸과 영혼, 이성과 감각, 순간의 모든 것들 안에서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하느님의 힘을 체험하고 희망했던 것을 볼 수 있다.

“영광스러운 천사들,/ 빛인 생명,/ 신성의 나락, 저 바닥에서/ 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다.

신비에 잠긴 창조의 어둠 그 한가운데서/ 갈망에 불타며./ 절대로 채워질 수 없는 갈망이어니.” (노래 21)

천사에 대한 힐데가르트의 노래다. 그들 안에 하느님의 숨결이 불어 간다. 이들을 통해서 기쁨의 맥이 뛴다. 여기엔 또한 모든 창조물 안에 신비로운 잠재력이 자리 잡고 있어서 천사들이 입김을 불어넣어 주고 손길을 대어 줌으로써 이들이 살아 생기를 띠고 펼쳐진다는 깊은 신뢰가 자리 잡고 있다.

천사들의 합창, 빙엔의 힐데가르트 첫 비전서 Scivias에서.

“오, 그대 천사들, 백성들의 수호자여/ 그대들의 얼굴에 그 백성들의 상이 환히 빛나고 있나니.

그대 대천사들, 의로운 이들의 영혼을 올려 맞아들이고,/

능품천사, 권품천사, 주품천사, 치품천사, 좌품천사 그대들

다섯이라는 숫자의 신비로 거룩한 원을 이루고 있어라!

빛나는 케루빔, 활활 타오르는 세라핌, 오, 그대들은/

하느님 신비의 인장이어니,

그대들 모두 찬미 받을지이다! 저 깊은 근원에서

영원한 사랑의 마음이 고동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얼굴을 보고 알아차리듯이

그대들 아버지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내면의 힘을 바라보고 알고 있으니!

찬미 받을지이다! 그대들이여/ 저 깊은 근원에서/ 영원한 사랑이 고동치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니.” (노래 21)

힐데가르트의 비전과 노래에서 보여지 듯이 천사와 인간은 창조 전체의 구원 계획이라는 하나의 계획에 붙여진 존재들로서 서로 함께 속한다. “하느님은 천사와 인간이 하나의 유일한 정신적인 현실세계를 향하도록 하셨다. 그분은 천사의 보호 아래 인간을 세우셨다.”

천사들 각각의 개별적인 특성은 별로 강조되지 않는다. 천사들은 오히려 서로 연결되고 연결하는 전체로서 이해된다.

“마치 몸이 각각의 지체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몸으로 머물 듯이 설사 각각의 천사들이 자신의 고유한 용모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 전체의 연계 안에서 하나다. 이렇게 천사들은 하나인 그들의 믿음과 지향으로 하나의 생명이다.” (책임 있는 인간 49)

하느님의 창조 계획이 반드시 완성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커다란 희망 안에서, 천사들은 삶의 모든 영역 안에서 창조의 완성에 협력하며 창조하신 하느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도록 인간의 책임을 일깨운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 안에서 깨어 움직일 때 인간의 본질이 더 높이 고양되리라는 것을 전한다.

“인간은 창조 때 원래 잃어버린 천사의 자리로 만드신 자리에 하느님 당신이 스스로 다시 세운 열 번째 열의 합창단이다. 하느님은 인간이 되시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이 되신 그분은 성이다. 열 번째 합창단인 이들이 그곳에서 변화하는 성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인간 안에 더 높은 창조물들만이 아니라 더 낮은 창조물들도 표해 놓으셨다.”

그 작업이 이루어지고, 시간이 채워지고, 마지막 투쟁이 이루어지고, 또한 세상의 잠재력이 발휘되었을 때, 바로 그때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이시다. 그리고 인간은 열 번째 천사들의 합창단이 되고 완성된 창조의 찬미 노래에 입을 맞추게 되리라.

미카엘 대천사의 축일에 담긴 이런 바람들과 일깨움의 구체적인 모습이 다른 대천사들에게 확대되었듯이, 대천사들의 힘과 도움을 향하는 축일에, 완성을 향해 가는 창조의 과정에서 하나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창조물들에 대한 우리들의 구체적인 실천과 덕을 그려 본다. 열 번째 천사의 열을 이룰 수 있도록.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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