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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캔 스피크', 가련하지 않고 당당하게 역사의 피해자를 그리다[주말영화 - 정민아]
'아이 캔 스피크', 김현석, 2017. (포스터 제공 = 리틀빅픽처스)

노인과 청년이 티격태격하다가 서로 돕고, 화합하고, 결국 목표를 이루는 이야기 구조를 갖춘 영화로, 로맨틱 코미디나 가족 드라마의 변형이다. 

눈에 들어오는 대로 뭐든 민원을 넣는 민원왕 80대 옥분과 원리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는 30대 9급 공무원 민재의 인연은 이상하게 엮인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만나게 되고, 그리고 오해를 하고, 그러다 오해를 풀고, 서로 애틋하게 생각하며 돕다가, 또 갈등으로 인해 헤어지게 되고, 그러다가 결국 하나의 목표 아래 합심하며 일을 풀고, 다시 두 사람의 일상으로 돌아가 행복감을 느끼는 이야기. 그러나 이 영화는 여느 코미디나 가족 드라마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한 순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영화다.

연출을 맡은 김현석 감독은 십 년 전에 이미 ‘스카우트’라는 영화로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서민 코미디에서 장기를 발휘하며 특유의 이미지를 쌓아 나간 배우 임창정 주연의 코미디 영화라는 겉모습을 띠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80년 광주를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서 어긋나 버린 로맨스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주인공들의 사연을 그린 슬픈 로맨틱 코미디다. 그 영화는 비록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10년 뒤 김현석 감독은 그날의 패배감을 ‘아이 캔 스피크’로 시원하게 날려 버릴 것 같다.

완성도가 뛰어나거나 세련된 영화는 아니다. 점점 영화의 속도가 빨라져 가는 가운데, 이 영화의 코미디적 속도감은 어쩐지 답답하게 느껴지며, 리듬감이 간혹 어그러지기도 하고, 코미디 감각도 조금은 올드하게 다가온다. ‘노인과 공무원’이라는 조합 그 자체 또한 신선하지가 않다. 여느 서민 코미디처럼 결국은 모두가 알콩달콩, 좋은 게 좋은 거다 라고 마무리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이 캔 스피크'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리틀빅픽처스)

그러나 필자는 이 영화를 적극 지지한다. 진정성과 묵직한 감동, 올바른 역사의식과 뜨거운 연대의식, 이러한 미덕들을 영화가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덜 세련되었지만 감동은 크다. 웃고 울리는 전형성을 반복하지만 비극의 역사를 한 개인의 드라마로 녹여 내는 솜씨가 훌륭하다. 아마도 일제강점기의 비극의 역사를 온몸에 지고서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을 이렇게나 생동감 넘치며 살아 있게 그리는 영화는 쉽지 않을 듯하다.

수선 집을 하며 홀로 사는 노인 옥분(나문희)은 온 동네를 휘저으며 무려 8000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어 도깨비 할매라고 불린다. 20여 년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그녀 앞에 원칙주의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나타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민원 접수만큼이나 열심히 공부하던 영어가 좀처럼 늘지 않아 의기소침한 옥분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민재를 본 뒤 선생님이 되어 달라며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부탁하기에 이른다. 둘만의 특별한 거래를 통해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영어 수업이 시작되고, 함께하는 시간이 계속될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게 되면서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 간다. 옥분이 영어 공부에 매달리는 이유가 내내 궁금하던 민재는 어느 날, 그녀가 영어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 캔 스피크'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리틀빅픽처스)

영화는 2007년 미 하원 의회 공개 청문회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0년에 걸친 노력 끝에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HR121)이 통과되었을 때, 증언을 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고 김군자 할머니의 증언과 삶에서 모티프를 얻어 극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옥분이 불법을 보고 도저히 참지 못하는 이유, 시장 상인들이 모두 함께 살아야 한다고 홀로 재개발에 맞서 싸우는 이유, 몸에 손을 대면 화들짝 놀라는 이유, 그리고 가능할 것 같지 않을 영어에 그렇게 매달리는 이유가 하나씩 풀리면서 펑펑 울게 된다. 그리고 그 눈물 이후 관객 모두는 다시금 이 이슈에 관심을 두고, 살아 계신 피해자 할머니들의 소원을 위해 다 함께 연대할 것이다.

이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에 생생함을 불어넣은 나문희 배우의 일생일대의 연기는 아무리 극찬을 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녀가 오랫동안 스크린에서 활약하기만을 바란다. 그녀 자체로 한국영화의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용기는 인생에 큰 귀감이다. 존재 그 자체로 귀하다.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학교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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