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 정민아]

▲ '군함도', 류승완, 2017. (포스터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2), ‘베테랑’(2014) 등, 사회현실을 가져와서 장르적 통쾌함으로 버무린 액션영화로 성공한 류승완 감독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하자 많이 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풍자적으로 현실을 비꼬며, 투박하고 거친 육탄전 장면으로 영화 속에 발랄함과 호쾌함을 불어넣어 영화적 생기를 가꾸어 가는 개성을 지녔다. 그러므로 일제와 조선 민중이라는 선악의 대립관계가 뚜렷한 일제강점기 영화를 어떻게 소화할지, 게다가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 천만 관객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입장에서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게다가 소재는 우리의 아프고도 어두운, 끝나지 않은 역사 ‘군함도 징용’이니 말이다.

이러한 묵직한 소재에 감독 특유의 연출 색깔인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이야기, 맨몸으로 거칠게 돌진하는 폭발적 액션 장면을 끼워 넣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이미 ‘베테랑’으로 천만 관객 영화감독 대열에 들어선지라 올해 여름 시즌 영화의 초점은 단연 류승완과 ‘군함도’다. 게다가 황정민, 소지섭, 송중기라는 스타 멀티캐스팅은 이 세 사람을 한 영화에서 만나는 드문 기회라는 점에서도 화제 만발이다.

역사를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상업성과 의미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역사를 상업적으로 소비한다는 평, 의미를 심기 위해 민족주의에 기댄다는 평, 국뽕, 신파 등등, 영화를 보기도 전에 위와 같은 평과 단어들로 점철될 것이 쉽게 예상된다.

역사적 무게로 짓눌린 소재임에도 영화는 오락 장르 영화로서의 색깔을 충실하게 보여 준다. 일제강점기 막바지에 일명 군함도라고 불리는 일본 하시마 섬으로 징용을 가게 된 조선인들의 섬으로부터의 탈출이 영화의 주요 사건이다. 탈출의 절정에서 펼쳐지는 일대 액션은 영화를 슈퍼히어로 영화처럼 보이게 한다. 영화 속 조선인들의 탈출은 실제 역사 위에 상상력으로 더해진 허구다.

때는 일제강점기 막바지인 1945년,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강옥(황정민)과 그의 하나뿐인 딸 소희(김수안), 그리고 종로 일대를 주름잡던 주먹 칠성(소지섭), 일제 치하에서 온갖 고초를 겪어 온 여인 말년(이정현) 등,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군함도로 향한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탄 배가 도착한 곳은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해 노동자로 착취하고 있던 지옥섬이다. 한편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자 광복군 소속 OSS 요원 무영(송중기)은 독립운동의 주요인사 구출 작전을 지시받고 군함도에 잠입한다.

군함도는 하시마 섬이라는 본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모습이 군함을 닮아 군함도라고 불렸다. 섬 전체가 탄광이며 1890년부터 미쓰비시 기업의 소유가 되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으로 전면전을 펼치자 조선인들은 징병과 징용을 당해야 했고, 1943년에서 45년 사이 약 500-800여 명의 조선인이 군함도에 징용되어 강제 노역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섬에서 죽은 이들은 공식 집계 134명이지만, 누락되거나 은폐된 사망자 수는 훨씬 많은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비극의 섬을 일본은 근대산업시설이라는 명목으로 2015년 유네스코에 세계유산으로 등재시켰다. 징용된 조선인에 대한 한마디 사과나 보상도 없이, 강제 징용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지워진 채, 섬이 일본 근대화의 상징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관광지로 홍보되는 현실에서 영화 기획이 시작되었다.

▲ '군함도'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세계대전을 다루는 할리우드 전쟁영화 같은 색채가 느껴진다. 거대예산 블록버스터답게 보편적 감정들에 호소해야 할 것이므로, 영화에는 음악과 춤, 액션, 부성애, 멜로, 민족의식까지 많은 요소들을 담아낸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군함도에 모여든 인간 군상 안에는 식민지 시기의 모순적인 다채로운 역사가 그려진다. 굴종하는 식민지인, 일본군 위안부의 비극, 자각하는 깡패, 열혈 독립운동가,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자보다 더 악랄한 조선인 친일 부역자까지 많은 것들을 담아내지만, 그만큼 캐릭터들이 평면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블록버스터가 인간의 내면보다는 외면적 활동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하는 특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이 아쉬움은 한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제와 조선이라는 선과 악이 분명한 구도를 통해 그려질 국가주의나 신파성이라는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동족을 배신한 친일파를 중심에 놓음으로써 조선인 내부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 점은 많은 논란 거리를 낳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가 우리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하여 많은 이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주류 상업영화로서 취하기 힘든 선택이기에 많은 논란에도 영화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싶다.

끝없이 아래로 내려가는 축축한 갱도의 처참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미술과 촬영 수준은 훌륭하다. 비극의 순간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화려한 액션으로 부활시킨 상상력에도 감탄하게 된다. 영화는 집단적 열망이며 기원이다. 정말로 영화에서처럼 괴력의 힘을 발휘하여 모든 조선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갔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린 소희의 단단한 표정처럼 우리나라가 굳세게 이들의 삶을 끝까지 지켜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학교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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