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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살인’ 냉철하고 뜨거운 기이한 역설의 스릴러[주말영화 - 정민아]
'세 번째 살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7. (포스터 제공 = 티캐스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로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다. 고레에다 감독의 초기작인 ‘아무도 모른다’(2004)가 칸영화제 경쟁작에 오르고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래, 그의 영화는 매년 부산영화제를 통해 소개되었으며, 이후 한국에도 개봉하여 좋은 평가와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등 따뜻한 가족영화를 만들던 고레에다 감독이 이번에는 과감하게 냉철한 스릴러에 도전했다.

승리밖에 모르는 변호사가, 자신을 해고한 공장 사장을 살해하여 사형이 확실시되고 있는 범죄자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살인이라는 중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를 변호해야 하는 변호사의 시점에서 차갑고 냉정하게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터라, 이전 고레에다가 보여준, 여름을 배경으로 한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이야기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

이 영화는 눈이 잔뜩 쌓인 겨울을 배경으로 하며, 강렬함과 냉철함을 무기로 하는데, 오히려 이전에 비해 영화세계가 훨씬 더 깊고 넓어진 느낌이다. 품격의 영화라고 할까. 사건을 파헤치는데 두뇌를 가동하며 이성을 날카롭게 발휘하게 되는 중반부를 넘어가면 결이 다른 결말부가 기다린다. 여러 차례 엎치락뒤치락 반전과 함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진짜 인간의 얼굴이 무엇인지 깨달으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스타일은 달라졌지만 고레에다의 인간을 보는 시선은 달리지지 않았다는 점으로 인해 그의 거장으로서의 깊이가 가슴 속에 오래도록 파문을 일으킨다.

고레에다 감독은 각본 집필을 위해 수많은 취재와 변호사들의 협력으로 모의접견을 진행하며 리얼리티를 강화하려고 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좋은 호흡을 보여줬던 후쿠야마 마사하루와 4년 만에 호흡을 맞추었다. 그리고 살인자 역으로는 한국에도 ‘우나기’, ‘쉘 위 댄스,’ ‘실락원’ 등을 통해 잘 알려진, 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가 등장하여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배우라 그런지, 마치 정우성-안성기 조합처럼 이들의 콤비 플레이는 안정적으로 다가온다.

자신이 다니던 공장의 사장을 살해했다고 자백을 한 미스미(야쿠쇼 코지)는 이전에 행한 살인죄로 오랜 기간 수감 생활을 했던 이력이 있는 인물이다. 이에 그의 변호인은 사형 선고만을 피하고자 승리밖에 모르는 냉정한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를 만난 후 미스미는 범행을 부인하고 유력 증인으로 피해자의 딸 사키에(히로세 스즈)가 증인을 신청하자 다시 진술을 번복한다.

'세 번째 살인'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티캐스트)

변호사 시게모리는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진실을 전하기보다는 의뢰인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하고 전략을 세우는 캐릭터로, 높은 승률을 자랑하며 자신감이 넘친다. 지난번 두 번째 살인으로 평생 감옥에 가두거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살인범 미스미는 재판 과정에서 조금씩 붕괴되어 간다. 악당을 변호하는 입장에 선 시게모리는 이 재판을 또 하나의 승리를 향한 게임으로 대한다. 그러나 진실이 자꾸 어긋나면서 반전이 거듭되는 순간, 진짜 악당은 누구이며, 선의를 위한 희생은 무엇인지, 거대한 딜레마에 빠진다.

승리를 위해 법정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방식을 별 고민 없이 답습하는 법조인의 모습에는, 인간을 배제한 승리논리에만 빠져든 현대 엘리트들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있다. 승률 높은 변호사까지도 알지 못하는 미궁에 빠진 사건의 진실 이면에는 인간본성에 대한 회의와 희망이라는 양극단의 태도가 복잡하게 어우러져 있다.

역시 영화의 백미는, 감옥에서 유리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변호사와 피의자가 마주한 채 진실게임을 벌이는 장면이다. 마치 이 세상에 두 사람만 존재하는 것처럼 마주보며 질문과 대답을 펼치는 가운데 거대한 진실의 이면이 드러나며 가슴이 울컥해진다. 카메라는 이 장면에서 단순한 공간을 빛과 그림자의 음영을 통해 화려하게 만들어낸다.

진실은 아프고 힘들다. 잔인한 범죄 스릴러 영화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인간본성에 대한 탐구와 사람의 얼굴에 대한 성찰이 가득 담긴, 격조 높은 스릴러의 등장이 반갑다.

'세 번째 살인'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티캐스트)
 
 

정민아(영화평론가, 성결대 교수)
영화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깊이 이해하며 
여러 지구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영화 애호가입니다. 
Peace be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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