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참여 폭 넓힌 수원교구 정평위

전국 곳곳에서 사회교리 실천을 강조하는 천주교 평신도 모임이 늘어나는 가운데, 같은 뜻으로 수원교구에서는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에 평신도 10여 명이 적극 참여하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8월 28일 오후, 서울 도심에 모인 이들과 만나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수원교구 각지 5개 본당에서 모인 평신도 8명과 교구 정평위원인 김하나 수녀가 이 자리에 함께했다.

이들은 이날 ‘조계종 적폐청산’을 요구하며 조계사 앞에서 단식 중이던 명진 스님과 만나고, 저녁에는 ‘세월호 아픔을 나누는 광화문 미사’에 참석했다. 이 모임과 명진 스님이 직접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인으로서의 연대였다고 한다.

모임은 2014년 봄 9주 동안의 사회교리학교 공부를 마친 신자 20여 명이 교구 정평위원장 최재철 신부와 함께 사회교리 문헌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시작하면서 만들어졌다. 매달 2번 모이는 모임이 2년 동안 이어졌고, 이어 배운 것을 실천해 보자는 뜻에서 거리 미사 참여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4대강 사업의 마지막 공사 구역으로 공사에 반대하는 시민들과 정부의 갈등이 컸던 ‘두물머리’ 등 수원교구 안의 문제 지역뿐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이 눈물 흘리고 있는” 전국 곳곳을 찾아갔다. 제주도 강정마을부터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의 질병 문제까지, 한국 가톨릭교회가 관심을 기울였던 사회문제 현장 대부분에 이들은 모임 차원에서든, 개인적으로든 함께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세계 구석구석의 소식을 곧장 보고 들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그저 독자나 시청자로서 매체를 통해 ‘보고 듣는다’는 것과 직접 그 자리에 가서 ‘사람들 곁에 선다’는 것은 크나큰 차이가 있었다.

연현순 씨(체칠리아, 산북 본당)는 ‘진실은 현장에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며, 직접 가서 만나지 않으면 진실을 모르고, 그곳 사람들이 무엇을 알리고 싶고, 무엇이 억울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지숙 씨(안나, 왕곡 본당)는 MBC, KBS 해직 기자들이 참여한 행사에 다녀온 경험담을 꺼내며 “9년 동안 싸워 온 해직자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 전에 김 씨는 ‘공영방송 볼 게 없다, 필요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문제에 관계된 사람들과 직접 만나 보면서 수년 동안 이어진 고통과 투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 천주교 수원교구 정의평화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평신도 8명과 김하나 수녀. ⓒ강한 기자

생각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기,
어렵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냐

이 모임은 이름이 따로 없고, 유연하며 개방적인 분위기였다. 다수는 주부이고, 고3 아이를 둔 어머니가 4명이다.

이들은 교구 정평위 회의에 참여하며 “위원”이나 “활동가”로 불리며, 지난 7월에는 전국 천주교 정의평화환경 활동가 연수에도 함께했다. 한편, 왕선아 씨(로마나, 과천 본당)는 자신들을 “평신도 참여자” 정도로 표현하는 게 어울린다고 말했다.

이들 중 다수는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한 평신도 참여가 한국 천주교에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런데 ‘사회교리’와 ‘현장’에서 배운 것을 각자 가정과 본당에서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백윤자 씨(루시아, 구성 본당)는 고3 때 1980년 5월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을 지켜봤다.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해 빚을 진 것 같은 마음이 지금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가족들에게는 “극성스러운 엄마”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가족 4명 중 1명이 움직이면서 나머지 3명이 변하는 것을 체험한다”고 했다.

이날 모인 이들 중 유일하게 남자였던 신용생 씨(스테파노, 기산 본당)는 “믿을 교리뿐 아니라 실천할 교리가 교회 안에서 꾸준히 확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문제에 대해 말하는 신자에게 격하게 반발하는 신자들을 볼 때마다 신 씨는 “같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괴리감이 있다”며 걱정스러워했다.

왕선아 씨의 경험은 조금 다르다. 그는 가톨릭대학생연합회 출신이기 때문에, 정평위 모임과 같은 분위기가 익숙하고 본당은 오히려 불편한 곳이었다. 그에게는 “젊을 때 배운 것을 본당에서 어떻게 나눌지가 숙제”였다.

그러나 본당 신자들과 함께 4대강 사업 문제 현장이던 이포보를 가거나 간첩조작사건을 다룬 연극 ‘상처꽃’을 관람하며, 모임의 결속이 잘 되고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성향이 다른 신자들이 서로의 관심사를 잘 나눌 수 있다는 경험을 했다. 그는 “본당에서도 되는 것이 있어서 너무 재밌다”고 했다.

▲ 지난 7월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센터에서 열린 천주교 정의평화환경 활동가 연수에 수원교구 평신도들도 참여했다. ⓒ강한 기자

머릿수 채운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내가 변한 것 느껴

이들 신자들은 대부분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는 사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존경하는 신부가 거리 미사를 집전한다고 하니 호기심이나 조그만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에 함께했던 것이다. 그러나 크고 작은 변화를 겪은 이들이 많았다.

최영림 씨(골롬바, 과천 본당)는 “두물머리 때만 해도 머릿수를 채우러 다니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오늘 당장’ 하게 되는 사람으로 변했다”고 했다.

이복순 씨(안나, 매곡 본당)도 자신이 변해 왔다고 생각한다며, 사회문제나 정치에 대해 더 알고자 하고, “내가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열심히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참여해도, 원하는 대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이 속상할 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점에서 지난 겨울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며 시민의 힘으로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체험한 게 중요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김지숙 씨는 “뭉치면 목소리가 커지고 많은 사람이 모이고, 운이 좋았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원하는 게 이뤄졌기에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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