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회교리학교 동문 모임 ‘더 나은 세상’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리학교 총동문회가 2016년부터 ‘사회교리 더 나은 세상’으로 이름을 바꿔 열띤 활동을 펼치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름은 “간추린 사회교리” 579항 등 다양한 사회교리 문헌에 나오는 표현을 따온 것이다.

지난 8월 21일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산하 여러 단체들과 함께 사드가 배치된 성주 소성리를 방문한 ‘더 나은 세상’의 평신도 회원 3명의 경험담을 들었다.

촛불집회에서 ‘깃발’을 들며 경험한 것

최근 활동 가운데 가장 인상적 경험을 묻는 질문에 ‘더 나은 세상’ 회장 박경수 씨(프란치스코, 56, 창동 본당)는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촛불집회가 열린 2016년 11월 5일은 백남기 농민의 장례미사가 있던 날입니다. 그분이 서울대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부터 돌아가신 뒤 시신을 지키는 일까지 저희 회원들이 돌아가며 참여했습니다. 장례 때 광화문광장까지 노제를 지낸 뒤부터 ‘더 나은 세상’의 촛불집회 참여가 시작됐죠.”

11월 12일 세 번째 촛불집회 때 ‘더 나은 세상’은 깃발을 만들어 들었고, 이 깃발은 마지막 촛불집회까지 시민들과 함께했다. 매번 5-10명의 회원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더 나은 세상’ 운영진에 속한 라종연 씨(그레고리오, 67, 목동 본당)는 “깃발이 있어서 천주교도 사회현실에 참여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신자들의 격려를 받았다”고 말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가운데 곁에 다가와 자신도 천주교 신자라고 밝히며 반가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촛불집회에서 박경수 씨는 “우리는 교회단체지만 다른 사회단체들과 함께 활동할 수 있다는 것,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는 것을 느꼈다”면서 “교회의 보석이라고 할 사회교리 원리를 갖고 움직였기에 마지막 촛불집회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 지난 8월 21일 경북 성주 소성리에서 사드 배치를 비판하는 평화 미사에 참여한 뒤 모인 서울대교구 사회교리 '더 나은 세상' 회원들과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 관계자들. (왼쪽부터) 박경수, 라종연 씨, 정평위 한순희 사무국장, 서정숙 씨, 정평위 박은서 연구원, 박경근 부위원장 신부. ⓒ강한 기자

사회교리학교 20년 넘었지만, 무관심과 오해도 여전

초기에 사회교리 공부, 보급이 주된 목표였던 서울대교구 사회교리학교 총동문회는 서정숙 씨(제르트루다, 69, 신대방동 본당) 등 사회교리학교 첫 수료생이 나온 1990년대 후반부터 여러 경험 속에 변해 왔다.

처음에 교구 사회교리학교는 3년 과정이었고, 수료생이 성당에서 사회교리를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 자격까지 줬다. 그래서 오래된 회원들은 직접 사회교리 교안을 만들어 발표 준비까지 했지만, 정작 본당에서 강의할 기회는 많지 않았던 것이 아쉬운 기억이다.

지금은 사회교리학교를 수료해도 교사 자격은 없다. 최근 한 성당에서 견진성사 교리교육을 사회교리로 채우면서, ‘더 나은 세상’에서 보낸 봉사자가 조별 토론에 참여하기도 했고, 이때 쓰인 토론 자료를 보완하고 있다.

교구 사회교리학교가 시작된 지 20년이 넘으면서 많은 신자들이 사회교리에 익숙해지고 의식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이를 신앙과 별개로 생각하거나 ‘사회주의’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세 사람의 체감이었다.

박경수 씨는 “사회교리주간에 강론자료도 보내 주는데 어느 본당에서는 사회교리에 대해 한 마디도 안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서정숙 씨는 ‘교회 자신의 복음화’도 필요하다며 “신자들의 의식이 높아졌기에 그것을 본당 신부님들이 따라가지 못하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배운 것을 동료와 나누며

‘더 나은 세상’으로 이름을 바꾼 최근,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모임의 사명을 ‘사회복음화’라고 확인하면서 실천 활동이 많아진 것이다.

서정숙 씨는 1970년대 김수환 추기경 비서실을 시작으로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등 서울대교구 기관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교구 사회교리학교가 처음 시작될 때, 사회사목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사회교리학교의 최초 수료생 가운데 한 명이 됐고, ‘더 나은 세상’에서도 가장 선배 회원이다.

서 씨는 ‘더 나은 세상’의 회원들이 “남을 가르치기보다는, 우리가 고통과 억압을 받는 가난한 이들 편에 서 보자며 현장을 찾기 시작했고, 그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현장 경험이 생기자 사회교리를 공부하고 토론할 때 나눌 이야기도 많아졌다.

회원들이 방문하고 연대활동을 펼친 현장으로는 용산참사 등 빈민사목과 관련된 사건이 많았다. 4대강, 핵발전소 등 생태환경 문제, 제주도 강정마을, 세월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KTX 여자승무원, 사드까지.... 회원들은 각자 관심과 여건에 따라 자율적으로 사회문제의 현장을 방문하고 참여하며, 그 경험담과 정보를 ‘더 나은 세상’의 온, 오프라인 모임에 나눠 준다.

서정숙 씨는 이러한 경험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전에 모르던 일을 알게 되고, 시간이 되면 직접 참여하게 됩니다.”

‘더 나은 세상’은 교회 단체치고는 홈페이지가 매우 활발하고 잘 관리되고 있지만, 요즘은 모임 앱 ‘밴드’가 더 많이 쓰인다. 서 씨는 밴드에서 온갖 종류의 법안과 서명운동이 제안되는 것이 흥미롭고, 그렇게 제안되는 서명운동 대부분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지난 겨울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리 더 나은 세상' 회원들. (사진 출처 = '더 나은 세상' 홈페이지)

먼저 배운 사람이 교육봉사자로

2년에 걸친 꾸준한 워크숍 결과 총 16개의 실천사항을 정한 것도 ‘더 나은 세상’이 최근 한 일이다. 실천사항으로는 회원 개인 차원에서 10가지, 공동체를 위해 6가지를 뽑았다.

가정에서 세대 간에 수평적 관계를 위해 미소 지으며 대화하고 TV,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자는 것부터, 생태환경과 노동권에 관한 깨알 같은 실천사항들이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학교 동문회로 출발한 모임인 만큼 소모임을 꾸려 연구를 계속하고, 회원들을 사회교리 교육봉사자로 키우는 것도 ‘더 나은 세상’의 목표다.

2015년 사회교리학교를 수료한 라종연 씨는 오랫동안 교사로 일했다. 그는 과학 교사였던 자신이 원자력에 대해 잘못 가르쳤다며, “늦게나마 정정해야겠다는 생각에 사회교리학교를 다니며 더 배웠다”고 말했다. 라 씨는 사회교리 연구와 실천이 이제 본당에서 더 널리 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경수 씨는 신자들과 ‘사회교리’를 주제로 만나다 보면 여전히 ‘사회’라는 말 때문에 거부당할 때가 많다고 한다. 그는 “우리 교회에 믿을 교리는 있는데 왜 실천할 교리는 없는가” 물으며, 사회교리가 사회생활을 위한 실천교리임을 제대로 인식하고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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