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와 서울대교구 정평위, 사회교리주간 세미나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와 서울대교구 정평위가 제7회 사회교리주간을 맞아 세미나를 열고 회칙 “민족들의 발전” 50주년에 본 ‘평화와 발전’에 대해 되짚었다.

10일 서울 명동가톨릭회관에서 열린 세미나는 “민족들의 발전”에 비춰본 우리 사회, 에너지 민주주의, 양극화와 경제 민주화, 문화적 불균형, 사회현실에 대한 교회의 이해와 역할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먼저 기조강연을 맡은 박동호 신부(서울대교구 정평위원)는 “민족들의 발전”에 비춰 본 이 시대의 발전에 대해 발표했다.

회칙 “민족들의 발전”, (고통받는 이들을) 직접 보고, 성찰과 판단한 뒤 행동하라

회칙 “민족들의 발전”이 발표된 1967년은 경제와 문화, 과학기술의 융성시기이면서 냉전의 격화, 과학기술을 동원한 파괴적 군비 경쟁, 경제와 정치 이념, 체제의 대립과 충돌의 시기였던 1960년대의 절정이었다.

이 시기 지구의 남반구와 북반구, 민족들 사이 경제적 불균형은 점점 빨라졌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이를 부추겼다. 동서와 남북 간 분열과 대립, 불균형이 심해지면서 이 시기 인류가 염원한 ‘발전’은 일방적이었고, 평화는 적대 세력 간 공포의 균형, 혹은 전쟁의 부재를 의미했다.

박 신부는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는 정답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다만 “고뇌에 찬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인류 가족과 대화하고자 했다”며, “세상 문제들 위에 복음의 빛을 밝히고, 인류가 나아갈 길을 찾아 하느님과 결합시키는 그 대화를 통해 교회 역시 세상의 도움을 받아 더 분명하게 자기를 완성하고 보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사명을 수행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황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는 그들의 회칙을 통해 “세계 차원의 사회경제, 정치, 문화의 실재를 탐구하고, 그 방법으로 사회과학의 분석 방법론에 주목했으며, 인문,사회과학과 폭넓은 대화를 성찰의 출발점으로 삼고, 정당한 자율성과 쇄신된 신학적 전망, 연대를 강조하는 그리스도교적 인본주의를 존중했다”며, “그럼으로써 교회가 온 인류에 대한 연대와 존경, 사랑을 가장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교회의 자기 이해와 생활, 사명에 대한 투신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발표는 (왼쪽부터) 박상인 교수, 한상봉 편집장, 박동호 신부, 장하나 팀장, 김유정 신부 등이 맡았으며, "민족들의 발전"에 비춰 본 사회교리 실천과 한국사회 불평등 상황에 대해 짚었다. ⓒ정현진 기자

바오로 6세의 "민족들의 발전"은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사회적 관심”과 함께 “인간과 사회의 참된 발전에 대한 가톨릭 사회교리의 대헌장”으로 불린다. 이 회칙은 사회경제적 발전에 주목하고 “경제 영역에서 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이 사회적 약자에게 안길 구체적 결과”를 윤리적 성찰의 기준으로 삼았다. 또한 ‘그 구체적 결과’에 대한 탐구는 사회적 약자가 처한 사회 구조적 맥락과 배경을 모두 살펴야 한다고 이르며, “이는 ‘발전’은 단순한 경제적 성장으로만 보면 안 된다”는 의미다.

박 신부는 “이 회칙은 인류가 직면한 문제 가운데 특히 ‘발전’ 혹은 ‘저발전’이라는 실재를 탐구하며 세상과 대화를 도모한다”며, “참된 발전은 직접적으로 생존의 고통을 안기는 빈곤, 가난, 전염병과 풍토병, 그리고 무지로부터 해방되고, 보다 더 많은 문명의 혜택을 공유하고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데 보다 적극 참여하는, 보다 더 충만한 자기완성의 길을 도모하는 ‘점진’이어야 한다고 이른다”고 했다.

박 신부는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황 선출 전과 후에 직접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팔레스타인, 인도를 찾아 그들을 괴롭히고 직면한 문제를 직접 보고, 제22차 바티칸공의회를 마치기 전 국제연합을 찾아 고통을 겪는 민족들을 위해 호소했다고 강조했다.  

“(고통에 직면한 이들을) 직접 보고, 성찰과 판단하며 행동해야 한다. (당시의)교회는 문제를 회피하거나 침묵하지 않고, 인문사회과학의 성찰을 경청하며 복음과 사회교리 전통에 기반해 인간 발전과 사회 쇄신의 길을 제안했다”는 것이다. 

“내가 바로 그 가난한 사람이다”

주교회의 정평위 전 총무 김유정 신부(대전가톨릭대 총장)는 ‘사회현실에 대한 교회의 이해와 역할’에 대해 말하며,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신가?”라는 물음에 답했다.

김 신부는 마태오 복음 25장을 인용하며, “예수는 당신 자신을 굶주린 이, 목마른 이, 나그네, 헐벗은 이,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 등 ‘곤궁에 처한 이들’과 동일시했다”며, “교회의 예언직, 사제직, 사목직 가운데 사목직 수행의 핵심이 바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 안에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알아 뵙고 섬기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예수가 “내가 바로 그 작은 이들”이라고 선언한 것은 구약의 ‘고엘’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고엘은 억압받는 자에게 구원자이자, 억압하는 자에게는 복수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예수의 저주는 억압하는 자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킨 이들’을 향했다”고 설명했다.

김 신부는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개인적 선행은 무척 중요하지만, 이는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사회적인 불행 앞에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막연한 말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질적 성찰이 필요하며, 개인적 불행이나 고통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구조적 모순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구원을 개인적이고 영적이며, 초월적 차원으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며, “‘간추린 사회교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전인적이며, 우주적, 개인적, 영적, 사회적, 육체적, 역사적 차원을 모두 포함한다고 이른다. 예수는 지극히 종말론적이며 육화적 삶을 살았고, 그것이 예수의 (통합적) 영성”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오늘날 한국 사회 안에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지만, 그러나 이는 빈민사목, 정의평화위원회 등 일부 또는 특수 사목의 분야가 되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쌍용차 사태, 밀양 송전탑, 한일 위안부 협상 등 많은 사건에 대해 교회 내 일부 위원회와 단체들이 연대하려고 노력해 왔다”며, “그러나 과연 전체 교회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교회가 ‘고엘’의 역할을 해야 마땅했지만 혹시 강도당한 사람을 지나친 사제나 레위인의 모습,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교회 안팎의 훈계를 복음의 명령보다 우선시한 것 아닌가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월 10일 사회교리주간을 맞아 주교회의와 서울대교구 정평위가 기념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300여 명이 참석해 경청했다. ⓒ정현진 기자

에너지 불공정 문제, 사고 위험보다 인권의 관점으로
경제적 불평등, 재벌 개혁없이 답 없다
아래, 바깥, 주변으로 밀려나는 이들.... 그러나 교회의 희망은 그곳에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불공정 에너지 문제, 양극화와 경제 민주화, 문화적 양극화에 대한 발표도 진행됐다.

먼저 사회적 불균형 가운데 에너지 문제를 다룬 장하나 환경운동연합 권력감시팀장은 에너지 문제는 민주주의, 인권을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교리’는 종교적 관점을 뛰어넘어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훌륭한 교육서라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1인 1표로 이야기되는 우리 각자의 권리와 책임을 일부 정치인들에게 위임해서는 안 되며, 민주주의의 실현은 각자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자 의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핵발전소 문제를 두고 흔히 “사고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는 목소리를 경계하면서,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는 지금 이 시간에도 핵발전소 지역에 살며 죽음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의 인권과 생명권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에너지 문제, 화력과 핵발전 지역 문제는 사고 여부와 안전 이전에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라면서, “우리는 미세먼지나 지진과 같은 문제가 일어나서야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그 전에 교회가 먼저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 그들을 안아 주고 이야기를 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경제적 양극화와 경제민주화에 대해 발표한 박상인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 시장과정부연구센터 소장)는 현재 한국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는 정부 주도의 재벌중심 발전 전략에서 비롯됐으며, 여전히 근본 원인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해답은 재벌 개혁”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양극화는 “사회의 실질적 지배계층을 형성하는 파워 엘리트에게 경제적, 정치적 자원이 집중됨으로써 사회적 의사결정이 이들의 이해에 따라 결정되고, 사회 취약계층은 최소한의 인격적 생활을 위해 필요한 자원조차 부족한 상태 그리고 이같은 상태가 굳어져 계층 이동이 어려워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상봉 <가톨릭일꾼> 편집장은 문화적 불균형에 대해 위와 아래, 중심과 주변, 안과 밖 세 가지 차원의 불평등 구조를 들며, 권력자와 민중, 소수에 의한 다수의 배제, 처지와 자격에 따른 분리와 차별 현상을 말했다.

그는 이 세 가지 차원의 문화적 불평등은 주로 ‘교육의 장’에서 발생하며, 이같은 예를 정유라의 “돈도 능력”이라는 발언, 기간제 교사 문제, 특성화고 학생들의 실습노동과 소외 등을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러한 불균형 사회의 결과는 아무도 노동자를 꿈꾸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며, “학교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노동을 징벌의 수단으로 삼아 노동을 부당한 무엇, 피해야 할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장사를 할지언정 노동자는 되지 않겠다는 청년들이 대다수인 사회가 정상적 사회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위와 중심, 안에서 이윤을 독점하는 세력에 의해 불안정성과 탈락의 공포에 시달리는 이들은 위와 중심, 안의 명령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며, 이 과정에서 이익은 위로, 위험은 아래로 쏠린다”고 했다.

그는 “그럼에도 희망은 아래와 주변, 바깥에 있다. 예수는 중심에 머문 적이 없고, 주로 바깥에 머물렀으며, 아래와 주변의 사람이었던 예수가 죽고 부활한 곳도 ‘성문 밖’이었다”며, “교회가 서 있어야 할 자리 역시 체제의 아래와 주변, 바깥이며, 교회가 경청해야 할 목소리, 손 잡아 줘야 할 사람들도 그곳에 있다. 그곳에서 발견하는 이들이 곧 예수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라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의 마지막에는 서울대교구 사회사목국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기념 미사가 봉헌됐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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