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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모순과 도전의 세상 선택한 필리핀 수녀페미니스트, 조직가, 교육자, 신학자인 메리 존 수녀
편집국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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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4  16:3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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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도수녀회의 메리 존 마난잔 수녀는 당신이 쉽게 떠올리는, 수녀복을 입은 전통적인 수녀가 아니다.

그녀는 여성주의 활동가이며 조직가이자 지식인이며, 교육자이자 신학자이고, 이런 일을 모두 동시에 해낸다.

메리 존 수녀가 맡고 있는 마닐라의 한 여학교 교사는 그녀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합적”이고 “다면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그녀는 “무지무지하게 단순”하다고 한다.

올해 79살인 메리 존 수녀는 “내가 그저 무명인이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나는 수녀가 되었고, 그러던 어느날 내가 이미 정치활동가 일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1975년에 독일에서 선교학과 조직신학 공부를 마치고 필리핀으로 돌아왔을 때 행동주의의 “불의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필리핀은 독재자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치하의 격동기였다. “나라는 가장 어두운 시기를 맞고 있었다.”

어느 한밤중에 걸려 온 전화를 받고 그녀는 항의 운동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10월의 어느 으스스한 밤, 수녀들과 사제들은 한 술공장의 파업노동자들에게 자신들의 연대를 보여 주기 위해 공장 밖에 모였다.

“경찰이 와서 노동자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금도 당시 수녀와 사제들이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해 서로 팔을 묶고 나섰던 것을 기억한다.

그 파업은 600여 명의 노동자가 체포되는 것으로 끝났다. 적어도 2명의 수녀와 사제 1명도 다쳤다.

그 시위는 필리핀에서 마르코스의 계엄령에 대한 첫 공개 반항이었고, 또한 메리 존 수녀가 “군부의 잔혹성을 처음 경험”한 것이기도 했다.

그 일로 그녀는 교회가 가르치는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을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를 인권운동가로 만든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녀는 나중에 “노동자의 벗”이라는 단체를 만드는 데 참여하는데, 이 단체는 교회 사람들이 직접 공장에 들어가도록 고무했다.

“우리가 파업 중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는 너무 늦다. 우리는 파업이 일어나기 전부터 공장에 있어야 한다.”
그는 “인민이 억압받는 곳들에서 모순들과 도전들로 가득 찬 세상”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지난 6월 12일 베네딕도수녀회의 메리 존 마난잔 수녀가 마닐라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 중에 말하고 있고 있다. (사진 출처 = UCANEWS)

운동가에서 페미니스트로

시간이 지나면서, 메리 존 수녀는 필리핀 여성 인권운동의 대표적 인물들 가운데 하나가 됐다.

한 여성 정치범을 군인들이 학대한 사건을 보면서 당시 젊은 수녀이던 메리 존 수녀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은 또한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여성 정치범의 이야기를 통해 메리 존 수녀를 비롯한 여러 여성 인권운동가들은 여성운동 단체인 “필리피나”를 만든다.

그녀는 또한 수녀들의 네트워크인 “필리핀 여성수도자 전국회의”를 만드는 데에도 주요 역할을 했다.

그녀는 당시 자신들은 “아주 높은 모집 기준”을 갖고 있었다고 농처럼 말했다. 수녀라 할지라도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일할 각오”가 돼 있어야만 가입할 수 있었단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미 민족해방 투쟁의 전선에 있었는데, 왜 그들을 빼놓아야 하는가?” “수녀들은 그.... 투쟁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 단체는 여러 수도회 소속의 수녀 200명을 회원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메리 존 수녀가 활동을 확대해 가면서 지하운동의 지도자들은 그녀를 눈여겨보게 됐고, 그녀에게 여성교육기관을 만들어 달라고 1982년에 요청했다.

처음 여성자원센터가 만들어졌고, 마르코스의 독재가 정점에 이르렀던 1984년에는 여성단체 연합조직인 “가브리엘라”가 만들어졌다.

메리 존 수녀는 1986년부터 2004년까지 18년간 이 조직을 이끌다가 베네딕도수녀회 필리핀공동체의 원장이 되면서 그만뒀다.

메리 존 수녀의 길고도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는 그녀가 자신이 수녀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19살 때부터 시작됐다.

그간 그녀는 마닐라에 있는 성 스콜라스티카 여대의 학장을 지냈고 여성학연구소를 만들었으며, 병원을 하나 세웠고, 여러 책을 썼으며, 로마에 있는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언어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늘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명확히 밝혔다. 자신의 신앙과 자신의 정견 사이에 아무런 모순을 찾지 못했다. “아무런 모순이 없어요. 나는 존재해요. 나는 수녀고 운동가에요.”

“내가 이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은 내 신앙입니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의 밑바탕은 예수이지 “마르크스가 아니”라고 덧붙인다.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그는 거리에서 우리와 함께 있을 것 같군요.“

하지만 메리 존 수녀는 가톨릭교회가 “성평등의 진정한 뜻”에 그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교회는 보수적입니다." "물론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고 말하겠지요. 신학적으로는 그래요. 하지만 교회 안에서 우리는 평등하지 않아요."

거의 모든 생애를 교회와 자유의 전진에 바쳐온 그녀가 보기에 "여성의 권리에 관한 한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그 길이 먼 이유는 “학대와 차별, 그리고 성에 기반을 둔 착취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사 원문: http://www.ucanews.com/news/filipino-nun-chooses-world-of-contradictions-challenges/79793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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