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여성성은 충분한가?

2015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부터 올해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 지낸 ‘자비의 특별 희년’이 마무리됐다.

‘자비의 특별 희년’을 시작하면서 이에 따른 여러 기회를 통해 사목적 방향과 실천 사항들을 살폈지만, 지난해 11월 5일 한국 가톨릭사목연구소가 열었던 세미나에서 강우일 주교는, ‘자비의 특별 희년’의 의미에 대해 “가장 작은 이들의 목소리까지 경청하는 것이 자비의 출발점”이라며, “교황은 (이 희년 선포로) 복음화의 주체인 모든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구원과 교회 쇄신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작은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 ‘작은 이들’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여성들과 또 이들을 품고 있는 교회는 이 희년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가야 할까. 교회와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이라도 실마리를 마련하고 고민할 기회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에서 이야기의 장을 마련했다.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각각 30, 40, 50대 여성들을 통해 교회공동체에서 여성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여성 그리스도인으로서 체험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또 교회는 과연 여성주의를 수용하고 또 변화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해 묻고 답했다.

만남에 참여한 이들은 인권활동가 강은주 씨(30대, 드보라), 종교학과 생태신학을 공부한 신학자 유정원 씨(40대, 로사), 교회에서 혼인과 가정, 성, 사랑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고영심 씨(50대, 모니카) 등 세 명이며, 이들을 한데 모아 이야기하도록 이끈 이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최금자 편집위원(50대, 엘리사벳)이다.

이들이 나눈 이야기를 질문과 답변 그대로 정리해 싣는다.

▲ 자비의 특별 희년을 마무리하면서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30, 40, 5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용길

질문 하나. 여성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를 어떻게 체험하고 있으며, 그 체험에서 얻는 희노애락에 대해 나눠 달라.

강은주 : 인권활동가로서 살다 보니, 때로 교회의 가치와 대치되는 경험을 한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현장에 가 있는 교회를 많이 봐 왔고 교회를 사랑한다. 사랑하는 교회이기 때문에 무작정 비난하거나 떠나기보다는 교회를 고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교회 내 성평등 문제, 단적으로 여성사제 문제 등이다.

교회로 인해 기쁠 때는 교회가 약자를 위한 싸움의 현장에 투신하는 모습을 볼 때다. 인권활동을 하는 데 큰 의지가 된다. 그러나 반면, 여성문제에 대해서는 실망스러운 모습도 많이 봤다.

유정원 : 모태 신앙으로 10대까지는 성당활동과 교회 안에서 갖는 만남이 큰 기쁨이었고, 차별이나 성문제에 대한 의식도 없었다. 그런데 종교학을 공부하고 다른 종교인들을 만나면서 가톨릭이 가장 여성 차별적인 종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톨릭에만 여성 성직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비판적으로 내 종교를 다시 보게 됐고, 현재는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보고 있다.

고영심 : 교회는 나에게 일종의 ‘아름다운 정원’이다. 교회 안에서 내 여성성을 가지고 충분히 활동했고, 유학을 하면서 많은 사제들과 함께 공부하면서도 차별을 받지 않았다. 또 한국 교회에서도 좋은 기회를 얻어 일하기도 했다. 물론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그것이 교회가 나를 공격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교회공동체 체험은 아름다운 정원이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가꿔갈 것이다.

질문 둘 : 각자의 체험이 모두 다르다. 본격적인 질문으로 첫 번째, 교회 내 여성으로서 교회 공동체 내 역할은 무엇일까?

▲ 교회에서 혼인과 가정, 성, 사랑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고영심 씨(50대, 모니카). ⓒ김용길
고영심 : 교회 안에서 강의하고, 또 쿠킹클래스, 이팅클래스 등을 진행하면서 나는 신앙생활이자, 사업, 선교를 동시에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랑스럽다. 내가 하는 일이 교회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생각하면, 사회적 문제들이 가정에서 비롯되고 있는데, 엄마로서 아내로서 조부모로서 보여주는 나의 과거, 현재, 미래 자체가 교육이라고 생각했고, 그 초점이 바른 식탁문화였다.

교회는 여성들에게 스스로 자존감을 갖고 활동하라고 한다. 그저 존재하는 나로서의 나, 하느님 앞에 존재하고 여성으로서 계약을 맺은 딸로서, 특히 가정을 이끌어가는 것, 가정을 돌보고 치유하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여성으로서 교회 안에서 할 수 있는 풍요로운 역할이라고 본다.

유정원 : 신학을 공부를 해 왔고, 여성신학회에서 활동도 했다. 여성과 그리스도교라는 책을 번역하면서, 예수가 죽은 뒤 지금까지 여성들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잊혀져왔고, 침묵을 강요당해 왔는지 봤다. 여성이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글을 쓰지 못했던 일들, 그마저도 소실되는 역사...여성의 삶이 분명히 있었는데, 남성들만의 역사만 남은 교회와 인류의 역사를 봤다.

나는 신학자로서 여성 선조들의 삶을 찾고 싶다. 골롬반 선교센터에 있으면서 사제들의 선교이야기, 수도자들의 선교도 이야기되지만 평신도 선교사 활동이 25년 됐는데도 여성 평신도 선교사들의 체험은 드러나지 않았다. 분명히 있고, 소중한 체험이 잊혀지고 묻혀지는 것들, 그 역사를 복원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강은주 : 현재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 다양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제약이 없어야 한다. 교회가 지금 정해놓은 역할만 한다면 여성 스스로도 교회가 야기하는 불평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교회도 시야를 넓혀야 하지만 여성들도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갈등을 일으키더라도 계속 시도해야 한다. 이성과 가족주의에 중심을 두고 있는 교회의 시각을 넘어야 하고, 엄벌하는 하느님이 아니라 좋으신 하느님을 말하는 교회도 성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가족, 가정을 교회의 기본 단위, 교회의 유지 수단으로 볼 게 아니라 가정이 갖는 좋은 가치를 이야기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이라면, 교회가 가진 가치가 좋은 가치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교회의 시각도 여성에 대한 시각, 모든 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시 맞추고 현재의 관점을 넘어야 한다.

이를테면, 전례에서 성찬례, 말씀의 전례가 가장 중요한데, 이른바 밥상인 제대를 차리고 치우는 것도 여성들이 주되게 한다. 그 역할을 고정시킬 것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함께 해야 한다고 본다. 밥상을 차리고 불러 모으는 것이 어머니의 고유한 카리스마라고 할 수 있지만, 제한을 둔다는 것이 아쉽다.

질문 셋 : 여성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순간에 교회를 체험하고 있는가.

▲ 종교학과 생태신학을 공부한 신학자 유정원 씨(40대, 로사). ⓒ김용길
유정원 : 기본적으로 제도교회에 대해서 기대나 바람은 없다. 그리스도인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제도로서의 교회 때문이 아니라, 예수와 나의 만남, 체험 때문이다. 공부를 하면서 만났던 복음서의 예수가 계속 나에게 매력을 주고,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기 때문이다. 또 예수가 말한 하느님이 품어 주는, 실패하고 어둠 속에 있는 나를 품어 주는 분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마리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개인적으로 아이를 잃었던 고통스런 사건으로 비로소 마리아를 성모 마리아보다, 한 어머니, 자식을 키우고 무기력하게 잃었던 어미로서 공감했고, 어쩌면 나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을 어머니로서 만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여성사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가톨릭 교회는 멋있고 고고하게 보이지만 결국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그렇게 대우한다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런 면에서 교회에서 위로를 받거나 개선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는다. 단지 믿고, 씨름하고 고통당할 때, 만난 예수, 하느님, 엄마 마리아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체험이 없다면 지금도 내가 그리스도인일까? 가톨릭신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원의식을 갖고 있고, 그것이 나의 신앙이다.

고영심 : 나 고영심 모니카는 가톨릭 여성 그리스도인으로서 존재한다. 가톨릭 교회공동체는 나와 분리될 수 없다. 내 자부심은 가톨릭 신앙인이라는 것에서 나오고, 여성사제 금지와 같은 것은 내 신앙의 중점이 아니다. 내 교회의 장은 항상 유연하고 나에게 세례를 주었고, 지극히 여성으로서 잘 살고 싶다는 특명으로 나아가고 싶다. 물론 제도교회라는 구분을 따로 두고 싶지 않다. 에디트 슈타인이 자유롭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유대교를 떠나 가톨릭으로 왔듯, 그리스도 예수가 구원자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리스도인이 됐다는 그런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제도교회라기 보다, 가톨릭교회 공동체의 의미. 유연하고 자유로운 신앙을 하면서, 또 신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교회에서 더 자유로워졌다.

강은주 : 관습과 제도, 교리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사람이 더 논의하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단 여성뿐 아니라 모든 전통에 대해서. 그리스도 핵심에서 벗어난 것들도 일부 있을 수 있다. 핵심 중 하나는 성모 마리아의 여성성에서 나오는 정신, 가치가 교회의 핵심이고, 많은 부분을 교회가 의지하지만 잘 살려내지 못한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성모의 여성성은 모성으로만 한정하고 싶지 않고, 순종적 이미지 외에 구원의 역사에 응답한 당당함을 말하고 싶다. 순종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고통을 감수하고 받아들인 것. 그것을 교회가 잘 살려내지 못하는 것 같다.

마지막 질문 : 신학적인 측면에서 진보했지만 일반 본당 공동체에서 여성들이 피부로 절감하는 현실은 여전히 거리가 있다. 신학과 신앙 간의 거리. 여성들, 남성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고 접했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 논리들이 있다. 왜 같은 인간인데 여성이 불평등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교회 안에서 여성주의가 얼마나, 어떻게 전개될 수 있으며, 우리가 체험하는 불평등에서 얼마나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 인권활동가 강은주 씨(30대, 드보라). ⓒ김용길
강은주 : 교회를 보면 남성 사제에게 여성 동료가 없다는 것이 큰 맹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제로서 사목을 하는데, 사목 대상의 절반이 여성이다. 그 여성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동료로서 여성을 겪지 못하는 것이다. 수도자는 동료일까? 아닌 것 같다. 보조적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는 역할의 차이지 차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으려면, 적어도 공동체 수장은 여성과 남성이 골고루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교구의 사목국을 봐도 대부분의 국장은 남성이다. 차별이 아니라는 교회의 입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물론 세상의 속도와 교회의 변화 속도가 같지는 않다. 오히려 상당히 더디다. 여성사제 문제의 경우, 예수 당시에는 남성주의 문화가 더 심했을 것인데도, 여성 제자들이 있고 예수를 따랐다. 당대 시대적 상황을 해석해서 여성 사도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고영심 : 초대교회는 여성이 부제급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번에 교황이 답했지만, 교회 전통, 가톨릭이 가진 전통이 있는데, 과부들이 수도생활을 하면서 선교를 하고, 한국 순교 성인 중에도 과부가 많다. 수많은 여성들이 수도자로서, 신자로서 훌륭하게 살았던 것을 보면서 나는 늘 전율한다. 초기 우리 교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상당히 컸다. 여성주의 운동이 여성해방으로 이어지면서 성혁명이 일어났고, 피임 문제가 나왔다. 교회는 당시 피임을 반대하면서 뒤쳐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당시 교회가 그것을 허락했다면 여성은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여성주의의 부정적 측면도 있고, 특히 교회 안에서 여성주의는 모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정원 : 교회가 여성주의를 수용하고 변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로서도 더 힘들 것이다. 여성신학회, 가톨릭여성연구원,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도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이 20년 전보다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계속 같은 말을 하고 있고 지쳐가고 있다.

예수는 상당히 특이한 사람이었다. 여성들과 만나고 대화했던 장면을 보면, 당시 사람 취급 받지 못했던 여성을 동등하게 친구처럼 대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는 여성을 배제하고 침묵시키고, 하느님에게 순종한 마리아를 교회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바꿔버렸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교회 안에 늘 있었다. 교회를 바꾸려는 노력도 있었고, 따로 여성들의 교회를 만들려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부장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예수가 여성과 어울렸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퇴보가 아니라  가부장적, 남성중심제도로 변질된 것이다. 

▲ 최금자 씨가 좌담회 사회자를 맡았다. ⓒ김용길
사회자 : 체험은 다양하고 그 다양함이 풍요로움을 만든다. 우리가 겪고 말한 교회가 어떻게 보면 큰 그림의 퍼즐이고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무수한 가능성과 색채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싶다. 각자가 가진 해결되지 않은, 구성원으로서 갖고 있는 과제는 십자가 안에서 어쩌면 풍요로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강은주 : 교회를 비판해서 깨부수고 없애고 싶다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좋은 모습도 봐왔고 그것을 이어가고 싶다. 또 내가 교회로부터 받은 것들도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비판한 것도 있다. 사실 큰 기대를 가지고 변화를 시도했던 것은 아니다.

거창한 어떤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관점에서라도 더 많은 생각을 하고 고민해도 좋을 것 같다. 낙태 문제를 말하면서, 여성인권의 관점을 생명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여성이 주체적인 한 생명이고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면서 그 아기만 생명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것. 생명의 관점에서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성평등 문제는 생물학적, 사회적 성을 넘어 권위의 문제다.

이를테면 교황이 수장으로서 한 말에 대해 아래로부터 논의하고 더 구체적인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황의 입만 바라보는 것을 교황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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