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회는 곤혹

‘희망원 사건 해결’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미사 중인 명동성당 안에서 기습시위를 벌여 파장이 크다.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척결 대책위(이하 희망원 대책위)는 3월 22일 저녁 교황 선출 기념 미사가 진행 중이던 명동성당 안에서 기습시위를 벌였다. 교황 선출 기념 미사는 매년 3월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 기간 중에 주한 교황대사를 중심으로 전국의 주교들이 모인 가운데 봉헌되고 있다.

희망원 대책위가 공개한 사진과 동영상에는 명동성당 대성전 안 한복판에서 “천주교는 대구시립희망원 사건해결에 나서라”, “희망원 사건은 대구대교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구대교구 규탄한다” 등 글귀를 쓴 현수막을 펼쳐 들고 구호를 외치는 이들의 모습, 그리고 이들이 신자들의 격한 항의를 받고 몸싸움을 하며 마당으로 떠밀려 쫓겨나는 장면이 담겼다.

이들은 미사 전에 입장해 신자석에 앉아 있다가 미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펼침막을 들었다.

동영상에는 미사를 마치고 대성전을 나서는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의 모습, 그리고 그를 수행하는 이들이 면담을 요구하는 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담겼다. 희망원 대책위에 따르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천주교 관계자가 면담 요청서를 받아 갔지만 답변을 받지는 못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주교회의, 명동성당 등 관련 천주교 기관들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미사가 봉헌 중인 성당 안에서 고함을 치며 시위를 함으로써 미사의 진행을 막는, 즉 미사 방해는 가톨릭교회가 금기시하는 것으로 전례가 드물다. 2014년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을 비판하는 시국미사에 대해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대수천) 회원들이 서울 예수회센터, 경남 거제 고현성당에서 미사 도중 항의하거나 신자들과 몸싸움을 벌여 교회 내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대책위 측, “결과적으로 죄송스럽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
정중규, “왜 그들이 그렇게 행동했는지 교회가 반성해야”

▲ 3월 22일 '교황 선출 기념 미사'가 봉헌 중인 서울 명동성당 안에서 희망원대책위 활동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제공 =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척결 대책위원회)
희망원 대책위 조민제 집행위원장은 “미사 중 불편을 겪었을 신자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3월 23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조 위원장은 지난 2월 장애인 단체들이 희망원 사건 해결에 천주교 전체가 나서라며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면담을 요청했지만 경찰에 막혀 만나지 못한 일을 지적했다.

또한 그는 “대구대교구에 2번이나 공문을 보내 조환길 대주교(대구대교구장)와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고, 주한 교황대사관에도 서신을 전달했다”면서 “천주교가 37년간 운영한 시설에서 일어난 사태에 책임과 해결 의지를 충분히 보여 주어야 하는데 침묵으로만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척결을 위한 전국 장애계 대책위(이하 희망원 장애계 대책위)의 활동가는 주교회의로 희망원 사태에 대한 천주교의 사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사퇴 등을 요구하는 공문을 23일 오후 다시 보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자신들은 주교들이 착석하면서부터 미사가 시작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한 상태에서, 미사 시작 전에 펼침막을 들고 의사를 표현하고 미사가 시작되면 조용히 앉아 있으려는 계획이었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해명했다.

정중규 국민의당 희망원 인권유린진상조사위원장(베네딕토)은 “천주교 측에서 사건 자체만 보면 당혹스러운 사건”이라며 “폭력적 대처가 됐는데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말했다.

대구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장애인 연구자인 정 위원장은 지난 3월 6일 희망원 대책위가 주한 교황대사관에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는 자리에 참석한 바 있다.

정 위원장은 “사회의 기준도 못 따라가는 교회의 행태에 대해 앞으로 일반 사회의 저항과 반발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가톨릭 신앙인 입장에서는 왜 그들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외부에서 가톨릭교회를 볼 때는 교구로 나누어진 조직이 아닌 단일 조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 천주교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서울대교구장 면담이 성사되지 않은 일 등이 시민단체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희망원 사태는 한 교구의 문제라고 (다른 교구에서) 외면할 문제가 아니”라며, 가톨릭 복지에 대한 교회 차원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3월 22일 희망원대책위 활동가들이 서울대교구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제공 = 대구시립희망원 인권유린 및 비리척결 대책위원회)

페이스북에서도 갑론을박

희망원 장애계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페이스북에 명동성당 시위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올린 뒤, 동영상 재생 횟수가 1만 6000회에 이르고 260여 회 공유되었다.

이 게시물에 댓글로 찬반 토론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 누리꾼은 “장애인차별 철폐에는 찬성하나 동영상의 행동에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다”며 “차라리 밖에서 신자들과 성직자들이 미사를 마치고 나올 때 읽어 볼 수 있게 한다든가 교회 관계자 분들과 이야기해서 미사를 마치고 함께 이야기해 볼 시간을 가지는 게 맞지 않나 싶다”고 의견을 냈다.

신부라고 밝힌 누리꾼은 “전장연의 활동을 응원하지만 동영상에서 보인 행동은 매우 유감스럽다”며, 항위 시위 장소는 명동성당이 아니라 대구대교구청 앞이 적당하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미사는 천주교 신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예배 행위인데 이런 행동은 존중하는 모습, 배려하는 행위가 아닌 듯하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미사가 끝나기도 전에 이리 행동하신 것을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고 썼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서 조금 더 심각성을 인지하는 한국 천주교가 되기를 바란다”, “(제단에서) 몇 분이라도 내려오셔서 그들의 아픔을 들어 주셨어야 했다고 본다”는 의견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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