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국미사에서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등 일부 천주교 보수단체 회원들이 시국미사를 봉헌하는 도중에 소란을 피워 문제가 되고 있다. 국정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 개입 사건이 드러나면서, 대통령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정부 기관은 축소 · 은폐 혐의를 받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시국미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퇴’ 발언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천주교 보수단체는 그 이름에 걸맞게 ‘국가수호’와 ‘애국심’ 그리고 ‘박근혜 정권 사수’ 등을 외치며, 올 들어 정의구현사제단에서 주최한 수원교구, 마산교구 시국미사에서 미사 중 소란을 일으키고,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3일 예수회센터 성당에서 열린 남녀 수도자들의 시국미사에서도 마찬가지로 미사 중 소란을 일으키고 ‘종북사제 척결’을 외쳤다. 이제는 ‘빨갱이 수녀’라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이번에 미사가 봉헌된 예수회센터 정문 앞에는 누군가 “형법 158조: 장례식, 제사, 예배 또는 설교를 방해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개정 1995.12.29.)”는 내용의 게시물을 붙이기도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회원들은 미사가 봉헌되는 성당 입구에서 집회를 열고 항의를 하는데 그쳤으나, 이제는 미사 방해를 불사하며 ‘행동하는’, 박근혜 정권 홍위병을 자처하고 나선 것처럼 보인다.

▲ 지난 3일 시국미사가 열린 서울 신수동 예수회센터 곳곳에 미사 방해를 경고하는 게시물이 붙었다. ⓒ한상봉 기자

이들은 서슴지 않고 교도권에 도전한다.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 주교는 물론 교회 공식기구인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용훈 주교에게 ‘빨갱이 주교’ 딱지를 붙이고 다닌 지 오래되었다. 정의구현사제단과 정의평화위원회 관련 사제들이 사목하고 있는 본당에서 ‘종북사제’ 운운하는 유인물을 돌리고 있다. 핵심이 30여 명쯤으로 추정되는 이 단체가 등장하는 곳이면 으레 더 많은 숫자의 군복을 차려입은 보수단체 회원들이 따라붙는다. 이들이 연대하는 그룹 가운데 ‘박근혜 팬카페’와 ‘박정희 바로 알리기 국민모임’ 등이 포함된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한사코 천주교 단체임을 강조하는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은 이런 행동의 신앙적, 교회적 근거를 어디서 찾고 있을까. 그들이 공공연히 내세우는 근거는 정진석 추기경의 ‘사제단은 거짓 예언자’ 발언과 염수정 추기경의 ‘사제들의 직접 정치 개입 금지’ 발언이다. 물론 염 추기경은 자신의 발언이 가진 진의가 언론에 의해 잘못 전달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제들 가운데는 예전부터 정의구현사제단 척결을 외쳐온 군종교구 출신의 김계춘 신부가 있지만, 논리적 수준이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회원들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지난 연말에 한마음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린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임원 피정에, 공교롭게도 프란치스코 교황과 같은 예수회 소속의 박홍 신부와 예수회 출신의 의정부교구 전임 교구장 이한택 주교가 초대되었다. 이 자리에서 이한택 주교는 “정의구현사제단은 집단으로서는 매우 과감해 보이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일대일로 맞서면 모두 고개를 숙이고 도망친다”면서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이 종북사제 척결을 위해 교황청 대사관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여온 것을 지지하며 “순교자의 후예라면 우리는 혼자로도 얼마든지 용감해질 수 있다. 숫자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와 같이 하신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격려했다. 이는 마치 전철에서 ‘불신지옥’이라고 목청 높이는 이들이 주변의 비난을 받을 때 “주님을 위해 우리가 고통 받으니 우리가 진짜 신자”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여기서 이한택 주교는 정의구현사제단 등 시국미사에 참여하는 이들을 ‘좌파’로 규정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 중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교회가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말이 곧 좌파들에게 정당성을 주는 게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평신도들도 교리와 성경을 공부해야 된다고 말할 뿐이다. 아마 마땅한 답변이 없을 것이다. 이어 교황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복음주의자’라고 말했는데, 시국미사에 참여하는 대다수 사제들은 자신을 ‘좌파’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다만 복음에 충실할 뿐이라고 답한다.

한편 이 주교는 사제들이 정치적 발언을 할 수는 있지만, “(사제들의) 정치적 발언은 보편적이어야” 한다면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누구나 보편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한쪽 정당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이를 신자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교회정신에 어긋난다”는 게 이한택 주교의 생각이다. 도대체 어느 정당에게나 수용 가능한 정치적 입장이란 게 있는지, 과연 정의구현사제단의 입장이 민주당 등의 입장과 같은지 의문이다. 사제들이 ‘사회적 복음’을 말하는데, 이한택 주교는 사실상 ‘정치’를 말한다.

▲ 지난 1월 6일 수원교구에서 열린 시국미사에 몰려온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 회원들이 미사 후 성당에서 나가는 사제들의 자동차를 가로막고 비난과 항의를 거듭하고 있다. ⓒ한상봉 기자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과 관련해 묘한 국면이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교회 안에서 보수적인 주교일수록 ‘교도권과의 일치’를 강조해 왔다. 그리고 보수단체들은 정의구현사제단을 ‘교회를 분열시킨다’는 이유로 공박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한택 주교의 말대로 “왼손이 오른손과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같이 마주쳐야 한다”면서 교회 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초대교회에서 제자들도 예수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많은 질문을 했으며, 베드로와 바오로가 싸우고, 예루살렘 교회와 안티오키아 교회가 싸우면서 성장했다는 것이다. 가장 보수적인 주교가 사제들을 상대로 거칠게 싸우고 있는 평신도 손을 들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이들은 말한다. “정치에 간섭하는 사제는 사제도 아니다.” 그런 까닭일까? 지난 3일 시국미사 중 예수회 박종인 신부는 성당 입구에서 이들에게 멱살잡이를 당해야 했다. 이들에게는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 자체가 ‘사제 아님’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되는 모양이다. 만일 교회 안에서 사제와 사제, 사제와 평신도, 평신도와 평신도 사이에 입장 차이가 있다면 건강한 토론을 통해 일치를 바라야 하고, 이게 곧 초대교회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우격다짐을 ‘필요한 충돌’로 보는 것은 국회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며, 교회 전통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오는 10일 광주대교구 남동 5.18기념성당에서 시국미사가 다시 봉헌되고, 그 뒤로도 연이어 시국미사가 예정되어 있다. 어쩌면 이 미사 와중에 또다시 일부 평신도들의 자의적인 ‘사제권 박탈’을 시사하는 행동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들 사제들을 서품한 교구장 주교들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한 명의 은퇴 주교와 또 한 명의 은퇴 추기경, 그리고 몇몇 은퇴 사제들의 권위적 발언에 기대어 함부로 행동하는 평신도들은 현직 주교들의 교도권을 무시하고, 주교들의 사제서품 자체를 의심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제 일부 평신도들의 ‘미사 방해 행동’에 대한 교구장 주교들의 교도권적 판단이 요청되는 시점에 와 있다. 과연 한국 교회는 이견을 가진 집단 사이에서 어떻게 ‘형제적 일치’를 도모할 것인지, 묻는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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