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조희순 씨(가명)가 고해성사를 해야겠다고 굳게 마음을 다잡아 먹은 것은 그 일이 있은 지 10여 년이 지난 뒤였다. 셀 수 없는 망설임과 굳은 결심으로 발걸음을 떼었지만 성당 문 앞에서 돌아서기를 수차례, 그렇게 어렵게 고해실 문을 열었다. 만성 소화불량에 걸린 듯 돌처럼 무겁게 매달린 그 기억은 삶을 저 끝없는 고통의 나락으로 끌고 가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신세 한탄을 들어 준다거나 위로를 기대한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나 두려워 떠올리려 하지 않았던 ‘낙태는 살인죄’라는 말이 사제에게서 비수처럼 심장에 내리꽂혔을 때는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고 싶었다. 죄책감과 창피함, 굴욕감과 알 수 없는 분노가 뒤범벅이 되어 소리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고해실을 나왔다.

혼자서 평생 삭히고 달래면서 사는 것이 차라리 나았을 것이라고 후회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조희순 씨는 그래도 성당에서 만난 하느님 은총으로 살아왔다며, 그 큰 희망을 준 하느님을 저버릴 수 없다며 발길을 끊지 않았다. 전쟁이 나고 미군이 밀물처럼 들어와 술렁거리며 미군 기지들이 곰팡이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할 때 조희순 씨도 한 미군기지 식당에 취직해 가족을 부양했다. 그 즈음 결혼해 아이에 대한 꿈도 꾸었지만 아이를 돌볼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덜컥 생겨 버린 아이를 지워 버리고 온 날, 하늘도 땅도 온통 하얗게 죽어 버린 것 같았다. 조희순 씨는 그날이 평생 잊히지 않을 거라고 했다.

지금도 많은 여성이 비슷한 처지가 되지만 교회는 이들이 현실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어떤 조건에 처해 있는가보다 피임과 낙태에 대한 원칙에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 이들에 대한 교회의 적절한 배려나 사목의 부재는 많은 이들이 성당을 떠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남성으로서 사제가 갖는 체험의 한계는 이들의 고통을 심연에서 알지 못하고 고통의 언어를 자기화할 수 없기에 속수무책이거나 꾸중을 하거나, 또는 메마른 원칙을 되풀이한다.

언제까지 이들의 고통은 구조적으로 외면당해야 하는가. 그러므로 교회가 여성을 존중하고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를 고민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여성 사목자의 출현이 필연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런 일을 겪고도 조희순 씨가 ‘냉담’하지 않고 오히려 더 신앙이 굳어졌다면 기적 같은 일일 것이다. 하느님은 바로 그런 혹독한 경험 속에서도 만나는 분이지만, 그럴수록 이들을 배려하고 보살피는 신앙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의 아픔을 공감할 사목자가 없다면 이런 배려와 돌봄의 공동체는 애초에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한국 교회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교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참으로 역설이고도 놀랍다.

 

▲ 그런 일을 겪고도 ‘냉담’하지 않고 오히려 더 신앙이 굳어졌다면 기적 같은 일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이러한 ‘신앙의 신비’라고 할 만한 일들이 미국 교회에서도 보인다. 크리스틴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영향에 직접적이고도 전방위적으로 노출된 세대다. 어린 시절 하느님께 인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크리스틴은 사제가 되고 싶었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사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좌절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자신의 신앙을 끝내는 대신 수녀가 되어 봉사하기로 결심하고 수녀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사십 년을 살아왔다. 영화 '래디컬 그레이스'의 세 주인공 가운데 하나인 크리스틴 수녀는 자연스럽게 교회 안 여성의 지위 향상과 관련된 일을 해 오며 교회 쇄신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재위 기간 동안에 여성사제에 관한 논의나 교회내 여성의 지위는 과거로 회귀해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을 가야 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왔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교황 선출 당시 로마로 날아간 크리스틴 수녀는 마침내 시스티나 대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나오고,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사용할 ‘베르골리오 추기경’의 이름이 불리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가난과 평화, 기쁨의 성인인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은 과거 그 어느 교황도 교황명으로 사용한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가 진보적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는 상징적인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크리스틴에게 시련은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아래서도 비켜 가지 않았다. 미국의 여성수도자 지도자회의(LCWR)에서 적극 활동을 벌여 온 크리스틴에게는 바티칸 신앙교리성의 조사가 이들의 존재를 ‘근본에서부터 부정하는’ 것으로 여겨지기에 충분했다.

이들에 대한 “교의적 평가”라는 이름으로 2008년부터 행한 이 조사는 LCWR이 ‘심각한 신학적이고 교의적 오류’가 있고, ‘여성사제 서품 및 동성애 문제’와 ‘급진적 페미니즘’에 기울어져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다행히 예상되었던 기간보다 2년 앞서 2015년에 신앙교리성과 LCWR이 공동보고서를 내고 조사를 끝내게 되었다. 언론들에 따르면 이는 ‘교회가 교리경찰 노릇보다 가난한 이들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데 더 힘써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향 덕이다.
 

▲ 요한 23세는 '인자하고 인내하는 자비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교회를 그렸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자비. 예수는 하느님을 자비로운 아버지로 체험했지만 동아시아 전통에서 보면, 아니, 아시아 전체로 확대하더라도 ‘자비’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품성으로 여겨졌다. 그리스도교는 대개 하느님의 표상을 초기시대부터 부성적인 것으로 그리면서도 다른 한편 교회는 자비로움이 두드러지는 모성으로 묘사된다. 요한 23세는 ‘인자하고 인내하는 자비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교회를 그리고 있고, 더 가깝게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어머니야말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하는 교회의 이미지로 ‘가장 아름다운’ 표상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그런가 싶다가도 심각하다면 심각한 의문이 생긴다. 하느님을 자비로운 아버지로 그리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전통이라면 교회도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로 표상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또 같은 맥락에서 아시아에서 자비로움이 어머니의 품성으로 여겨진다면 하느님도 어머니로 표상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여성신학에서 제기하듯이 어쩌면 하느님은 남성과 여성을 넘어서는 분으로 이해하는 것이 ‘궁극적 신비’인 하느님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더 적절한 길이라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앞의 조희순 씨나 크리스틴이 보여 주는 성품이야말로 하느님의 ‘인격’에 가깝게 다가가 있다는 점에서, 작게는 교회가 더 크게는 전 인류가 따라야 할 품성이 아닐까.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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