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찬딜 발로치는 얼마 전까지 파키스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도발적인’ 인터넷 스타였다. 지난해 6월, 스물여섯 살의 꽃 같은 나이에 ‘명예살인’으로 친오빠의 손에 목이 졸려 죽기 전까지는 말이다. 발로치가 한 도발적 언행은 ‘여성을 위해 여성들이 일어나야 한다’거나 ‘파키스탄이 크리켓대회에서 우승하면 스트립쇼를 하겠다’는, 마돈나나 레이디 가가의 ‘도발성’에 비하면 퍽이나 ‘얌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그러한 언사가 파키스탄에서는 전국을 흔들어 놓을 만한 이야기라는 것이 충격적이고 더욱이 그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거기에 좀 더 보탠다면 라마단 기간에 유명 이슬람 지도자와 호텔방에서 얘기 나누는 장면을 찍은 셀카를 인터넷에 올린 것 정도가 될 것이다. 그 지도자는 종교적 가르침을 전하려 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파키스탄 정부는 이 성직자(원래 이슬람에는 교리상 성직자는 없지만 현실에서는 성직 계급이 엄존한다)의 자격을 박탈했다.

대부분의 인터넷 매체는 발로치가 살해된 날에도 ‘아무리 협박이 거세어도 싸울 것’이라고 블로그에 올렸다고 보도했지만, 그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는지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쨌든 발로치의 친오빠가 범죄 일체를 자백했기 때문에 사건은 명예살인이라고 일사천리로 어렵지 않게 결론이 났다. 그러나 아랍권의 대표적 언론인 <알자지라>는 ‘명예살인’이 아니라 파키스탄 사회가 한 극우 집단을 사주해 죽였을 가능성을 진하게 풍겼다. 물론 친오빠가 죽였을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못하는데, 그도 당대의 정치사회적, 종교적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함은 똑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발로치 같은 꼴’을 보기 싫어하는 남성중심 사회가 살인자일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자유로운 남성이 없음은 물론이다. 그 핵심에는 이슬람이라는 종교문화가 있다. 아무리 끔찍한 반인륜적인 살인이라 하더라도 피해자의 가족이 받아들이면 가해자는 곧 풀려나게 되어 있어서인지, 파키스탄에서는 해마다 500-1000명의 여성이 명예살인의 희생자가 된다고 한다. 발로치가 살해된 뒤 3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오랫동안 이뤄지지 않던 반 명예살인 법령이 통과되었다니 늦었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 파키스탄의 인터넷 스타 찬딜 발로치가 친오빠 손에 죽었다는 보도 화면. (이미지 출처 = youtube.com)

카밀(가명)은 파키스탄 여성으로 여성의식이 투철한 그리스도인이다. 이화여대에서 여성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에 더 머물면서 박사학위까지 내쳐 하고 싶어 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교회 일치운동에도 큰 관심을 보여 국내외 가톨릭 활동가들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한번은 한 국제 신학포럼에 참가하여 아시아 그리스도교가 얼마나 가부장적인지 또 가톨릭은 왜 여성사제를 인정하지 않는지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발표자 대부분이 가톨릭 사제들이어서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들었던 장본인이었는데, ‘가톨릭 평신도가 못하는 일을 개신교 친구가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등 여러 감정이 오가게 했다. 어쨌든 그 모습은 무엇에도 주눅들지 않을 것만 같은 당당함 그 자체였다. 아마도 그런 힘은 명예살인, 독성죄법, 결혼지참금 등의 문화가 판을 치는 파키스탄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이 그를 그렇게 훈육했던 걸까.

그런 카밀이었는데, 더 이상 그에게 장학금을 주는 이도 없고, 또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기숙사에서 나오자 막상 갈 곳도 없는 막막한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전에는 장학금을 주는 교회에서 주말마다 초등부에서 대학생까지 영어를 가르치는 일로 용돈을 벌었기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까지 치달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가톨릭은 상황이 더 열악해서 아시아 국가에서 온 평신도에게 여성신학을 하라고 투자하는 교구나 어떤 교회 기관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랬기에 카밀에게 현실적 도움을 주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결국 지인이 운영하는 기숙사에 한 달인가 더 머물다가 파키스탄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카밀은 파키스탄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다시 돌아가야 하는 신세를 한탄하며 울고 또 울었다. 카밀이 더 교육을 받고 여성신학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면 아시아 교회는 좀 더 나아졌으리라. 발로치와 카밀은 단지 개인의 운명으로 돌리기에는 구조적으로 잘못된 무엇 때문에 살해당하고 또 한평생을 자기 생각과 몸이 따로 노는 삶을 강요당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하긴 제도와 구조의 불의함 때문에 희생당하는 이들이 어디 이들뿐이랴. 문제는 이를 알고서도 막지 못하고 끝없이 되풀이되는 데에 있고, 또 종교 세력 중 어떤 조직이나 기관도 이를 극복하려고 전면에 나서지 않다는 데에 있다고 보인다.

파키스탄을 비롯해 종교 근본주의자들이 판을 치는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가톨릭 교회를 볼라치면 늘 양가감정에 빠지곤 한다. 하나는 소수 종파로서 ‘박해받는 교회’에 대한 안쓰러움과 연대의 감정이다. 다른 하나는 그 소수의 교회가 억압적 현실에 맞서기에는 내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또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어려울 것이라는 낙담이다. 아시아 인구의 3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성직자와 평신도, 특히 여성 평신도에 대한 차별이 엄연함은 교회가 공공성을 확보하고 더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목소리 구실을 할 수 있는 내부로부터의 동력을 스스로 차단한다. 오랫동안 어민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해 왔고, 독성죄법으로 신자들이 끊임없이 기소되어 사형에 처하는 일이 반복되자, 그에 대한 항거로 자신의 교구민이 재판받은 바로 그 법정 건물에서 권총으로 머리를 쏴서 자살한 파키스탄의 존 조셉 주교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고통 받는 민중의 삶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가 ‘가난한 이와의 대화’를 포함한 삼중대화를 정식화한 지 40년이 넘었고 또 ‘특별 사목중점’으로 정한 대상 가운데 여성이 있음에도 이들의 교회 내 처지가 예전과 같거나 더 후퇴했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제도교회가 이들의 진정한 인간발전의 걸림돌이 되어 왔고 앞으로도 변화되기는 ‘낙타의 바늘귀’보다도 더 어려운 것은 아닌가. 과연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이의 교회’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은 언제까지 교회제도를 치장하는 수사로 남아 있어야 하는가. 가난한 이들이 계속 가난한 상태에 있어야 비로소 교회가 유지되는, 가난의 재생산에 기생하는 이러한 ‘악의 힘’은 무엇인가. 결국 제도교회와 성직자가 이 악의 힘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그 뿌리를 끊어 내는 데에 앞장설 때야만 비로소 교회가 ‘가난’이라는 말을 사용하더라도 그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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