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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 스님과 여성 부제[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 - 황경훈]

오늘부터 황경훈의 "교황 프란치스코와 하느님의 백성"이 격주로 연재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행을 중심으로 교회쇄신과 개혁을 신학적, 종교학 관점에서 다루고자 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우리신학연구소장 황경훈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얼마 전 ‘푸른 눈의 수행자’ 현각 스님이 그동안 몸담았던 조계종에 실망해 떠나겠다고 밝히자 불교계뿐만 아니라 일반인 사이에서 회자되면서 이런저런 포탈사이트 인기검색어에 오르는 등 화제가 되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그만’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냥 두면 자연히 잊힐 일 같기도 한데, 그가 하버드대 출신이요 미국인이라서 한국인의 사대주의(?)를 자극했기 때문에 그랬을까. 더욱이 이름만 대면 불교계에서는 알 만한 중앙승가대학 교수이자 이름난 사찰의 주지가 현각의 시각을 한국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더불어 ‘자문화 우월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불교 안에서는 이에 대해 아직도 찬반으로 갈려 논란이 계속되는 모양이다. 이웃 종교 얘기라서 함부로 끼어 들거나 누구 편을 들어 말할 처지가 아니기는 하지만, 그 논란 와중에 나온 얘기는 한국 천주교회에도 그대로 해당되는 것 같아 여기에 빗대어 말을 꺼내 본다.

그는 현각이 비판한 내용을 유교 문화의 잔재, 승려와 재가자(평신도)의 차등, 기복주의 등 여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는데, 가장 심각해 보이는 종단의 부패 문제는 보이지 않아 슬쩍 건너뛴 느낌이 든다. 더욱이 현각을 비판한 이 교수 승려는 기복주의나 스님과 신도의 차등이 모든 종교에 있기에 조계종만의 문제가 아니라면서, “스님과 신도의 차등은 종교집단에서는 당연하다. 세상 어느 종교에서 성직자와 신도가 평등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성직자(승려)를 길러 내는 승가대의 교수가 이런 말을 한 것도 상상하기 어렵지만, 감정이 격앙된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쏟아 낸 발언이 아니라 매우 확신에 찬 단언으로 보이기에 충격적이다. 그것은 그의 말 자체가 갖는 파괴력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충격적인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풍토가 우리의 현실이라는 데서 오는 당혹스러움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한국 종교계 전반에 퍼져 있는 성직중심주의 문화를 여과 없이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 조계종을 떠나겠다고 밝힌 현각 스님. (이미지 출처 =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카스트라는 사성제의 비인간적 불평등에 반기를 내걸고 브라만교(힌두교)를 거슬러 태동한 것이 불교라면, 더 구체적으로는 사제 계급인 브라만이 다른 이들의 출생과 고통스러운 삶과 그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숙명적 현실을 거부한 것이 불교의 시작이라면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 21세기 한국 불교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승려들의 집단인 승가는 부처 생존 당시부터 브라만교와의 차별성을 간직한 고유한 의미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깨달음이 승려나 재가자나 모두 자신에게 달렸다는 부처의 근본 가르침이 그러한 평등에 있음을 잊고 있는 듯 보인다. 하긴 부처조차도 여성을 제자로 승가에 받아들이기 매우 주저하다가 마지못해 받아들였으나 ‘80살 먹은 노비구니가 동자승을 만나면 반드시 예를 갖추어 절을 해야 한다’는 규율을 비롯해 8가지 규칙을 만들었다는 설에서 보이듯이, 당시 문명이 여성들에게 매우 차별적이었으며 거기서 부처도 자유롭지 않았으리라고 보인다.

가부장제를 문화적 뿌리로 하는 그리스도교도 여성에게 차별적이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한국 천주교회는 유교적 신분질서를 바탕으로 230여 년 동안 상명하복적인 수직적 질서가 성직자와 평신도를 나누며 차별의 문화를 유지 또는 강화해 왔다. 그러나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장으로 종교 안의 뿌리 깊은 남녀차별의 문화가 구태의연한 ‘과거의 일’로 종말을 맞을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월 로마에서 열린 국제수도회장상연합(UISG) 총회에서 여성 부제를 연구할 공식 위원회를 만들자는 제안에 동의한다고 밝히고 세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 8월 2일에 13인으로 구성된 ‘여성 부제직 연구위원회’를 만들었다. 일부에서는 여성 부제에 이어 여성 사제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강한 희망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 ‘전통’을 거스르지는 않기 때문에 부제라고 하더라도 사제직 전 단계로서의 부제가 아니라 ‘영구 부제’로 여성의 지위를 고정시킬 것이라고 단정한다.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앞으로 더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만 적어도 몇 가지 점에서 이런 움직임이 주는 의미는 작지 않다.

   
▲ 비구니. (이미지 출처 = hu.wikipedia.org)
무엇보다도 ‘세계의 반’인 여성에 대해 교회, 정확하게는 교황의 ‘태도’가 전임 교황과는 현격히 다른 전향적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바티칸 기구 대표에 여성을 임명한 일이나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을 축일로 정한 것이 이를 상징한다면, 이번 여성 부제 연구위원회 설치는 그러한 상징을 현실로 실현할 수 있는 길이라는 점에서 교회 개혁의 핵심인 여성 문제에 구체적으로 다가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는 또한 ‘한국 교회의 현실을 생각할 때 여성 사제 논의가 아직 이르다’는 단계론적 태도에 대해 ‘그러니까 한국 상황에 맞는 여성 부제의 지위와 역할은 무엇인지 연구하고 논의하라’는 구체적이고 실천적 요구이며 따라서 한국 교회는 이에 응답해야 하는 과제를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을 피하려 하거나 이행을 태만히 한다면 이는 기존 한국 교회가 늘상 강조해온 교황과의 일치를 거스르는 매우 위선적인 태도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쇄신은 기도에서 출발한다. 앞서 말한 불교나 그리스도교는 가부장제 문화를 그 모태로 하고 있고 여성을 차별한 역사를 공유한다. 그러나 두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 평등에 있다면 종교가 여성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은 깊은 기도에서 나오는 반성을 실천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여성도 사제가 될 수 있다’는 그러한 기회와 지위의 평등뿐 아니라 2500년 동안 무시되고 잊혀온 ‘가장 가난하고 약한 자’로서 여성의 복권은, 남성중심 문명에서 태동한 여성 없는 ‘반쪽짜리 종교의 종교성’을 쇄신한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온전한 영성의 종교로 거듭난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영성의 시대를 예감하는 여명이 동터 오고 있다고 본다면 너무 성급하다고 할 것인가. 그것이 성급한 낙관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곳곳에서 신도의 이탈로 현상하는 기성 종교의 종말의 전주곡이 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이지 않는가.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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