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 집담회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가 ‘한국정치의 종교과잉을 진단한다’를 주제로 연 집담회는 한국 천주교, 개신교, 불교의 현황과 정치, 사회 참여에 대한 다양한 갈래의 이야기로 번졌다. 집담회의 결론은 분명하지 않았지만, 발표자들은 대체로 ‘종교의 공공성’이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주관 단체인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은 탄핵 위기에 처한 박근혜 대통령이 최성규 목사를 국민대통합위원장으로 임명하는 등 “보수 개신교계 인사를 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집담회의 취지에 대해 “특정 정치세력이 종교세력과 결탁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치의 종교과잉 징후를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집담회는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함께빌딩에서 열렸다. 박광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가 좌장을 맡고,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에 참여하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단체 대표가 각각 자신이 속한 종교 입장에서 발표했다.

▲ 심현주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 ⓒ강한 기자

정치권과 종교, 서로에게서 이익을 취했다

천주교 발표자 심현주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에서 민주화 이후 정치권과 종교가 서로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성규 목사의 국민대통합위원장 취임뿐 아니라 새누리당이 인명진 목사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한 것,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박근혜 정부의 관계를 볼 때 교회가 정권의 도덕적 정당성 인정을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그는 교회도 교세와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데 정권을 이용하고 있다면서, 천주교의 명동성당 일대 재개발, 서소문 성지 개발은 4대강 사업에 대한 암묵적 동의, 세월호참사에 대한 침묵과 관련 있다고 지적했다. 또 사회복지시설, 학교 등 교회 부속기관들이 정부 보조금과 지원금을 받고 있는 점도 거론됐다.

심 위원은 대안으로 정부의 종교 지원에 대해 시민사회가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교회 권위자가 자신 또는 교회 권력을 늘리고자 정치권에 개입하고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교회 스스로 통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진호 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강한 기자

‘기독 정당’ 실패가 보여 주는 개신교 변화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한국정치의 종교과잉’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다”며, 그보다는 “종교의 공공성 부재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종교에 공공성이 없는 가운데 많은 종교인들이 정치에 참여하며, 많은 정치인의 종교 활용이 난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광서 대표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황교안 국무총리 임명을 예로 들며 “대통령이 정교분리에 대한 생각 없이 자신을 위해 힘센 사람만 쓴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종교를 가진 사람의 정치, 사회 참여는 공공성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된다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사회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진호 실장은 “개신교 교단 중심의 자정능력은 보이지 않지만, 개신교회 내 신앙운동 차원에서는 활발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러한 운동과 관련해 감지되는 변화를 소개했다.

특히 그는 2016년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기독자유당 등 개신교 정당의 실패는 “공공성 없는 정당이 성공하지 못한 경우”이며 “목사들이 교인들을 움직이는 능력이 현저하게 낮아졌다는 것을 보여 줬다”고 해석했다.

이 당들이 대형교회 목사들과 개신교 단체장들의 지지를 받고도 국회 입성에 실패한 것은 “많은 개신교 신자들이 목사들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고, 목사들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 계기라는 것이다.

▲ 박광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강한 기자

불교에는 수직, 그리스도교에는 수평을?

한 남성 참가자는 종교의 교리나 철학 면에서 불교에는 ‘수직적 믿음’을 강화하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수평적 깨달음’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발표자로 참여한 조재현 참여불교재가연대 사무총장은 “대승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저잣거리에 나가 중생의 아픔을 보듬어 주는 것”이라며 “깨닫고 나서 가만히 앉아 있기 위해 일평생을 바치는 건 너무 소모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불교가 실천으로 다가서야 하는 것을 스님들이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불교의 시스템이 있다 보니 어떻게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스도교에 ‘수평적 깨달음’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김진호 실장은 개신교에서는 대형교회들의 힘이 최고조에 있지만 교단에 속하지 않은 교회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이런 교회들이 새로운 실험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른바 ‘작은 교회’들이다.

그는 “교회에서 목사 중심 권위 구조가 해체되는 양상”이라며 “이런 변화를 더 바람직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게 개신교 신학자, 성직자의 관심”이라고 덧붙였다.

▲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가 ‘한국정치의 종교과잉을 진단한다’를 주제로 집담회를 열었다. ⓒ강한 기자

심현주 위원은 “종교 제도의 구조 문제가 영향을 끼치겠지만 결정적인 영향일까” 물으며, “수직 구조라면 가톨릭이 둘째가라면 서러운데 부정적이기도 하지만 교회 안에서 행동을 일사불란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천주교에서 사회적 가르침(사회교리)에 대한 교육이 전국적으로 진행된 것이 신자들에게 진보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봤다.

이어 심 위원은 “수평적이라는 불교에 민주적 요소가 있는가” 물으면서 “불교의 미륵 부처님에 대한 사상이 우리 역사 속 사회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이 얼마나 정교화되고 교육되고 있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발표에서 조재현 사무총장은 “불교 조계종의 종헌과 종법, 종령 어디에도 재가 신도를 포함한 승려, 사부대중의 정치 및 현실참여에 대한 종교적 기준과 부처님의 교리에 입각한 해석을 명문화해 놓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교에서도 순수 정교분리를 외칠 게 아니라 어떻게 참여하고, 어떻게 기준을 설정할 것인가를 사부대중이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시기”라며 “종교와 정치의 구분과 한계, 견제와 참여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과제”라고 주장했다.

개혁을 위한 종교인네트워크는 불교와 개신교, 천주교의 진보 성향 단체들이 종교의 ‘수구화’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상설 단체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2005년 만들어졌다. 천주교에서는 우리신학연구소, 개신교에서 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불교계에서는 참여불교재가연대가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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