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버럭버럭 화를 잘 내는 친구가 있습니다. 감정 조절이 어려운 이런 사람들은 그냥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상책인 듯하지만 요즘의 한국 사회를 사는 이들 중에 그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고백하건대, 제가 그 친구보다 감정적인 균형감을 훨씬 더 가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답할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튼 세상에 불만이 많은 이 친구가 갑자기 질문을 해 왔습니다. 동일한 사안을 가지고 고해성사(고백성사)를 두 번 했다는 겁니다. 사연인즉, 첫 번째 고백을 했을 때 받은 보속이 사실 그 스스로 감당하기 벅찬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용히 물러나와 다시 시간을 내어 다른 성당에 찾아가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또 한 번 고백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느냐가 그 친구의 질문이었습니다. 당연히 용서 받는다고 답하고 나서는, 질문을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해서 보속이 무거운 경우에는 어찌해야 하는지로 바꿔서 질문을 해 본 것입니다. 우선, 독자분들께 고해성사의 보속과 관련된 다른 속풀이 기사를 함께 읽어 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보속은 안 해도 되지 않나요?”, “고해소에서 박대당한 기분은 뭐죠?”).

아주 간단히 말씀드리면, 보속은 고백성사를 하러 온 당사자가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개인의 능력을 넘는 것은 보속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할 것입니다. 이웃 중에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부당한 부탁을 해서 심하게 다툰 사람이 있다고 해 보겠습니다. 그가 고백소에 찾아와 고백을 하였습니다. 사제는 그 신자가 고백은 하였지만 아직도 정서적으로 상처를 가지고 있는 상황인데 당장 화해를 하라고 합니다. 이런 것이 적합치 않은 보속의 예입니다. 그래서 적합치 않은 보속을 받느니 성사를 본 당사자가 사제에게 스스로 무엇을 하겠노라고 보속에 대한 계획을 말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상태를 자기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 고백성사할 때 신자 앞에는 고백성사 순서지가 붙어 있고 맞은편에 신부가 앉아서 고백을 듣고 그에 맞는 보속을 준다. ⓒ왕기리 기자

고해성사를 아주 잘 들어준 것으로 유명한 프랑스 아르스 마을의 본당 사제, 장-마리 비안네 성인은 고백자의 마음을 꿰뚫고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사제들은 어떤 보속이 고백소를 찾아온 이에게 적절한 것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 그냥 대략의 범주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그것은 일반적으로, 자선, 단식, 기도 등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행위입니다. 고백을 듣고 나서 그중에 한 가지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어느 우연한 기회에 보속에 관하여 친한 형제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는 고해성사의 마지막 부분인 사죄경을 바치기 직전, 보통 ‘주님의 기도’를 천천히 그 뜻을 헤아려 가며 바칠 것을 보속으로 드립니다. 좀 더 공을 들여 보속을 하고 싶어하는 분에게는 묵주기도 한 단에서 한 꾸러미까지 상황을 봐서 제안을 합니다. 그런데 그 형제 신부님은 가능하면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보속을 드리고자 한다고 자기 개인의 의견을 나눠 줬습니다.

사람의 운명이 어찌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데 보속으로 부담을 주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것이 그 형제의 뜻이었습니다. 그 형제에게는, 평일 미사참례 한 번을 보속으로 주는 것은 좋지 않은 보속이 되는 셈입니다. 그 며칠 사이에 그 신자가 어떤 다른 일을 만나게 될지 모르면서 그런 보속을 준다는 것은 부적절한 것이 되니까요. 흠.... 저보다 더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저도 나름 간단하고 실행하기 좋은 보속을 권하는 축에 든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 형제는 아예 고백소 안에서 주님의 기도를 같이 바치는 식이었습니다. 고해성사를 한 그 자리에서 바로 해소할 수 있는 보속이라.... 처음에는 그래도 이건 너무 간편한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돌이켜 보자니 꽤 괜찮은 고해성사 방식이라 여기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버럭버럭 화를 잘 내는 그 친구는, 실행하고자 하는 의지도 생기지 않는 보속을 받고 고민하기보다 나름 자신이 감당할 만한 보속을 찾아 시간을 한 번 더 냈습니다. 아마도 이런 것도 공로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느님께서도 그런 정성을 눈여겨 보시리라 믿습니다.

 
박종인 신부(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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