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박종인]

고해성사를 편히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고해소를 향해 발을 돌리는 사람은, 발을 돌리는 순간부터 용서를 받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마음에 들어찬 돌덩어리의 무거움을 덜어 내고 싶어서 고해소를 찾는 이들은 마땅히 조금이라도 내적인 해방감을 맛봐야 할 것입니다. 내적인 뉘우침이 미비한데도 전례시기에 맞춰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고해소를 찾는다 해도 해야 할 숙제를 해결했다는 홀가분함이 있습니다. 하물며, 확실히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아는 신자가 고해소를 찾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결정이자 회심의 태도가 드러나고 있기에 더 큰 위안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해소에서 그 회심에 대한 격려를 받지 못하고 되레 부담스런 훈화만 듣게 된다면.... 이건 반전이죠. 이런 경우에 고백을 하러 들어갔던 사람은 괜히 왔다 싶은 후회가 덧붙여질 겁니다. 심한 경우에는 그 반발심으로 인해 냉담 모드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부활절과 성탄절을 앞둔 고해성사, 즉 판공성사라는 제도로 한국에 정착된 이 전통에 맞춰 신자들은 사순절과 대림절 동안 고해소를 찾아옵니다. 하지만 시간을 못 내고 지낸 사람들을 위해 각 본당은 보통, 집중적으로 고해성사를 듣는 일정을 잡습니다.

▲ 인천교구 한 본당의 판공성사 때 사제석의 모습. ⓒ지금여기 자료사진
언젠가 성탄절을 앞두고 고해성사를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날 어느 본당에서 도움 요청이 와서 갔던 적이 있습니다. 성당 안 여기 저기에 고해소가 준비되어 있었고, 각 고해소에는 판공성사표를 든 신자들이 길게 대기 중이었습니다. 이런 날 고해소를 찾아온 모든 신자들의 이야기를 정성껏, 충실히 들어 준다는 것은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적잖은 민폐가 되기에 사실상 매우 눈치 보이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을 핑계로 고해소를 찾는 신자도, 고백을 들어야 하는 하느님의 대리인인 사제도 가능한한 간단히 성사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종종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할 중대 사안이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경우에 일어납니다. 밖에는 긴 대기열이 있는데, 몰아치기 판공성사에 와서는, 중한 범죄를 고백하고 나서.... 이 밖에도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하여 사해 달라고 말씀하시면, 듣는 하느님의 대리인은 그 사람이 참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잘못한 상황에서 빠져나오려는 원의가 있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고백건대, 그 본당의 판공성사를 도와주러 갔던 그날, 제게도 그런 분이 찾아왔던 겁니다. 가정이 있으나 현재 외도를 하고 있는데, 그 부적절한 관계를 쉽게 정리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닌 듯 보였습니다. 저는 이런 사안에 대해서는 조금 더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지만, 밖에서 기다리는 다른 신자들을 생각하니 붙들고 있기가 어려웠기에 이런 사안을 왜 이런 날 들고 왔냐고 원망 섞인 훈화 혹은 짜증섞인 꾸중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시간을 내어 다시 고백을 해 보시라고 했고, 사죄경을 읊어 드렸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미루다 미루다 판공성사 시즌을 이용해서라도 고백을 하고 싶었던 그 신자분의 마음을 너무 외면한 것은 아닌가 성찰하며 미안함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리고는 깨달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러 온 하느님의 백성에게 꾸지람하는 것은 제 몫이 아니란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러실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의 고백을 들은 사제는 적절한 훈화와 보속(이에 대해서는 “보속은 안 해도 되지 않나요?”를 참고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죄를 뉘우치고 있음을 마음에서만이 아니라 행실로 드러내 보여 주는 보속은, 고백을 한 사람이 현실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종종 사제는 고백자가 자신의 과오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태도를 보일 때, 의식적으로 좀 어려운 보속을 주곤 합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너무 과해서 고백자가 아예 지킬 수 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좋은 보속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일용직 노동자에게 팔일 피정을 다녀오라고 한다거나, 몸이 안 좋은 사람에게 날마다 미사 참례를 하라는 식의 보속 말입니다.

쉽진 않겠지만, 고백할 내용이 좀 무거운 것은 판공성사 기간을 피하고 평소에 시간을 내어 고해소를 찾아가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좀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마음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아는 사제를 피하시는 것도 부담을 더는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사제와 얽힌 문제가 있다면, 고해성사를 드리기가 심적으로 더 부담스러울테니까요.

고해소에서 고백자에게 면박을 주고 불편하게 만드는 사목자는 자신이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 걸맞은 태도를 보였는지 반성해 봐야 합니다. 한편, 고해소를 찾는 신자도 불편한 상황이 예상된다면, 앞서 알려드렸듯이 다른 본당에 가서 고백을 하거나 명동 등에 마련된 상설고해소 등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 자신에게 추천하고 싶은 보속을 고해 사제에게 제안해 볼 수도 있습니다. 고해소에 가서 기분이 더 언짢아지는 일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서강대 인성교육센터 운영실무.
서강대 "성찰과 성장" 과목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