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선의 '세븐' - 6]

1768년 부활절, 길에서 몸을 팔며 돈을 구걸하던 로즈 켈러는 방 청소를 해 주면 금화 한 닢을 주겠다는 젊은 귀족에 이끌려 한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그녀는 모진 채찍을 맞거나 칼로 짼 맨 살에 뜨거운 밀랍이 부어지는 등 갖은 고통을 당하다가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이를 유명한 ‘부활절 사건’이라고 한다. 앞날이 환하던 젊은 귀족 청년은 이 사건으로 생애 처음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사드 백작이 세상에 이름을 알린 사건이었다.

석방된 뒤에도 사드의 행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최음제가 들어 있는 사탕을 가지고 다니면서, 각종 가학적 혹은 피학적 성행위에 몰두했고, 남색도 서슴지 않았다. 불법적 최음제 사용으로 살인 혐의를 받은 사드는 이탈리아로 도망쳤는데, 그 와중에도 자신의 처제를 애인으로 데려갔다. 그 처제는 심지어 수녀였다.

그 뒤로도 그의 엽색 행각은 끊이지 않았고, 프로방스 지역의 유서 깊은 귀족 집안의 상속자였던 사드 백작은, 성인기 대부분을 감옥과 정신병원에서 보내다가 결국 정신병원에서 죽었다. 학문적 측면에서 그의 문학작품은 지금도 연구되고 있으나, 그의 삶은 타락과 무절제한 정욕의 삶 자체였다. 사디즘(Sadism), 즉 타인에게 고통을 주면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성도착증은 바로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정욕은 탐식과 더불어, 대표적인 육체의 죄악 중 하나다. 칠죄종을 처음 정립한 수사 에바그리우스는 이러한 육체의 욕망이, 이내 분노나 우울, 허영, 교만과 같은 영혼의 타락으로 이어진다고 하였다.(실제로 에바그리우스는 젊은 시절, 당시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신학 논쟁을 통해 유명세를 떨쳤는데, 그러던 중 한 고위 관료의 부인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꿈의 계시와 탈출, 사막에서의 금욕적 은거를 통해,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일곱 가지 대죄-정욕', 대 피터르 브뤼헐.(1558)

물론 성적 욕망은 아주 자연스러운 생물학적 욕구다. 약 12억 년 전 유성 생식이 시작된 이래, 거의 모든 동물은 암컷과 수컷으로 나뉘어 서로 사랑하고 또 번식하고 있다. 성적 욕망에서의 완전한 해방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궁극적 죽음과도 같은 의미다. 과거 중세 시대에는 성적인 금욕을 강조했고, 심지어 이를 어길 경우 가혹한 벌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성적 욕구는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서 억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마음은,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모두가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다. 마찬가지로 이성을 좋아하는 마음도 외부의 강압에 의해서 억누를 수 없다. 가장 원초적인 생물학적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욕(Luxuria)은 일반적인 성적 욕구와는 상당히 다르다. 정신의학적으로는 상당수의 병리적 상태가 정욕, 즉 병적 성욕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상당수의 조울병 환자들은 조증 삽화 동안 부적절한 성적 탐닉에 빠진다. 앞서 말한 가학증, 피학증, 유아성애증, 노출증, 관음증 등의 성도착증도 역시 정욕의 결과다. 일부 인격장애 환자는 자신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타인을 성적으로 착취하기도 한다. 이는 종종 강간이나 성폭행, 성추행 등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한 국내 연구에 의하면, 성폭력 가해자 중 36퍼센트가 성도착증, 32퍼센트가 B군 인격장애 환자였다.

일부 장애는 성공적으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상당수의 정신성적 장애는 잘 낫지 않는다. 초기에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신과를 찾아 치료를 받기도 하고, 종교기관에서 상담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 법적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말 그대로 죄를 짓고 벌을 받는 것이다. 칠죄종, 즉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정욕의 일곱 가지 죄 중에서, 세상의 법에 의해 직접 처벌받는 죄는 정욕뿐이다.

▲ '정욕', 가브리엘 델가도.
사실 정욕, 즉 병적 성욕의 특징은 성욕 자체의 과다함이 아니라 성적 ‘대상’과 ‘방법’의 부적절성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한 부부간의 정상적 성욕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해도, 그 대상이 다른 여자의 남편 혹은 다른 남자의 아내를 향하고 있다면 곤란하다.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해도, 상대를 학대해서 쾌감을 느낀다면 그 역시 난감한 일이다. 건강한 사랑은 반드시 그 대상과 방법의 적절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이 적절성의 판단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인터넷과 잡지, 각종 방송매체에는 왜곡된 성적 자극이 넘쳐 난다. 드라마에서는 온통 부적절한 불륜 이야기가 가득하다. 점점 성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개념이 희미해지고 있다. 물론 올바른 성윤리에 대한 강한 도덕 기준이 있던 시기에도, 일탈하는 사람이야 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기준 자체가 없어지는 것 같다.

사드 백작이 쓴 "소돔의 120일"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이나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고, 지금도 커버를 씌운 채 19살 이상만 살 수 있는 책이다. 사진은 한 장도 없는, 글자책에 내려진 유례 없이 강력한 조치였다. 많은 나라에서는 출판 자체가 금지되고 있다. 1789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옛날’ 책에 가한 엄격한 기준에 대해서 개인적 불만은 없다. 그러나 사드의 책이 현대인의 성의식에 미치는 현실적 영향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제대로 읽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지나친 성적 자극과 왜곡된 메시지가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엄청나게 쏟아진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섹시한’ 대상이 되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노력한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섹시한’ 대상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 해악이 얼마나 되는지 추정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개인의 성적 욕구를 통제하던 때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현대 사회에 적합한 성윤리와 도덕 기준에 대해서, 과연 ‘적절’하게 논의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안드레아병원 영성과 사회정신연구소 연구소장
성안드레아병원에서 마음이 아픈 환자를 돌보는 한편,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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