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선의 '세븐' - 5]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전 세계 경제가 얼어붙은 2008년, 한국 조선업계는 역대 최고의 실적을 쌓았다. 그 뒤 조선 해양 수출 실적은 4년 연속 치솟았고, 정부는 ‘신성장동력’을 앞장서 선도하기 위해 거액의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은 최근 3년간 총 5조 원, 삼성중공업은 1조5000억 원 적자를 냈다. 이제 몇만 명 단위로 구조조정이 진행될 예정이다” – 경향신문 4월 23일자(수정).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핵심적인 교만은 바로 휴브리스(hubris)라고 할 수 있다. 오만으로도 번역되는 휴브리스는, 지혜롭고 뛰어난 자가 결국 실패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사회학이나 경영학에서 많이 쓰이는 개념이다. 특히 창의적 혁신과 과감한 시도를 통해서 큰 성공을 거둔 기업이 이내 휘청거리다가 무너지고 마는 경제 현상을 잘 설명해 주는 것이 ‘오만 혹은 독단’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휴브리스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과거 자신의 경험과 능력, 방법을 우상화하는 심리적 경향을 말한다.

사실 교만은 칠죄종 중에 하나가 아니라, 일곱 가지 죄악의 뿌리, 즉 근본적 죄로 취급된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교만에서 허영을 떼어내어(아마도 7이라는 숫자로 맞추기 위해서), 허영을 칠죄종의 하나로 분류했다. 정신의학적으로 허영은 연극성 성격, 오만은 자기애적 성격과 어느 정도 관련된다. 정리하면, 허영의 요소를 뺀 교만이 ‘오만과 독단’, 즉 휴브리스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교만과 겸손(Superbia en Humilitas), 히에로니무스 비릭스(Hieronymus Wierix), 1579, 네델란드 Museum Boijmans 소장)

그래서 예수회 선교사였던 판토하(Pantoja, Didace de)는 자신의 책에서 교만을 다음과 같은 순서로 서술했다. 첫째, 부유와 건강에 관한 자기만족. 둘째, 자신의 선함에 대한 우월감. 셋째, 남다른 재능에 대한 왜곡된 추구. 넷째, 칭찬과 명예를 바라는 욕심이다. 사실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조금은 ‘귀여운(?)’ 점도 있는 교만이다. 본심이야 어쨌든, 겉으로는 ‘풍요롭고, 건강하고, 착하고, 뛰어나고, 칭찬받는’ 삶을 열심히 추구하게 하는 이득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판토하가 말한 다섯째 교만, 즉 ‘높은 지위와 권세에 빠지는 교만’은 상당히 파멸적이다. 왜냐하면 본인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무리 전체를 결국 몰락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역사가 수많은 어려움에도 끊임없이 진보해 온 이유가 바로 창조적 소수에 있다고 하였다. 기존의 가치와 관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창조적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혁신적 무리가 전체 집단을 성공으로 이끌어 나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편 토인비는 이러한 창조적 소수가 흔히 코로스(Koros), 즉 도덕적 균형의 상실에 빠지고는 한다고 하였다. 이는 기존의 성공에 도취되어 정확하게 주변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휴브리스, 즉 오만과 독단에 빠지게 된다. 높은 지위와 권력을 차지한 창조적 소수가, 이내 지배적 소수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남을 거느릴 것도 생각나고, 원수를 잡아들여 보복할 것도 생각나고, 나를 두려워하며 아첨하는 자들이 나를 기쁘게 할 것도 생각나고, (내가) 어떤 사람을 땅에 내칠 수도, 어떤 사람을 하늘 위로 끌어 올려 줄 수도 있다는 것도 생각나고, 불쌍한 사람이 하소연하면 그들을 도와줄 것도 생각나고, 도움 받은 이들이 나를 칭송하고 좋아할 것도 생각나고, 그러면 (칭송을) 겉으로 사양하는 척 할 것도 생각나는 것이다”- 판토하, "칠극"에서 발췌, 수정.

창조적 혁신을 통해서 그들은 높은 자리에 오르고, 또한 그러한 성공은 집단 전체에도 큰 이득을 가져오고는 한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성공 방식에 매몰되어, 새로운 환경 변화나 자신의 지위 변화에 적합한 패러다임의 전환에 실패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토인비는 휴브리스에 빠진 집단이 결국 네메시스(Nemesis)라는 복수의 여신에 의해서 아테(Ate), 즉 파멸한다고 하였다. 혁신적 사고와 불굴의 노력, 그리고 상당한 운(?)에 의해서 천신만고 끝에 달성한 값진 성취가, 높은 지위에 오른 후에 점차 무너지고 마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오만과 독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교만에 상대되는 칠추덕은 바로 겸손인데, 이는 가장 어려운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겸손의 가장 마지막 단계는 ‘남들이 나에게 모욕 주기를 깊게 바라며, 이를 즐거워하는 것’인데, 보통 사람은 도무지 달성하기 어려운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자신감과 성취를 좋은 가치로 생각하는 현대인에게, 이러한 수준의 겸손을 요구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겸손이란 과연 무엇일까?

약 20만 명의 조선업 근로자 중에서, 내년 초까지 약 3만 명, 많게는 5만 명이 실직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경영진의 심각한 비리가 있었던 것도, 오너의 명백한 잘못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달이 차면 기울듯이, 이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도 이상하다.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다. 우리는 아직도 ‘하면 된다’ 정신으로 맨 땅에 조선소를 만들고, 배를 만들어 팔던 1970년대의 성공 도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그때는 그런 방식이 통했고, 그것이 당시의 창조적 혁신이었다.

왕년의 성공담을 많이 꺼내는 임원이나 회사는 휴브리스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가 있다. 황량한 바닷가에 무작정 거대한 조선소를 짓기로 했던 ‘과거의’ 창조적 소수가 수십 년이 지난 우리 사회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정말 대단했지만, 이제 옛날 일이다. 휴브리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성공 경험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야만 한다. 찬란한 과거에 대한 미련은 현재의 판단 착오와 미래의 실패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다. 창조적 소수의 열매를 모두가 나누어 먹듯이, 오만한 지배적 소수가 일으킨 피해도 모두가 나누어 받게 된다.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겸손의 덕목이란, 과거 화려했던 성공의 추억과 그 방법론을 얼른 마음 속에서 깨끗이 지워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 안드레아병원 영성과 사회정신연구소 연구소장
성 안드레아병원에서 마음이 아픈 환자를 돌보는 한편,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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