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스 바틀로그와 주원준 대담

“교황이 하려는 개혁은 ‘가장 예수적인 개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 잡지 <시대의 소리들>(Stimmen der Zeit) 편집장 안드레아스 바틀로그 신부의 표현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9월 25일 서강대에서 바틀로그 신부를 만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끄는 교회 개혁의 전망과 유럽 교회의 현안에 대해 들었다. 이 자리에는 주원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이 참석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틀로그 신부는 앞으로 교회 개혁 방향의 주된 키워드는 ‘탈중앙집중화’와 ‘시노드’(Synod, 가톨릭교회의 중요한 문제를 토론하는 대의원회의)라고 본다. 그가 보는 ‘탈중앙집중화’는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재하는 주교 시노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보통은 주교 시노드(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하면 주교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2년이나 4년 뒤에 교황의 뜻에 따라 문헌이 나오면 그걸 모든 주교들이 따르는 식이었지요. 또는 주교 시노드 시작 때 교황이 큰 방향을 짚어주거나 회의 중간중간에 교황의 의중을 직접 또는 간접으로 알려줬습니다.

지금 교황은 주교들의 뜻을 진짜로 물어보시는 것 같아요. 주교들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어떻게 토론하고, 뜻을 모아 어떻게 합의하시는지 그냥 맡겨둔 것 같습니다. 지역별로 주교들이 모두 다르게 생각할 텐데, 교황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주교들이 글로벌한 차원에서 책임감과 눈을 가지고 토론하는 것을 원하는 것 같아요.”

다만 바틀로그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원하는 ‘토론’ 문화가 아직 가톨릭교회 안에 자리잡지 못했다고 본다. “주교들도 그런 것을 안 해 본 거예요. 훈련이 덜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가 하면 보수적인 사람들에서는 교황이 토론을 권하기보다는 “교황답게 절대명령으로 말씀해 주시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 9월 25일 서강대 예수회 공동체 응접실에서 안드레아스 바틀로그 신부(왼쪽)와 주원준 편집위원이 이야기하고 있다. ⓒ강한 기자

“건물도 축복하는데.... 동성 결합 ‘축복’할 수 있다”

곧 열리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4차 정기총회에서 중요한 논점이 될 동성애자와 이혼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바틀로그 신부는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성사로서의 결혼은 남녀 간의 결합으로만 가능하다”며 “동성 결혼을 반대한다”고 선을 그었지만, 교회가 동성 결합을 ‘축복’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성인 둘이서 신뢰와 굳은 결합과 사랑으로 인격적인 관계를 만들며 살고 싶다면, 우리가 그 사람들을 축복 못할 이유도 없는 것이지요. 성사와 축복은 엄연히 다르니까요. 우리는 고전적인 가정을 수호합니다. ‘남편과 아내와 아이들’이죠. 하지만 가톨릭교회는 고전적 가정 말고도 사랑이 넘치는 가정, 이를테면 ‘입양’ 등을 권장해 온 역사가 있어요. 현대 세계에서 가정의 다면성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혼에 대해서는 하나하나의 이혼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깊은 사연을 갖고 있다면서 이혼한 사람들을 일괄적으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뭔가 길을 찾기는 찾아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살고 싶은 의지가 뚜렷한 사람이 성체성사나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 교회법적으로 어떤가 하는 문제보다는 조금 크게 봐야 해요. 교회법 조항으로 환원하기보다는 큰 문을 연다는 자세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또 바틀로그 신부는 교회가 ‘고전적 가정’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참아 주고, 관용하는 수준을 넘어 “그들의 삶 그대로가 그 자체로 존엄한 삶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면서, 그러려면 특히 주교들이 용기를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분들은 이런 문제가 매우 민감한 것이기 때문에 말 자체를 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감한 주제에 대해 용기를 갖고 말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사회 안에서 믿을 만한 집단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 안드레아스 바틀로그 신부. ⓒ강한 기자
1962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활동하는 예수회원인 바틀로그 신부는 지난 9월 18-19일 서강대에서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찾았다. 이번으로 3번째 방한이다. 1985년 예수회에 입회해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그는 이를 기념해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시위에 참여하러 제주도를 다녀왔고, 이곳의 예수회 공동체와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를 만났다.

바틀로그 신부는 2000년부터 독일 예수회가 발행하는 잡지 <시대의 소리들>(Stimmen der Zeit)에서 일했으며 2009년에 편집장이 됐다. 그 사이 7년간 뮌헨에 있는 ‘카를 라너 문서 보관소’ 책임자도 겸직했지만, 지금은 <시대의 소리들>에만 집중하고 있다. 전공은 카를 라너의 신학이며, 인스부르크와 밤베르크 대학에서 기초신학 강의를 맡기도 한다.

유럽 교회의 당면 과제는 ‘난민’과 ‘젊은이’
독일에서는 ‘도움 받은 자살’ 논쟁이 한창

바틀로그 신부가 보는 유럽과 독일 교회의 상황은 어떨까? 그는 유럽 교회가 맞닥뜨린 도전으로 ‘난민’ 문제를 우선 꼽았다. 아프리카, 시리아에서 거의 10만 명이 유럽에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주원준 편집위원은 지금 세계가 당면한 큰 문제인 ‘난민’에 대해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는 눈에 띄는 논의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실질적 사형폐지국’이 되는 데 교회의 도덕적 압력이 영향을 주었는데, 한때는 ‘전쟁 피난민’ 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후손으로서 “지금 오갈 데 없는 난민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교회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 위원은 “현재 잘사는 나라들 중 한국과 일본만이 난민을 사실상 안 받는 나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바틀로그 신부는 지금 독일에서는 ‘자살을 도와줄 수 있는 권리’ 또는 ‘도움 받은 자살’이라는 주제가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이 공동 연구하고 있는 주제라고 소개했다.

“노인들이 많은 노령화된 사회에서 죽음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스 큉 같은 학자가 많이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독일 의회가 지금 자기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입법화하는 중인데, 거의 확실시된다고 합니다.”

그는 독일에서 이 논쟁은 ‘죽음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인권 문제로 흐르고 있으며, 예컨대 너무 가난하고 늙고 병들어 힘든 사람이 자신의 병 치료를 스스로 중단하거나, 의사에게 ‘다른 약’을 달라고 요구할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네덜란드에서는 ‘도움 받은 자살’이 합법화됐으며, 독일에서는 나치 정권이 장애인, 치매 환자를 ‘살만한 가치가 없는 삶’으로 보고 죽이기까지 했던 과거 때문에 더욱 복잡한 논쟁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과 유럽의 예수회 상황을 묻는 질문에 바틀로그 신부는 ‘늙은 대륙’ 유럽에서 교회도 늙고 작아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 추세라고 말했다.

“교회는 너무 늙었고 보수적이고 엄격한 신학이 지배합니다. 이런 모습은 매력을 잃기 십상입니다. 1980년대부터 교회는 차례로 노동자를 잃고, 여성을 잃고, 지금은 젊은이들을 잃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젊은이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아요. 유럽연합 헌장에서 ‘하느님’(God)이라는 단어가 제거됐습니다.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정교분리의 영향이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 특히 강합니다. 젊은이들이 교회를 찾는 경우가 ‘세계청년대회’ 같은 때인데 이게 ‘이벤트’라는 점이 한계지요.”

특히 그는 유럽 교회가 당면한 도전 가운데 하나는 ‘젊은이들의 성 문제’였다면서, 여성 사제, 콘돔 사용과 피임 등 문제에 대해 교회가 “안 돼!” 라고만 말한 결과, “교회가 인생에서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곳이 아니게 됐다”고 주장했다. 바틀로그 신부는 아름다운 전례, 성사 생활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이 교회가 잃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04년에는 독일에 예수회 관구가 2개 있었지만 지금은 1개뿐이며, 전체 350명 정도인 독일 예수회원은 현재 평균 나이 76살로 10년 안에 180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여자 수도회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여성 해방’의 결과, 여자 수도회는 훨씬 줄었으며, 그 결과로 성소가 있는 젊은 여성이 있어도 수도회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수도회에 들어가더라도 다른 수녀와 나이 차이가 가장 적은 경우 30살 정도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젊은 입회자를 너무 어린아이 취급하거나, 반대로 젊은 입회자가 곧바로 모든 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 상황이 오곤 합니다. 매우 어려워요.”

반면, 그는 이냐시오 영성을 따르는 평신도 조직(한국의 CLC)으로 독일에는 GCL(Gemeinschaft Christlichen Lebens)이 있는데, 아직 활력이 있고 모든 연령대의 회원들이 골고루 분포하고 있어서 남녀 수도회와 대조를 이룬다고 말했다.

바틀로그 신부는 이러한 유럽 교회의 상황에 대해 ‘교회의 위기’라고 할 수 있지만 ‘믿음의 위기’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사람들은 정당이든 직업이든 종교든 하나의 조직에 평생을 바치려 하지 않으며, 개인주의가 널리 퍼져 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이 되지 않으려면
교회의 문을 열고 세상에 참여해야”

그러면서 그는 교황 요한 23세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듯, 교회는 박물관이 되어서는 안 되며, 더 스스로 개방하고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은 ‘바티칸 내부 개혁’과 ‘교회 개혁’으로 나눠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면서, 그가 이끄는 교회 개혁은 “16세기 이후 가장 큰 교회 개혁이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바틀로그 신부는 이 개혁을 ‘예수적 개혁’이라고 표현했다.

▲ 지난 9월 22일 제주도 강정마을을 방문한 안드레아스 바틀로그 신부가 해군기지 건설 현장 앞에서 미사에 참여하고 있다.(사진 제공 = 안드레아스 바틀로그)
“교황은 예수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얘기를 많이 하시고,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구체적이었고 추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철학적 단어나 추상적 원칙에 집착하지 않으셨지요.

내가 예수와 함께 산다면 내 인생은 밝아지고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교회와 함께 산다면? 글쎄요. 답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지요. 늘 죄인들과 창녀와 세리와 어울리셨죠. 그분은 동성애라든지 이혼을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대담을 마치며 주원준 위원은 분단국가인 한국에서는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반공주의가 강하고, 이것이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정서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하며 유럽의 경험을 물었다. 이에 대해 바틀로그 신부는 이미 공산주의가 끝나버린 유럽에서는 지나간 낡은 얘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두고 ‘좌파 교황’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도 “박물관에나 있는 비유법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따르면 신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지닐 수 있습니다. 교회에 ‘하나의 의견’이 있지 않아요. 신자가 지녀야 될 정치적 노선 같은 것은 없습니다. 교회는 다양합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진리도 사실 다양한 모습입니다. 저희 잡지의 이름이 ‘시대의 소리들’인데, ‘소리들’이 복수형입니다. 일부러 그렇게 지은 것입니다. ‘시대의 소리들’이 필요하지요.”

(주원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은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구약학(성서언어학)과 고대근동언어로 박사 학위를 받은 평신도 신학자다.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이며, 천주교 주교회의 복음화위원,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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