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국가정보원(국정원)의 해킹”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떠들썩하기 시작한지 벌써 한 달하고도 반이 지났다. 그런데도 해킹 스캔들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국정원 해킹의 핵심 의혹은 1) 민간인 사찰 여부 2) 2012년 대선 관련 해킹 여부 3) 북한에 의한 천안함 폭침설을 부인하는 교포 학자에 대한 해킹 여부 4) 국정원 직원 자살과 관련된 의혹 등 민감한 이슈들이다.

이렇게 엄청난 폭발력이 압축된 사건임에도 친정부 보수 언론들은 민주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되레 정부에 불리한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시민운동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수세에 몰린 정부의 입장을 옹호함으로써 “언론이 국정원의 나팔수가 됐다”는 핀잔도 받았다. 신문과 방송의 보도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있는 언론감시 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친권 언론으로 간주되는 신문 조선, 중앙, 동아(조중동)와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의 국정원 해킹 사건 보도를 모니터링하고 내린 결론이다.

일반 시민은 모든 신문과 방송을 다 보고 들을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이 없다. 따라서 신문과 방송을 모니터링하고 비교 분석하는 정직한 언론비평 운동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에서 구독하는 한두 개 신문보도나 관영방송의 편파보도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언론비평기관의 모니터링 보고를 자주 참고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www.flickr.com

국정원의 해킹 사건은 많은 국민의 관심을 끌었다. 그 이유는 국정원이 국가와 국민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서 대책을 세워야 함에도 외화를 주고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하여 그것을 정치적 목적으로 우리 국민의 정보를 해킹하는데 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돼서다.

물론 국정원은 해킹 프로그램을 내국인의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해킹하는 데 사용하지 않았다고 의혹을 부인한다. 하지만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혐의가 근거 없다는 것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야당은 민간인 해킹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정원에 필요한 정보의 제공을 요구한 것인데 국정원이 그걸 거부했다. 야당은 물론 언론도 국정원이 진상규명에 필요한 정보의 제공을 거부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 그러는 과정에 해킹에 관여한 국정원 직원 임씨(45)가 해킹 자료를 삭제하고 자살했다. 국정원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면 뭔가 중대한 과오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그의 사후 처리를 두고도 의혹이 많다. 국정원은 아직까지 그 의혹을 풀어 줄 자료나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건이 아직도 진행형인 이유다.

이럴 때 모든 언론이 하나가 돼 진상규명에 매진한다면 국정원이나 정부도 지금처럼 끈질기게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정원의 행동은 처음부터 전 과정을 통해 법을 어긴 약점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언론은 친 정부의 보수언론과 그렇지 않은 진보언론으로 갈라져 정권의 이해가 걸려 있는 사건 보도에는 자주 대립한다.

원래 언론은 의견에는 보수 진보의 차가 있을 수 있지만 사실을 규명하는데 보수, 진보가 다를 수 없다. 국제적으로 공인된 언론윤리 기준을 따르면 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한 매체만 보는 독자는 어느 기간이 지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신문의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확신(?)하게 될 수 있다.

이라크 전쟁 때 미국인들은 후세인이 핵무기(WMD)를 보유하고 있고 그가 알카에다와 내통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대부분의 미국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 언론의 보도는 달랐고 당연히 프랑스인의 이라크 전쟁관도 달랐다.

국정원 해킹 사건 보도도 처음부터 조선, 중앙, 동아와 한겨레, 경향 (종편) JTBC의 보도는 서로 달랐다. 민언련의 신문방송 모니터링 보고에 의하면 국정원 해킹사건이 제대로 보도되기 시작한 7월 14일부터 국정원 직원의 자살이라는 충격적 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18일까지 조, 중, 동의 보도 태도는 한 마디로 사건 "축소"였다. 보도 횟수를 봐도 한겨레 38건, 경향 30건인데 비해 동아 12건, 조선 8건, 중앙 6건에 불과했다.

조, 중, 동의 보도량은 국정원 직원 자살 뒤에야 급증했다. 사건의 지면 배치에 있어서도 차이가 확실히 드러난다. 해킹 관련 내용이 제1면에 실린 것은 한겨레가 9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향이 7건인데 비해 조선 5건, 동아 3건, 중앙 3건이었다.

방송에서는 종편인 JTBC가 다른 방송을 압도했다. 국정원 해킹 프로그램의 사용과정을 분석하고 민간인 사찰의혹을 다각도로 조명했다. 조, 중, 동과 마찬가지로 지상파 방송이나 나머지 종편 2개사는 모두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민언련 보고는 지적했다. 특히 공영방송을 포함한 지상파 3사의 저녁 종합 뉴스는 국가기관에 의해 국민이 불법사찰을 받은 사실이 포착됐음에도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라고 개탄했다.

따라서 언론이 국민의 신뢰를 잃은 사회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할” 주권자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정직한 시민운동단체가 수행하는 미디어비평을 수시로 보고 들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주권자로서 국가의 중대사에 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한 보수언론이나 공영방송 보도에 세뇌되지 않기 위해서도 미디어비평은 필요하다. 그 점에서 민언련은 “정부의 나팔수”, “정부의 로비스트”로 전락한 우리 언론계의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바로 이런 필요에서 프랑스의 언론비평시민운동 Acrimed(언론비판행동)이 금년 1월말부터 “언론비평의 날”을 정하고 언론비평 원탁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장행훈(바오로)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