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국회는 지난 3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안”(“김영란법”)을 찬성 228 반대 4 기권 15로 통과시켰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부패의 표본인 청탁문화를 뿌리 뽑겠다는 일념으로 만든 법이다. 김영란법에 대한 여론에 호응해서 국회는 2/3가 넘는 압도적인 다수로 법을 통과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압도적인 다수로 통과된 법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언론의 비판이 쏟아지면서 법이 통과된 바로 다음날 대한변호사협회(변협)가 헌법재판소에 위헌소원을 청구했다. 4월 임시국회에서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법안의 최종심의를 맡았던 야당 소속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말도 안 되는 법”이라고까지 매도했다. 그런 마음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법을 압도적인 다수로 통과시켰을까 하는 의문을 금할 수 없다.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여론이 무서워 깊은 생각 없이 찬성 투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검토를 하지 않아 문제점이 많은 법을 통과시킨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다. 솔직히 김영란법은 국민은 환영하지만 부담을 느끼는 기득권층이 꽤 있다. 김영란법을 공개적으로 반대는 않지만 문제점을 거론하고 법을 무력화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변협은 김영란법이 언론인을 적용 대상에 포함해 언론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기 위한 법인데도 언론인을 적용 대상에 포함시켜 민간 영역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 염려된다고 주장한다.

기자협회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언론자유를 명분으로 김영란법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언론노조와는 입장이 다르다. 강성남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부정한 청탁에서 자유로우면 정의롭고 자유로운 언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다수 언론이 박근혜 정권과 유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김영란법 적용으로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하는 데 제약을 받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에는 맞지 않는 이야기다.

▲ 지난 3월 10일 서강대에서 열린 김영란법 간담회에 참여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사진 출처 = <경향TV>가 올린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18대 대선 때 국정원의 선거개입을 제대로 보도하고 비판한 언론이라면 정권의 탄압이나 제약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권력의 불법선거에도 눈감아 준 언론에 권력이 더 이상 간섭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언론과 정권의 갈등은 언론이 권력 비판과 감시 기능을 제대로 할 때 나오는 문제다.

그러므로 정권과 유착한 언론이 김영란법과 언론자유를 연결시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보수 언론이나 그 기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결국 업무상 청탁할 일이 많은 변협이 언론을 빙자해서 김영란법을 무력화시키려는 발상이 아닌가.

20세기 미국 언론을 대표하는 월터 리프먼이 반세기 전에 신문의 공적 역할에 관해 한 말이 기억난다. 리프먼은 신문이 수행하는 공적 역할이 엄청나다고 했다. 신문의 이런 공적 역할을 고려하면 초기 미국 정부 지도자들이 신문을 어떻게 영리에 몰두하는 개인에게 넘겨주기로 결정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이제 변경할 수 없는 제도가 돼 버렸지만 언론은 중대한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민주주의 기구다. 헌법이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바로 언론의 공적 역할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역할에 따라 언론인을 공직자와 대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헌법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법안 입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도 1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69.8퍼센트가 사립학교, 언론인이 포함된 데 대해 바람직하다고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부분은 위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헌재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는 어떤 단언도 할 수 없다. 언론자유를 침해할 조치는 막아야 한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표현대로 “김영란법이 통과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따라서 위헌 소지나 이런 저런 법률문제를 구실로 어렵게 통과된 법이 사문화되는 일이 없도록 우선 법을 시행하면서 아쉬운 점, 문제점들을 개선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일단 법률을 시행하면서 부패 문화를 바꾸고 그래도 개선이 안 되면 보다 더 강화된 조치를 취하는 게 순리”라고 충고했다.

한국은 대단히 부패한 사회다. 매년 세계 각국의 부패 지수를 발표하는 국제투명기구에 의하면 2011년 이후 한국의 부패 순위는 43-45위이다. 100점 만점에 55점 수준이다. 부끄러운 성적표다. 더구나 “국제투명성기구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이래 한국의 투명성, 다시 말하면 부패지수는 매년 더 나빠지거나 정체 상태에 있다.”(한국투명성기구 상임정책위원)

유럽의 인권과 민주주의 및 법치 상태를 감시하고 개선책을 세우는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의 토르비외 사무총장은 반부패투쟁이 오늘날 유럽민주주의가 마주친 가장 큰 도전이라고 했다. 반부패 투쟁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권언유착 상황에서 언론자유의 침해 위험을 내세워 김영란법의 위헌성 운운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언론인이 할 일은 오히려 권력을 향해, 권력과 유착한 경영주를 향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 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장행훈(바오로)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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