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박근혜 대통령이 14일부터 시작될 미국 방문계획을 돌연 연기했다. 한국의 국가안보에 가장 중요한 맹방인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불과 나흘 앞두고 돌연 연기했다는 것은 그만큼 피치 못할 사정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 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이다. 지난 3주 동안 한국은 메르스 공포 속에서 지냈다.

그래서 대부분의 언론이 지금처럼 전 국민이 메르스 확산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때에 대통령이 나라 밖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을 등한히 하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고 경고해 왔고 그것이 대통령의 방미를 연기하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국가(대통령)는 헌법 제34조(6항)에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국가가 재난에 처했을 때 외국 방문을 연기하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3주째 겪고 있는 메르스의 “한국 증후군”이 상당히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이 방미 연기를 발표하기 하루 전인 9일 메르스 확진자는 95명, 격리자는 3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됐다. 메르스 바이러스의 생존 기간을 2주 정도로 보기 때문에 이제 메르스 포비아(공포)가 최악의 고비는 넘겼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지만 메르스 청정지역인 강원 충청 지역에서 메르스 양성 반응자가 검진됐다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어 메르스 포비아가 완전히 끝났다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이 대세다.

메르스는 3년 전 중동에서 처음 나타난 전염병으로 미국을 비롯해서 몇 나라에서 감염자가 보고됐지만 초기 단계에서 퇴치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유난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변종이 생긴 것도 아니다. 세계 보건기구도 메르스 때문에 한국을 여행 금지지역으로 지정할 정도로 위험한 전염병이 아니라고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미지 출처 = 보건복지부 메르스 관련 페이지
그런데 한국의 메르스는 불과 3주 동안에 사망자가 9명에 이르고 확진자가 122명, 격리자가 3805명(6월 11일 보건복지부 발표)에 이르는 “슈퍼 전파자”로 온 나라에 공포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왜 그런가? 그것은 전적으로 메르스의 “한국 신드롬”(한국증후군)때문이다. 지난 2주 동안 국내 신문 보도와 사설을 훑어보면 공통된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경향신문은 6월8일자 사설에서 “한국형 메르스의 강한 전파력은 초기 대응 실패와 허술한 방역망, 정보, 소통 부재 등에 기인한 바 크다. 그 결과 다른 메르스 발병 국가에서 보기 어려운 ‘슈퍼 전파자’를 양산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더 중요한 키워드는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서울신문 10일자 사설 “메르스 위기관리 실패에서 교훈 얻어야”에서 친박(친박근혜)계 좌장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박근혜 정부 내각에 위기관리를 할 인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것이 가장 근본 문제”라며 내각의 위기관리 능력 부재를 질타했다. 그는 “전부 다 대통령만 쳐다보면서 스스로 책임을 지고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여당이라도 지금은 정부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쓴소리를 안 할 수 없는 고충을 실토했다.

서 청원은 이어서 정부가 무능한 것은 박 대통령의 책임도 있다고 했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식 국정 운영 방식에 길들여진 내각은 대통령의 지시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국무회의에서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쓰고.... 국무위원들이 국가적 위기에 대통령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으니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일대일 대면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와 복지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문 장관은 확진자 발생 6일 만에야 국무회의 석상에서 보고했다.”

정곡을 찌른 그의 일갈(一喝)이다.

문제의 시작은 처음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을 때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어느 병원에서 누가 진료를 받았고 누가 확진자로 밝혀졌는지 모르기 때문에 시민들은 불안했고 개인적으로 정보를 찾았다, 그리고 정보를 교류하는 과정에서 감염자와 접촉하게 됐고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퍼져나갔다. 감염자와 일반시민이 서로 접촉하게 된 결정적 원인이었다.

국민은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해서 알 권리가 있다. 민주시민의 당연한 권리이다. ‘감염병 예방, 관리에 관한 법률 제6조에 “국민은 감염병 발생상황, 감염병 예방 및 관리 등에 관한 정보와 대응방법을 알 권리가 있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보건복지부가 메르스에 관련된 정보를 발표하지 않는 것은 법을 위반한 행동이다. 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자 서울시와 성남시가 자체 조사로 정보를 수집하고 공개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정부가 정보를 공개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뒷북을 치고서도 사과는커녕 “병원공개는 혼란을 야기한다”며 정보를 공개한 서울시장을 간접적으로 공격하고 보수언론이 덩달아 서울시장을 공격하는 아니꼬운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자체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 누군가?

당연한 정보 공개를 거부해 온 정부의 불합리한 태도가 삼성서울병원 같은 대형 병원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시민들의 의심을 사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감염을 가장 많이 확산시킨 주범으로 드러나고 있으니 그런 의심에 더욱 공감이 간다.

메르스 스캔들로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참사를 겪고서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비판과 함께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은 정권이라는 조소를 받게 됐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위기관리 능력이 없는 무능정권임을 한국뿐 아니라 이웃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선전해서 한국의 국가적 이미지를 떨어트리는 결정적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이다.

위기관리 능력이 없는 정권은 국가를 통치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싶다.

 

 

 
 

장행훈(바오로)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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