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훈 칼럼]

5월13일 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조가 발행하는 주간 <미디어오늘> 창간 20주년을 기념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언론의 언론’을 지향하는 <미디어오늘>이 어떻게 하면 우리 언론을 권력의 시녀가 아닌 시민을 위한 언론으로 만들고, 권력의 감시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한국저널리즘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인지 그 전략을 토론하는 자리였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공영방송은 완전히 정권의 시녀로 전락해서 “정권의 리모콘”에 따라 움직이는 방송이 됐다. 이에 실망한 KBS 기자들은 세월호참사 이후 스스로를 ‘기레기’(기자 + 쓰레기)라고 자학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자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는 2011년 한국을 완전한 언론자유국가에서 “부분적 자유국가”로 강등시켰다. 2014년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인터넷 검열을 비롯해서 한국의 언론 상황이 악화되고 국제 인권단체들이 이러한 현상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음에도 개선되지 않아 내린 결정이었다. 박근혜 정부 역시 MB 정권의 나쁜 정책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기에 같은 등급을 받은 것이다.

언론의 다양성 원칙도 언론 자유와 직결된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할 매체가 없는 소수자 계층은 의견을 반영할 수가 없으며 결과적으로 표현의 자유에 제약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신문시장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 조, 중, 동에게 종편방송까지 허가해서 매체의 다양성원칙에 반대되는 정책으로 여론을 보수화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대선 때, 종편은 박근혜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원하고, 반면 야당 후보는 공격하는 편파적 선거운동을 했다. 박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진보의견도 반영될 수 있도록 방송지형을 개혁해야 한다.

프랑스는 우리보다 매체 소유가 훨씬 다양한데도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2008년 헌법을 수정하기까지 했다.

민주국가에서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의 하나가 권력 감시기능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므로 언론이 권력이 된 현실에서 정권이 방송까지 장악한다면 두 권력이 하나로 합치게 되는 것이다. 반(反)민주적이다.

2008년까지 프랑스는 방송위원회가 공영방송 사장을 선정했다. 그런데 이해에 대통령에 당선된 사르코지는 대통령이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방송을 장악하려는 저의에서였다. 그러나 권력을 감시할 언론기관의 사장을 최상권력기관인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헌법위원회의 비공개 의견 표명이 있었다.

▲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사진 출처 = it.wikipedia.org)
그래서 사르코지의 후임자인 사회당의 올랑드 대통령은 공영방송 사장(4명)의 임명권을 다시 방송위에 환원시키도록 법을 개정했다. 방송위 위원 구성도 대통령 몫 3명을 2명으로 줄이고, 상하 양원 각각 3명씩 선출하는데 이들은 상하 양원의 문화위원회에서 3/5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과반수로 선정하면 발생할 수 있는 여당의 방송위 독점 위험을 배제하고 야당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2013년 다시 법을 개정해서 대통령 몫을 1명으로 줄였다. 대통령의 방송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조치다. 방송이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예방하는 민주적 조치였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언론의 권력화 현상도 중요한 이슈로 토의됐다. 언론이 3권의 테두리 밖에 있는 권력의 제4부 또는 제4권력이라는 개념은 이제 현실성을 상실했다. 언론은 정부 기관의 일부가 아닐 뿐 기존 3권에 못지 않은 권력을 휘두른다. 3권을 능가하는 권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전 사장 이냐시오 라모네에 의하면 언론이 정치권력이든 대자본권력이든 어떠한 권력과 제휴하게 되면 어떤 권력도 이에 대응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이 된다.

그래서 언론(미디어)의 다양성 문제가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일어날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이런 현상을 만들어내는 준비 작업을 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조, 중, 종이 종편까지 겸영하면서 정권 대자본과 유착해 “철의 3각형” 복합체를 이루고 있다. 미국에서 배운 보수 세력의 유착모델이다. 이런 상황이 고착되면 앞으로 한국에서 정권교체는 불가능하게 된다. 외형상으로는 민주주의 간판이 바뀌지 않겠지만 민주주의는 퇴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런 위험을 예방할 수 있을까? 우선 언론 소비자인 민주시민 각자가 뉴스로 가장한  보수언론의 선전을 간파하기 위해 그들의 보도를 비판적으로 관찰하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잘못된 왜곡 보도나 논설에는 항의의 뜻을 전하고 언론 소비자가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이들에게 계속 상기시키고 경고할 필요가 있다. 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끝으로 개탄스러운 것은 사회적 지탄을 받는 조, 중, 동(종편 포함) 언론인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오늘> 창립 20주년 인터뷰에서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도 “문제는 조, 중, 동 내부에서 양심을 가진 기자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90년대에는 .... 그런 언론인들이 미력하게나마 존재했다. 지금은 조선, 동아 내부에 엉터리 기사를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라고 말했다. 이들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캠페인 방법은 없을까 생각 중이다.

언론을 언론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언론 소비자인 민주시민의 몫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일념에서 나온 생각들이다.  

 

 
 

장행훈(바오로)
파리 제1대학 정치학 박사,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초대 신문발전위원장, 현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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