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식의 포토에세이]

 ⓒ장영식

지난 3월16일 새벽, 충남 아산의 아파트에서 한 여성이 투신했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 세 살배기 아이를 둔 35살의 엄마였던 그이는 해고된 KTX 승무원이었다.

철도공사는 2004년 KTX 개통과 함께 ‘KTX의 꽃’이라고 부르던 제1기 승무원 280명을 입사시켰다. 입사 당시 철도공사는 승무원들에게 정규직화는 물론 항공사 스튜어디스보다 나은 공무원 수준의 대우를 약속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2006년 5월에 280명을 전원 해고했다.

2010년 1심에서 KTX 승무원은 승소했고, 2011년 2심에서도 KTX 승무원이 승소했다. 그러나 2015년 2월 26일, 대법원은 “KTX 승무원은 코레일 노동자가 아니다”라며 원심을 파기하고 환송했다. 해고된 KTX 승무원들이 소송에서 패소한 것이다. 대법원의 파기 환송으로 해고 승무원들은 임금과 소송비용으로 받았던 1인당 8640만 원을 갚아야 했다. 10년 가까이 직장을 잃고 길바닥에서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목돈이었다.

아파트에서 투신했던 해고 승무원은 대법원 판결 뒤 20여 일을 고민하다가 결국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이의 명의로 된 작은 아파트로 인해 빚은 재산과 함께 가족에게 승계되었다. 그이는 죽기 전에 빚이 아이에게 승계된다는 점을 두고두고 미안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에게 돈을 내놓으라는 것은 차라리 죽으라며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1, 2심의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의 판결은 사람을 죽이는 비정한 판결이며,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비열한 판결이다.

부산역에서 “철도공사가 KTX 승무원을 직접 고용하라”는 선전전에 나온 KTX 해고 승무원은 5살이 된 아들과 3살이 된 딸을 둔 엄마다. 그이는 자꾸만 눈에 밟히는 아이들을 부모님께 맡기고 선전전에 나왔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왈칵 쏟아 낼 것 같은 그이의 불안한 눈동자에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이 시대의 거짓에 대한 분노가 함께 했다.

거리에서 싸운 지 1년 만에 370명이었던 동지들이 90명으로 줄었고, 3년이 지나자 34명으로 줄었다. 회사 측의 회유와 협박 때문이었다. 이제 한 사람의 동지가 떠나가고 33명이 남았다. 그들은 일요일과 월요일 부산역과 서울역에서 1인 시위를 이어 가고 있다. 20대 중반의 아름다운 청춘이었던 이들이 3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비열하고 비정한 거리에서.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