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최동훈 감독, 2015년

사진 제공 = ㈜쇼박스
무언가 절도 행위를 하는 모습과 과정을 상세히 보여 주는 영화를 의미하는 ‘케이퍼 무비’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 주어 왔던 최동훈 감독의 신작이다. ‘범죄의 재구성’(2004)에서 천만 관객 영화 ‘도둑들’(2012)에 이르기까지 범죄자, 도박꾼, 사기꾼 등 반사회적인 인물이 벌이는 한탕 범죄 행위를 두 시간의 러닝타임에 화려하게 담은 최동훈식 스타일이 있다. 화려한 스타군단 캐스팅, 사건 준비에서 실행에 이르기까지 한 가지에 몰두하는 꼼꼼함, 작게 시작하여 거대하게 끝나는 플롯 진행 방식 등 최동훈은 관객을 곧잘 흥분으로 몰아간다.

최동훈 영화는 범죄 스릴러를 자기식으로 토착화해서 늘 흥행에 성공했는데, 이번에는 반사회적 인물이 아니라 1930년대 경성과 상하이를 무대로 펼치는 항일독립운동가들을 담는다. 케이퍼 무비라는 점에서는 달라진 점이 없지만, 무거울 수밖에 없는 ‘항일 코드’가 관객의 어떤 호응을 얻을지 자못 궁금하다.

영화의 시점은 1949년 반민특위의 활약,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어난 한 항일운동가의 의거의 좌절, 1933년 친일파 거두와 조선주둔군 사령관을 암살하기 위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거사 등, 세 가지 시대를 오간다. 민족의 적이 조선을 일본에 팔아넘긴 사건에서 시작하여 끊이지 않은 저항 운동을 거쳐, 해방 이후 친일파 처단이 좌절된 역사까지를 담는다. 역사 교과서로 발단된 역사 전쟁과 대한민국이 현재 처한 극심한 갈등 상황이 영화에 겹쳐서 보인다.

▲ 속사포(조진웅 분, 왼쪽)과 안옥윤(전지현 분).(사진 제공 = ㈜쇼박스)
김구 주석이 지도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 측에 노출되지 않은 세 명을 암살 작전에 지목한다. 그들은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분),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분),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 분)이다. 김구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 분)은 이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암살단의 타깃은 조선주둔군 사령관 가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이경영 분)이다. 한편, 누군가에게 거액의 의뢰를 받은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이 암살단의 뒤를 쫓는다.

제국주의 일본의 힘이 정점을 향하고 있던 1933년, 항일의 한가운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들이 모여든다. 좋은 놈은 훌륭한 여성 저격수이자 이번 거사의 리더인 안옥윤이다. 나쁜 놈은 항일운동가에서 전향하여 밀정 짓을 주도면밀하게 자행하는 염석진이며, 이상한 놈은 돈에만 움직이는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이다. 서로 쫓고 쫓기며, 훼방을 놓거나 도와주며, 오인하거나 제대로 직시하며, 은폐하거나 대면하는 방식에서 영화적 서스펜스가 살아난다.

▲ 염석진(이정재 분).(사진 제공 = ㈜쇼박스)
영화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항일’이 훌륭한 엔터테인먼트 소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여름 시원하게 폭발하고 마무리되는 가벼운 케이퍼 무비가 한껏 무거운 항일을 소재로도 성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는데, ‘암살’은 재미와 의미를 모두 잡았다.

우아하게 펼쳐지는 총격 액션신은 전성기 시절의 홍콩 누아르를 연상시킨다. 긴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지붕을 타고 넘거나 결혼식장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벌이는 전지현의 총격전은 영화의 백미다. 영화는 적과 아군을 분명하게 하기에 감정적 혼돈을 느끼지 않고 쉽게 주인공에게 동일화하게 만든다.

폭발적인 총격전에만 공을 들인 게 아니다. 안옥윤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드라마가 사건 중심부로 들어오는데, 수수께끼가 벗겨지면서 임무수행에 한 발짝 나아가는 구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정서적으로 이야기와 인물에 몰입하게 만든다. 오인은 서스펜스를 자아내고, 은폐와 위장을 거치며 임무는 막바지로 향해 간다. 주인공과 관객만이 공유하는 비밀은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준다.

▲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분).(사진 제공 = (주)쇼박스)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의 임무는 권력을 나눠 가진 친일파들의 방해로 인해 좌절로 끝났지만, 사적으로 치르는 막판 복수전은 판타지일 망정 대리 만족감을 선사한다.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 각자의 자기 이야기와 역사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못 산만해지며, 항일운동가의 전향 논리, 친일파의 일본 협력 논리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아쉽다. 하지만 식민지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성공하기 힘들다는 징크스를 깰 영화일 듯하다.

광복 70년이 된 올해 앞으로 이 시기를 다루는 영화제작이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복고 트렌드에서 항일 트렌드가 하나의 사회적 분위기가 될 수도 있겠다. 대표적인 중국의 항일인사 ‘황비홍’이 홍콩영화의 훌륭한 오락적 소재였음을 상기할 때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 같다.

해방 후 독립운동 리더 약산 김원봉이 읊조리는 “모두 잊혀지겠지요”라는 말은 지금의 우리 모두에게 향해 던지는 것으로, 이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다.

사진 제공 = (주)쇼박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용인대학교 영화영상학과 초빙교수.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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