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김성제 감독, 2013년

▲ 극중 피고인 박재호(이경영 분). (사진 제공 = ㈜시네마서비스)
영화 외적인 사건으로 오히려 유명해졌다. 이 영화는 2013년에 이미 완성이 되었다가 2년이 지나서야 개봉하게 되었다. 원 배급사가 영화의 배급을 포기하고 새로운 배급사가 개봉을 진행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정치적인 맥락이 존재한다는 설이 있다. 영화는 2010년에 출간된 손아람 작가의 소설 "소수의견"을 영화화한 것이며, 영화 속 사건의 무대는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뉴타운 재개발을 위한 강제철거 현장이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가 겪었던 가장 최근의 개발 참사인 용산 참사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 이야기에 용산 이야기를 겹쳐서 생각하게 될 것이지만, 영화는 실화가 아니라 허구다.

비판의식을 가진 정치영화, 하층민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하는 소셜 리얼리즘 영화의 제작은 영화와 현실이 유리되지 않음을 보여 주는 건강한 징표이다. 1980년대 초중반의 '바람불어 좋은 날',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에서 1980년대 후반 '그들도 우리처럼', '성공시대' 등이 코리언 뉴웨이브 시네마의 에너지를 세상을 알렸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문화 다양성과 영화의 사회적 역할 등을 볼 때 '소수의견'과 같은 소셜 리얼리즘 영화의 제작이 어떤 이유에서건 중단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생각에도 몇 가지 걱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화, 그것도 참사나 투쟁 현장을 다룬다는 것이 과연 영화적으로 재미가 있을까가 문제다. '도가니', '부러진 화살', '변호인'처럼 의미뿐만 아니라 영화적 긴장감과 재미로 무장한 작품들은 흥행돌풍의 결과를 얻었다. 반면 '또 하나의 약속'이나 '카트'는 많은 격려와 지지를 받았지만 흥행에서는 성과를 얻지 못하고 말았다. 관객은 의무감이나 응원 차원에서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 영화적 퀄리티는 메시지와 다름없다. 영화가 지닌 의미만 가지고는 관객이 감동하지 않는다.

▲ 법정에 있는 윤진원(윤계상 분, 왼쪽)과 장대석(유해진 분). (사진 제공 = ㈜시네마서비스)
'소수의견'은 법정 드라마다. '에린 브로코비치'나 'JFK', '데드 맨 워킹'과 같은 할리우드 걸작 법정영화처럼, 검찰과 변호인 측, 피의자 측과 피해자 측의 밀고 밀리는 두뇌 싸움, 그 와중에 터져 나오는 반전의 증거 수집과 증언을 통한 폭로가 영화적 긴장감을 폭발시켜야 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결말로 플롯을 끌고 나가는 힘 있는 연출력이다. 이러한 점에서 봤을 때 '소수의견'은 매력적이다. 이야기 전개는 탄탄하고도 매끄럽다. 선과 악의 경계를 명확하게 긋지 않고, 마지막까지 무엇이 진실인지를 묻는다.

영화는 참사의 현장이 아니라 법정의 긴박감 넘치는 진실 공방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은 피해자나 피의자가 아니라 변호사다. 지방대 출신, 학벌 후지고, 경력도 후진 2년차 국선변호사 윤진원(윤계상 분)은 강제철거 현장에서 열여섯 살 아들을 잃고, 경찰을 죽인 현행범으로 체포된 철거민 박재호(이경영 분)의 변론을 맡게 된다. 그러나 구치소에서 만난 박재호는 아들을 죽인 건 철거깡패가 아니라 경찰이라며 정당방위에 의한 무죄를 주장한다. 경찰 기록은 변호인에게도 완벽하게 차단되고, 검찰은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려는 듯하다. 신문기자 수경(김옥빈 분)은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온다. 진원은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님을 직감하고, 선배인 이혼전문 변호사 대석(유해진 분)에게 사건을 함께 파헤칠 것을 제안한다.

강제철거 현장에서 숨진 10대 철거민 가정의 소년과 20대 젊은 경찰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른다. 경찰 작전 중 벌어진 사건을 국가가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그리고 배심원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국민참여재판 형식이 어떻게 판결에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사건의 기록이 권력에 의해 어떻게 은폐되는지 등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다. ‘을’들끼리 나뉘고 싸우게 되는 현실에서 영화는 거대한 사회구조라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까지 보여 주고자 한다.

영화의 또 하나의 강점은 목숨을 다루는 진지한 이야기 안에서도 소소한 유머들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권력을 향한 어이없고 허탈한 웃음이 있고, 삶의 아이러니에서 발생하는 촌철살인의 유머가 있으며, 유해진과 윤계상의 앙상블이 발하는 정말로 웃긴 장면도 많다. 완성도와 메시지, 그리고 영화적 재미가 조화를 이룬 수작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용인대학교 영화영상학과 초빙교수.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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