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영화] 댄 길로이 감독, 2014년

‘나이트 크롤러’라는 낯선 프리랜서. 그들은 매일 밤, 도시가 잠든 사이에 빠른 차와 고가의 비디오카메라 장비로 무장을 하고 경찰 무전을 들으며 이야깃거리를 찾아 도시 일대를 누비고 다닌다. 그들은 차량충돌, 화재, 살인, 각종 폭력 등의 사건 사고를 쫓아 현장의 영상을 생생하게 촬영한 테이프를 TV 방송국에 판다.

영화 ‘나이트 크롤러’는 여타 범죄 스릴러 영화와 다르다. 사건이 발생하고, 범죄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두뇌 게임과 액션이 이야기와 볼거리의 중심인 범죄 스릴러 영화의 장르적 관행을 벗어난다. 이 영화는 매우 현실 반영적이고 자기 투영적이라서 더 섬뜩하고 더 암울하며 동시에 더 흥미진진하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모든 이야기를 관찰하는 것은 혼란스럽다. 영화를 보는 것이 영화에서 비판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미디어 선정주의 그 자체가 되는 역설에 빠지기 때문이다.

사진 제공 = 누리 픽쳐스
이 영화로 첫 연출 신고식을 한 댄 길로이 감독은 ‘본 레거시’의 각본가로 알려졌으며, ‘본 시리즈’의 각본과 연출로 유명한 토니 길로이 감독의 동생이다. 영화는 올해 아카데미영화제 각본상에 후보로 올랐다. 그 정도로 탄탄한 각본이 바탕이 되고 있으며, 여기에 제이크 질런홀의 냉혈한 연기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미남배우 질런홀이 현재는 초라하고 변변치 못하지만 목표를 향해서 어떤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는 도시 사냥꾼으로 변신한다. 완벽하게 영화 속 인물이 됨으로 인해 그의 잘생긴 외모까지 추악하게 보이게 될 정도다. 질런홀은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아카데미영화상 후보에 오르지 못하자, 많은 팬과 미디어가 영화제 최대 이변 중 하나로 손꼽았다.

놀라운 것은 영화의 이야기와 캐릭터가 바로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나고 있는 일상적인 일일 것이라는 자각이다. 영화는 고통스러운 재난, 충격적인 사고, 미디어의 장난, 자본 놀음 등 여러 가지가 얽히고 설킨 현대 자본주의의 못된 얼굴을 보여 준다. 액션과 볼거리를 기대하기 보다는, 자본과 권력 카르텔을 공고히 하도록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미디어의 행태에 놀아나는 순진한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로서 영화를 바라보길 바란다.

사진 제공 = 누리 픽쳐스
자잘한 절도나 저지르며 살아가던 루이스(제이크 질런홀)는 우연히 목격한 교통사고 현장에서 특종이 될 만한 사건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TV 매체에 고가에 팔아넘기는 일명 나이트 크롤러를 보게 된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빠르게 나타나 현장을 스케치하고 전화로 가격을 흥정하는 그들에게서 묘한 돈 냄새를 맡은 루이스는 즉시 캠코더와 경찰 무전기를 사서 사건현장에 뛰어든다. 유혈이 난무하는 끔찍한 사고 현장을 적나라하게 촬영해 첫 거래에 성공한 루이스는 남다른 감각으로 지역채널의 보도국장 니나(르네 루소)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매번 더욱 더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뉴스를 원하는 니나와 그 이상을 충족 시켜주는 루이스는 최상의 시청률을 만들어내며 승승장구한다. 자신의 촬영에 도취된 루이스는 결국 완벽한 특종을 위해 최고로 위험한 사건 현장에 뛰어든다.

지난 몇 년간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우리 모두를 고통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알 권리와 원인 추적이라는 미명 아래 미디어는 점점 더 노골적으로 사건을 이슈화한다. 일명 ‘재난 마케팅’이라고도 불리는 미디어 선정주의의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알 수 없다. 누군가의 고통과 죽음이 시청률로 계산되는 비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디어가 선정주의로 도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 되어 버렸다. 그 모든 비인간성의 밑바탕에는 돈이 도사리고 있다. 목숨보다 돈이 우선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걸 지켜보고, 사건 해결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며, 관찰하는 카메라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카메라가 일상화된 현실을 비판적으로 보여 주는 날카로운 작품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뉴스, 다큐멘터리, 리얼리티 TV, 예능 프로그램 따위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 않은가. 투명한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더 강도 높은 어떤 것을 보여주길 은근히 기대한다. 우리는 시각성의 잔인한 속성을 이용하는 미디어에 둘러싸여, 이미지의 시뮬라크르가 모든 것을 장악해 버리는 몹쓸 사회에서 살고 있다.

사진 제공 = 누리 픽쳐스
영화의 톤은 어둡고 비열하지만, 마지막까지 냉혹하고, 대담하며, 잔인한 주인공의 행위의 강도는 더욱 세지기만 해서 긴장감이 영화 막바지에 갈수록 더욱 높아진다. 촬영하는 자를 관찰하는 카메라 움직임은 잘 디자인 되어 있고,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 편집 또한 돋보인다.

주변부로 밀려난 주인공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감정에 무뎌지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소시오패스가 되어 버린 것은 설득력을 가진다. 동정할 이유는 없을지라도. 인간들과의 정서적 교류가 차단당한 채 정글 속으로 내던져진 인간이 부여잡는 것은 인터넷을 통해 긁어모은 정보와 그것을 뻥 튀겨 스스로 능력자임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렇게 일을 따 내고, 돈을 벌고, 인정을 받고,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한다.

영화는 끝까지 현대 자본주의 세계란 추악한 내면과 그를 둘러싼 우아한 겉포장이 본성임을 절망적으로 보여 준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동국대, 수원대 출강 중. 옛날 영화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운 코미디 영화를 편애하며, 영화와 사회의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합니다. 삶과 세상에 대한 사유의 도구인 영화를 함께 보고 소통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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