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영 신부] 7월 26일(연중 제17주일) 요한 6,1-15; 2열왕 4,42-44

우리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을 “의식주"라고 합니다. 추운 날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을 입어야 하고, 먹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고, 잠자고 쉴 수 있는 집이 있어야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에서의 의식주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조건이지 삶의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몸을 가리고 보호하기 위해서만 옷을 입지 않습니다. 생존하기 위해 아무거나 먹지 않습니다. 그저 비바람만 막을 수 있는 집만 원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질을 생각하고, 더 나은 삶의 환경에서 살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단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물질적 조건에 불과합니다. 좋은 옷을 입었다고 해서,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었다고 해서, 편하고 안락한 집에 산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우리 인간은 다른 욕구, 더 높은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외적인 환경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삶의 중심을 잡고, 내 삶을 외적으로, 내적으로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 3세기 초, 로마 칼리스토의 지하 무덤에 있는 빵과 물고기를 묘사한 그림. (이미지 출처 = en.wikipedia.org)

영화 “허브”를 보면 정신적으로 지체인 아이가 사랑에 빠졌다가 실연을 당합니다. 태어나서 처음 사랑에 빠져 행복해하던 아이가 남자친구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하도 배가 고파 밥을 먹다가 말합니다.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가슴이 채워지지 않아.” 사랑에 빠져 행복했던 이 아이의 마음 안에, 사랑이 떠나간 그 텅빈 자리에 아무리 밥을 넣어도 가슴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이 말... 우리 안에 있는 수많은 욕구 중에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욕구는 무엇일까?

오늘 복음에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빵의 기적은 “생명의 빵”으로 요약됩니다.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누구는 몸이 아파서 치유받기를 원했고, 누구는 삶이 메말라서, 누구는 삶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서....

예수님은 그들을 치유하고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나아가 육신의 배고픔을 채워 주는 빵을 주었습니다.

오늘 독서(2열왕 4,42-44)에서 예언자 엘리사가 빵의 기적을 베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건널 때 40년 동안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먹여 살리시는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느님이 그들에게 만나를 먹여 주신 것이 단지 죽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광야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 과연 그저 만나와 물 때문이었을까? 만나와 물이 그네들을 육체적으로 굶어죽지 않게 했다면, 이 만나와 물을 내려 주신 야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그네들을 살아가게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아무리 삶의 환경이 메마르고 척박해도, 그들을 진정으로 살아가게 했던 것은 만나와 물이 아니라, 만나와 물을 내려 주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그분께 대한 희망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무섭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야훼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보호하고, 돌보아 주신다는 믿음 때문에 살아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저 그네들이 광야에서 만나와 물에 만족하고 살아갔다면, 들판에서 살아갔던 다른 야생동물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싶습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와 물에 만족했다면 그들은 인간에서 야생동물로 추락했을 겁니다. 적어도 정신적인 측면에서.... 이스라엘 백성 즉, 우리 인간은 야생동물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빵으로 배불린 이들이 다시 예수님을 찾아왔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26-27) 나아가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우리 안에는 근본적 배고픔이 있고, 근본적 갈증이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목이 마르면 물을 찾듯이 우리 안에는 가장 근원적인 무언가에 대한 갈증, 허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 내적 허기. 우리는 분명 하느님의 말씀으로 배부르고, 성체성사로 예수님을 우리 안에 담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이 내 몸과 피가 되듯이, 내가 받아먹는 예수님의 몸이 내 몸이 되고, 내가 받아 마시는 예수님의 피가 내 피가 되어, 내가 바로 그리스도와 같은 내면을 이루고, 그리스도와 같은 인격을 이루어 갑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세상적인 욕구, 아무리 먹어도 가슴이 채워지지 않는 우리 안의 근원적인 욕구, 갈증. 오늘 말씀으로, 빵으로 오시는 예수님, 그분을 통하여 내 허기진 삶을 채우고 싶습니다. 하여, 진정 생명이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좀 더 인간답게 하고, 무엇이 나를 진정 살아가게 하는지....
 

 
최성영 신부 (요셉)
서강대학교 교목사제
예수회 청년사도직 담당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