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영 신부] 6월 28일(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전야)
요한 21,15-19

베드로는 슬픈 기억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했던 상처입니다. 하지만 그는 스승을 배반하기 전에 세 번씩이나 스승을 따르겠다고 장담을 했었습니다.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 가겠습니까?” (요한 6,68).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요한 13,37) 예수님의 수난이 다가올 때, 베드로는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마태오 26,33) 그런 베드로가 예수님이 로마 군인들에게 잡혀가던 날 밤, 사람들이 그에게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하나가 아니냐? 라고 물었을 때, 베드로는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합니다. (요한 18,25)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The Passion of Christ)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밖으로 나가 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의 전 존재가 무너져 내리는 눈물이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왜 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것일까?

▲ 성 베드로, 후세페 데 리베라.(1637)
심리치료나 정신분석학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할 때, 상처받았던 과거를 재구성 한 다음, 상처 받았던 그 현장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감정이나 느낌들을 다시 체험하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치유가 일어나고,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제가 보기에 예수님의 물음은 놀랍게도 이 과정과 똑 같아 보입니다.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예수님은 베드로의 과거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스승으로부터 사랑받았던 기억도, 모든 제자들이 떠나가도 자신만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날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스승을 부인했던 캄캄한 밤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세 번씩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는 예수님의 물음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대답을 듣기위해서라기보다 스승을 버렸던 제자의 깊은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릅니다. 이 이름은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불러준 이름입니다. 티베리아 호숫가 역시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만났던 자리입니다. 나아가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라는 말씀은, 스승을 배반함으로써 무너졌던 베드로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주고 다시 사명을 주는 부여하는 말씀입니다. 결국, 오늘 복음은 스승을 배반했던 베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제자로서의 삶을 다시 살아가도록 베드로를 일으켜 세워주는 예수님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은 스승을 배반하고 스승을 따르지 못했던 제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면서 ‘그래 베드로, 다시 시작하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베드로의 나약함을 잘 아시는 예수님이시기에, 다시 등을 도닥거리면서 베드로에게 힘을 줍니다.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는 하도 눈물을 흘러서 양 볼에 눈물의 골짜기가 생겼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얼굴인지요. 베드로는 이제 제자로서의 삶을 온전히 살아갑니다.

대표적인 부활사화의 하나인 오늘 복음은 저에게도 늘 “처음으로” 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베드로처럼 나약함이 제 안에 있고, 살아가면서 때론 넘어지고, 때론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하느님께 죄스러운 삶이지만 예수님은 저에게 위로와 격려를 줍니다.

다시 시작하자, 네가 예수회를 처음 찾아왔던 날을 기억하고, 수련원에 어떤 마음으로 입회했는지 기억하라고. 지금까지 수도 여정을 걸어오면서 내가 너에게 준 사랑과 우정을 기억하라고.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바로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성에서 나오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최성영 신부 (요셉)
서강대학교 교목사제
예수회 청년사도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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