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영 신부] 5월 10일(부활 제6주일) 요한 15,9-17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요한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수난에 들어가기 전에 당신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특히 13장 이후를 보면,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그리고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게 해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그리고 성령을 약속하시면서,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1; 15,4; 14,18)

부모님들이 어딘가를 떠날 때 자녀를 위해서 냉장고에 밑반찬을 챙겨 두기도 합니다. 죽음을 앞둔 어떤 이들은 가족들에게 이런저런 일들을 당부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수난에 들어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위의 말씀들이, 저에게는 마치 먼 길을 떠나는 부모님이 자식들을 위해 이것저것을 챙기는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사랑했던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다 다시 아버지께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씀, 마지막으로 제자들의 가슴에다 담아 주고 싶었던 말씀, 그것은 바로 오늘 복음 말씀인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사랑은 사람을 성장시키는 근원적인 에너지입니다. 예수님은 어릴 때, 마리아와 요셉으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을 것 같습니다. 집을 떠나 세례를 받고 뭍으로 올라왔을 때,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예수님은 공생활 내내 그 목소리를 기억했을 것이고, 그 목소리로부터 삶의 힘을 얻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생애 동안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물고, 그리고 아버지가 주시는 그 사랑의 힘으로 살아갔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면서, 그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하게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 부활 뒤에 복음을 전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고초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은 그 어렵고 힘든 삶을 견뎌 나가고 죽음을 넘어설 수 있었을까? 무슨 힘으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로마 8,35-37) 제자들을 살아가게 했던 것은 예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머문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혼자 있든지 아니면 누구와 함께 있을 수도 있습니다. ‘머문다’ 라는 표현은 성경을 읽으면서 자주 만나게 됩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5,4-5)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요한 8,31)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그분 안에 머문다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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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 가는 길이 떠오릅니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루카 24,29) “우리와 함께 머뭅시다”(200주년 기념성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절망과 좌절감에 젖어 길을 걸어갔던 두 제자, 함께 걸어갔던 그분이 예수님이신도 줄도 몰랐던 두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머물렀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우리는 잘 압니다. 그들은 두려움을 떨치고, 실패와 좌절 두려움을 주었던 예루살렘으로 다시 달려갑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 머물 때, 그분의 말씀에 머무를 때, 메마르고 차가웠던 가슴이 뜨거워지고 절망에서 희망을 보게 되고 힘을 얻습니다.

오래 전, 신학 공부할 때 힘들면 혼자 숲에 가곤 했었습니다. 그렇게 숲에서 두세 시간 머물다 돌아오면 몸과 마음에 생기가 올라오곤 했었습니다. 5월, 싱그러운 달입니다. 새로 난 나뭇잎들이 푸른 햇살에 일렁이는 숲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 숲에 앉아 산새 소리를 듣고, 숲 내음, 바람소리에 잠길 때, 머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 영혼이 나무처럼 푸르러 가고 내 마음에 새 기운이 올라옵니다. 예수님 안에 머무를 때, 그분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들어오고 내 안이 그분의 사랑으로 물들어 갑니다. 그분의 사랑을 알아갈 때,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완성되고 하느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빕니다.”(에페 3,19)

 

 
 

최성영 신부 (요셉)
서강대학교 교목사제
예수회 청년사도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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