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영 신부] 7월 12일(연중 제15주일) 마르 6,7-13

예수회 수련자 시절, 순례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수련 형제들 각자가 여행 계획을 세우고 혼자 떠나는 순례였는데, 저는 1주일 동안 솔뫼 성지와 주변을 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 아침, 파견미사에서 수련장 신부님은 몇 가지 주의사항을 주셨습니다.

첫째, 절대 차를 타지 말고 걸어갈 것. 둘째, 위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말 것.

두 번째 사항은 성당이나 수녀원에서 가서 예수회 수련자 신분을 밝히고 도움을 청하지 말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의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 사진 출처 = pixabay.com

순례 첫날, 두 가지 문제를 직면해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배가 고팠습니다. 아침 일찍 수련원을 떠나 오후가 되자 허기가 졌지만 밥을 사 먹을 돈이 없었습니다. 무일푼으로 떠난 순례.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구걸할 수도 없었습니다. 너무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서요. 저녁나절 즈음, 농가를 걸어가고 있을 때 밭에서 뒹구는 무가 보였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틈을 타서 밭으로 가 무를 들고 시냇가에 가서 씻은 다음 무를 먹었습니다. 몇 개를 먹었더니 속이 좀 쓰렸습니다. 그래도 빈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해가 지자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11월 말. 누군가의 집에 가서 하루 재워 달라고 부탁할 용기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길바닥에서 잘 수도 없어서 빈 농가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여기저기 문짝이 뜯겨 나갔지만 그래도 큰 바람을 막을 수 있었기에 그곳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잠을 자다가 몇 번을 깼는지 모릅니다. 폐가에 들어갈 때 신문지를 주워 가지고 갔는데, 하도 추워서 신문지를 이불 삼아 덮었습니다. 신문지가 온기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람을 막아 주었기 때문에 그래도 나았습니다. 아니 그때 저는 신문지 한 장이 그렇게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다음 날, 어스름한 새벽녘에 일어나 첫 번째 목적지인 솔뫼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추운 곳에서 잔 탓인지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침 햇살이 떠오를 때, 의식적으로 태양의 온기를 몸에 담으려고 했습니다. 내 안에 저 태양의 온기를 담자. 따뜻함의 기운들이 제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길을 가면서 시냇가에 가서 물을 마시고, 다시 무를 주워 먹었는데 다시 속이 쓰렸습니다. 하루를 꼬박 걸어 솔뫼에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이었고, 보름달이 떠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솔뫼 성지, 예수님 상 앞에 가서 도착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하고 부르자,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다른 기도를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일주일의 순례 기간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순례 마지막 날에 일어난 일화입니다. 수원으로 들어와 차들이 다니는 도로변을 걷고 있는데 어떤 남자 한분이 제 곁을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은 당당해 보였고, 어깨를 으쓱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진짜 거지(Homeless)였습니다. 물론 저도 거지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너나 나나 같은 거지이지만 그래도 자신이 좀 났다는.... 뭐 그런 거였습니다. 사실 그분은 조그마한 짐 보따리도 있었습니다. 저는 살짝 웃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는 당신보다 더 못한 거지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걸어가는가? 그대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가? 당신이 무엇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하느님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

오늘 복음 중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당부하신 몇 말씀들에 저의 오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마르 6,8-9)

왜 그러셨을까? 이유는 단 하나, ‘오직 내가 너희들에게 준 힘과 권한에만 의지하라’고. 저의 순례여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직 하느님께만 의지하라는 것. 나의 생존을 온전히 그분께 내맡기라는 것.

우리는 여행하려면, 아니 이 땅에서 살아가려면 돈도 필요하고, 여행가방도 필요하고, 빵도 필요합니다. 살아가는데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 삶의 가장 본질적인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입니다. 살아가는 데 빵이 필요 없다는 것도 아니고 돈이 필요 없다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무엇에 나의 삶을 의지하고 있는가? 하느님인가? 아니면 그 무엇인가? 나를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느님께 의탁한다고 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내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고, 그 무엇을 할 때, 하느님께서 내게 온전히 그 일을 맡기셨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교회는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우리 삶을 순례로 봅니다. 이 세상에 왔다가 얼마 동안 이 세상에 머물다가 다시 떠나가는 여정입니다. 우리가 이 순례 여정을 하느님께 의탁하고, 하느님을 향해 살아간다면 그렇게 삶에 바동바동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가장 본질적인 것, 그것은 바로 하느님입니다.
 

 
 

최성영 신부 (요셉)
서강대학교 교목사제
예수회 청년사도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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