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영 신부] 4월 12일(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주일), 요한 20, 19-31

사람들은 토마스를 가리켜 믿음이 없고 의심이 많다고 합니다.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말하는 동료들의 말을 토마스는 믿지 못합니다. 나아가 그는 예수님의 손에 박힌 못자국을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 봐야만 믿겠다고 합니다. 과연 토마스는 믿음이 부족하고 의혹이 많은 제자인가? 우리 신앙에 있어서 의심은 의혹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토마스는 "자기체험과 경험에 의존하여 자기 확신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자기 손으로 직접 만져야만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지극히 "감각적인 경험, 체험에 의존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저 남이 하는 말을 듣고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런 비판 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질문, 명징함의 지름길
 
토마스는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시면서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 (요한 14,1-4 참조) 라고 하시자, 다른 제자들은 묵묵히 있는데 토마스만 묻습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요한 14,5). 토마스는 정직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아는 것은 안다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나아가 토마스는 진정 예수님이 가시고자 하는 길을 알고 싶어 합니다. 주님의 길을 알고 나면 그 길을 걸어가고픈 토마스의 원의도 느껴집니다.
 
토마스에게 있어서 의혹은 불분명한 것을 분명하게, 흐린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의혹이고 질문입니다. 그는 불신앙의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신앙을 얻기 위해 의문을 갖습니다. 의혹과 불신은 구별됩니다.
 
불신이란 “하느님의 실재를 지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반면에 의혹은 “지적으로 하느님의 실재를 확신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나가면서 의혹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의혹을 경험하지 않고서 성숙한 신앙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있다가, 신앙을 갖게 되기도 하고, 궁극적으로 신앙이 성숙되기도 합니다. “아무런 열정도 마음의 갈등도 불확실한 것도 의심도 심지어는 좌절도 없이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만 하느님에 관한 생각을 믿고 있을 뿐이다.”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우나무노가 한 말입니다.
 
토마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토마스야,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철저한 자기 경험에 의존하는 토마스에게 예수님은 당신의 상처를 만져보라고 하신다. 그때, 토마스의 내면 안에서 무엇이 일어났을까? 그는 예수님께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말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토마스의 이 고백은 그때까지 자기 자신만의 경험과 지극히 감각적인 체험에 의존하며 확신을 추구했던 그의 사고의 한계가 무너지고, 동시에 그의 사고가 확장되고 새롭게 세워지는 소리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고, 그 확신에 찬 가슴 벅찬 신앙고백입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사진 출처 = 사랑의 씨튼 수녀회 홈페이지
 
감각적 체험을 넘어설 때 생기는 일
 
우리의 신앙은 감각적이고 실증적인 체험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신앙은 그러한 체험을 토대로 하면서도 체험을 넘어서게 합니다. 눈으로 봐야만, 손으로 만질 수 있어야만 우리가 믿을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신앙의 대상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는 눈입니다. 그리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하느님을, 만져서 알기 보다 더 분명하게 내 안에서 다른 이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이 살아 계심을 느끼고 확신하는 신비입니다.
 
예수님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그는 분명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내 눈을 신뢰하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고, 그 신뢰는 하느님이 주시는 믿음의 선물이고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최성영 신부 (요셉)
서강대학교 교목사제
예수회 청년사도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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