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그러들 줄 모르는 메르스 감염은 연일 확진자수를 늘리고 있다. 그중 절반가량이 삼성서울병원에서 감염된 확진자다. 우리 정부가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판단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감염의 매개가 된 병원 명단을 정부가 공개하기 주저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왜 주저했을까? 정부의 변명은 구차해 보인다. 삼성서울병원이 명단을 공개하지 않도록 은밀히 손을 썼건 정부가 알아서 비호를 했건 배경에는 삼성서울병원을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지난 6월 11일 국회 메르스대책 특별위원회는 정부가 삼성서울병원을 ‘치외법권지대’처럼 다루었다고 질타했다. 치외법권 지대는 알다시피 법으로 다룰 수 없는 특권지대를 말한다. 이 용어는 과장되기는 했지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 삼성서울병원 전경.(사진 출처 = 삼성서울병원 홈페이지)

삼성 - 그것은 어느덧 성역이 되어 가고 있다. 정부로 하여금 명단 공개를 주저하게 하였던 심리적 배경에는 성역이 되고 있는 삼성 의식이 분명히 작용하고 있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삼성은 상황을 주도하는 존재이지 통제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삼성이 성역화 되어가는 기미는 이미 도처에서 확인된 바 있다. 삼성이 잘못되면 한국경제가 잘못된다, 그것은 곧 대한민국의 위기로 직결된다는 인식은 집권층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자리 잡았다. 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는 기업이라는 인식은 어느덧 자부심을 넘어 오만의 경지로 나아가고 있다.

그 적나라한 모습은 일찍이 삼성 X파일에서도 밝혀진 바 있었다. 삼성 X파일은 1997년 안기부 도청팀이 대선자금과 관련하여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의 대화내용을 도청한 것이다. 그해 4월에 있었던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주자들에 관한 자금 지원방안 그리고 9월 이후에는 여야 대선후보들에 대한 자금 지원방안이 그 골자였다. 지금도 위키백과에 적나라하게 남아 있는 그들 간의 대화를 읽노라면 삼성이 정치권을 바라보는 것이 마치 마법사가 낄낄거리며 마법의 구슬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국회 메르스 특위에서 삼성서울병원 감염내과장은 "삼성서울병원이 뚫린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국가가 뚫린 것"이라고 답변했다. 답변 의도가 어디에 있었든 다수의 국민들은 그것을 삼성의 오만으로 받아들였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삼성서울병원이 뚫린 것은 사실이고 그 병원을 경외하며 무력하게 모든 것을 기대고 있던 국가도 결과적으로 함께 뚫렸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나라는 바야흐로 삼성 X파일 사건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기고 말았던 담당검사 황교안을 국무총리에 임명하였다. 의료민영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삼성이라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있다. 황교안 총리는 의료민영화에 대한 소신을 소리 높여 주장해온 사람이다. 의료민영화는 말이 좋아 민영(民營)이지 결국은 의료를 자본의 수중에 넘기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 결과는 한국의 의료를 악명 높은 미국식 의료로 만들고야 말 것이다. 의료에서 공공을 제거하는 것이 삼성의 야심찬 목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메르스의 와중에 바로 그 메르스를 핑계로 논란을 거듭하던 원격진료가 삼성서울병원에 구렁이 담 넘어가듯 특권적으로 허용된 것은 이 모든 추세가 여전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삼성은 재벌로서 의료에 진출했다. 그 첫 병원을 삼성서울병원이라 명명한 것도 장차의 삼성대구병원, 삼성부산병원, 삼성광주병원 등을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는 풍문은 이미 오래 된 것이다. 삼성서울병원이 국내 최고를 자랑하면서도 수많은 공공병원이 갖추고 있는 음압병실을 하나도 갖추지 않은 것은 음압병실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메르스의 절반을 삼성서울병원이 양산한 것도 진료의뢰서 없이도 갈 수 있는 응급실을 전국의 환자를 끌어 모으는 교두보로 삼은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의 평소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 분위기가 가히 도떼기시장이라는 사실에 동의할 것이다. 시장의 지배자 삼성은 모든 것을 시장으로 만들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모든 것에서 나는 삼성의 맘몬화를 본다. 그것은 어쩌면 삼성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면서 더 근본적으로는 삼성을 바라보는 ‘엽전’ 한국의 어리석은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 권력을 넘어 금력을 추구하는 자들의 의식에서 나는 부인할 수 없는 맘몬 숭배를 본다. 일찍이 사마천은 그의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릇 보통 사람들은 상대방의 부(富)가 자신의 열 배가 되면 그것을 헐뜯고(卑下), 백 배가 되면 두려워하고 꺼리며(畏憚), 천 배가 되면 그의 일을 맡아 하며(役), 만 배가 되면 기꺼이 종노릇을 한다(僕).

어쩌면 이 땅의 권력자와 권력의 주변을 맴도는 자들은 모든 국민을 자신들과 함께 삼성의 종으로 몰아가려 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것은 드러난 악의와는 다르다. 그러므로 당사자들은 꿈에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손사래를 칠 것이다. 사마천도 부 앞에 무릎을 꿇어가는 것은 사물의 이치[物之理]라고 했다. 맘몬을 섬기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삼성이 맘몬이 되는 것은 삼성에게도 결코 이로운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그 국민 하나하나도 마찬가지다. 부는 통제 받고 규제의 대상이 될 때만 인간에게 이기일 수 있다. 규제 받지 않고 저만의 욕망에 따라 증식하는 부는 시대의 맘몬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 난데없는 역병의 창궐은 두렵게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이수태
연세대 법학과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의 관심은 철학과 종교학이었다. 그동안 낸 책으로는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 외에 에세이집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등이 있다.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 제1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등을 받은 바 있다. 퇴직 후 현재는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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