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모식에서 노무현의 아들 노건호가 김무성에게 돌직구를 날렸다고 해서 연일 화제가 되었다. 지난 대선 때 김무성이 유출된 국가 기밀을 선거용으로 줄줄 읽었던 그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것과 관련해서 사실 내가 할 말이 좀 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나는 지금도 역사적 문건으로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여전히 그 회의록을 벅찬 마음으로 회고한다.

김무성이 찌라시를 보았다며 선거용으로 써먹은 후 국정원장은 제멋대로 그것을 비밀에서 해제하여 공개해 버렸다. 그것이 다시 사초 폐기니 NLL 포기니 하는 어지러운 논란으로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그렇게 다 공개된 정상회담 회의록이라면 인터넷에도 돌아다닐 것이 아닌가 싶어 검색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정말 간단하게 전문을 볼 수 있었다.

나는 회의록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2년 전의 일이고 아마 12시가 거의 다 된, 밤늦은 시간, 침대에 누워서였을 것이다. 작은 스마트폰으로.

몇 시간을 읽었던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럭저럭 거의 새벽이 다 되었을 것이다. 읽어갈수록 나는 흥분된 마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단언했다. 이 문건은 21세기 민족사에서 손꼽힐 정도의 위대한 문건으로 남을 것임을!

▲ 2007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진 출처 = MBC NEWS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회의록이 준 감동이 여전히 남아 있던 상태에서 나는 사초 폐기니 NLL 포기니 하는 같잖은 이야기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어떻게 동일한 한국인들이 동일한 문건을 읽고 이렇게 하늘과 땅 같은 반응 차이를 보일 수 있을까, 이해할 수 없었다.

나로서는 솔직히 한심하고 기가 막혔다. 몇몇 보수인사들이 그 회의록을 읽고 손이 덜덜 떨렸다고 한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회담 초기에 김정일은 시종 남한이 자주성이 없어서 이런 대화를 백번 해봐야 미국 눈치 보느라고 소용이 없다며 빈정거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요하게 설득했다. 북한이 자주적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우리가 미국 눈치 보고 자주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자주성이 약간 침해되더라고 어쩔 수 없다. 오히려 너무 자주성만 찾으면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낸다.

나중에는 오히려 김정일이 노무현의 말을 막고 “무슨 말인지 알겠다. 이제 그 얘기는 그만 하자”며 화제를 돌린다. 자주성이라는 화제가 처음에는 북에서 남을 공격하는 화제였지만 노 대통령이 너무 자주성만 찾다가는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전개하자 갑자기 노무현의 입장이 공격적이 되고 김정일의 입장이 방어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김정일은 급격히 노무현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된다. 이런 대화 하나마나 하다던 김정일은 오후에 공연 관람을 취소하더라도 회담을 더 계속하자는 노 대통령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다. 심지어 점심시간에 군 고위 관계자들을 긴급 소집시켜 놓고 남측에서 요구하는 해주공단 안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묻고 조건부 수용으로 입장을 정리한다.

새벽 3시쯤이었을 것이다.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 조그만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나는 흥분으로 온몸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오후 회담은 두 통 큰 정상들의 배짱이 맞아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김정일은 이번에는 노 대통령에게 오늘 가지 말고 하루 더 자고 대화를 나누기를 요청한다. 세상에 이런 극적인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뭔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에 노무현은 오히려 한 발 물러서서 이제는 장관급이나 그런 실무자들에게 맡기자고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내가 회의록에서 본 김정일은 솔직하고 담백한 사람이었다. 그는 짧은 시간에 노무현의 사람됨을 통찰했고 신뢰를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세계 역사상 이런 정상회담이 없었다고 나는 단언한다. 그런 정상회담 회의록을 보고 손이 덜덜 떨렸다는 사람들을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한마디로 역사의식도 민족의식도 없는 아이큐 80짜리들이나 보이는 반응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얼마 후 유시민이 바로 그 회의록에 관해 책을 쓰고 강연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름 없는 나라도 무언가를 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다행히 유시민은 그날 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거의 그대로 보고 느꼈던 것 같다.

나는 그가 마포에서 행한 강연을 동영상으로 모두 보았는데 전혀 아쉬움이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감사하기도 했고 일부 나도 못 본 부분까지 본 그의 날카로운 혜안에 감탄하기도 했다. 만약 유시민마저 없었더라면,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을 것이다.

국정원장,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렸지만, 그가 제멋대로 기밀문서를 해제하여 공개할 때는 아마 남들도 자기처럼 전직 대통령의 한심함에 몸을 떨 줄 알았던 모양이다.

또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사초 폐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단한 사태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을 때 그녀는 아마 노무현 대통령이 어처구니없는 회의록 때문에 후세에 욕을 먹을까 두려워 일부러 그것을 없애려 했던 것으로 여긴 것 같다.

정말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정확히 그 반대였다. 회의록은 오탈자 투성이였다. 거의 한 문장에 한두 자 정도 비율로 오자가 나올 만큼 회의록은 서둘러 작성한 초안이었다. 노 대통령은 역사적 문건으로 남기기 위해 정밀하게 손을 보아 넘기기 바란다는 뜻을 비서관에게 전했고 비서관은 그 작업을 하느라 시한을 넘기면서 대통령기록관으로 넘어가지 못했을 뿐이다.

노 대통령 아들의 발언으로 2년도 더 지난 일이 생각나서 더 이상 세월이 지나기 전에 나도 내 독후감을 시대의 증언으로 남기고자 이 글을 썼다. 도무지 무엇이 찌라시고 무엇이 위대한 역사의 기록물인지, 어떤 것이 수치이고 어떤 것이 자랑인지 기본적인 가름도 못하는 진짜 찌라시 수준의 인물들이 정치를 한다고 설쳐대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절망한다. 노무현 대통령 아들의 말처럼 이렇게 강대국들이 하 수상하게 움직이고 있는 위기의 세월에, 백척간두의 조국을 그들에게 맡겨도 되는지 실로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이수태
연세대 법학과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의 관심은 철학과 종교학이었다. 그동안 낸 책으로는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 외에 에세이집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등이 있다.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 제1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등을 받은 바 있다. 퇴직 후 현재는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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