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이야기를 좀 하려 한다. 그런데 왜 이리 벽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막막한지 모르겠다.

지난 1월 29일, 전 서울경찰청장 김용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결론은 고법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죄였다. 대법원 판결이면 법적인 판결로서는 최종 판결이다. 그런 성격의 판결이라면 거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어떤 논란이 있었건 모든 것이 종결되고 그 판단을 수용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은 도무지 수용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소위 법률심을 담당한다는 핑계로 대법원은 고등법원에서 증거로 인정하고 불인정한 사실들에 대해 개입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권력의 눈치가 부담스러운 만큼 고등법원의 등 뒤에 숨어 법률심만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부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안은 그런 차원을 넘어서는 사안이었다. 이 사건은 워낙 정치적 파장이 컸고 언론의 주목을 받은 탓에 웬만한 사건과는 달리 그 주요 쟁점을 국민들이 소상히 알고 있었다.

국정원 선거개입의 개요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역삼동 성우스타우스 오피스텔 607호에서 선거에 개입하는 댓글을 작성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민주당 관계자들이 선관위 직원을 앞세우고 현장에 몰려간 것은 대통령 선거를 꼭 일주일 남겨 놓은 2012년 12월 11일 저녁 무렵이었다. 방 안에 있는 사람은 경찰과 선관위의 어떤 설득에도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사건은 급속히 언론에 보도되었고 여당과 박근혜 캠프에서는 긴장감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역삼동을 관할하는 수서경찰서가 이 사건을 맡았다. 수사에 착수하고 민주당과 국정원 간에 묘한 힘겨루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수사 착수 불과 4일여 만인 16일 밤, 그 날은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 간의 마지막 대선 토론이 있었다. 토론이 끝나고 아직 국민들의 시선이 텔레비전을 떠나기 전인 밤 11시 19분, 느닷없이 서울경찰청은 전국에 긴급 보도자료를 뿌려 수사 결과를 발표하였다.

“김 씨가 제출한 컴퓨터 등을 분석한 결과, 악성 댓글을 달았다는 흔적을 발견하지 못하였으며 특별한 혐의점을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새누리당으로서는 겨우 2-3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앞두고 향방을 가를 최대의 악재가 해소된 셈이었다.

그러나 실제는 어땠는가? 결국 그 날 오피스텔에서 국정원 직원은 쉴 새 없이 인터넷망을 통해 선거 관련 댓글을 달고 있었고 그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국정원에서 인력을 확보하여 조직적으로 추진되어 왔던 거대한 공작의 한 부분이었음이 만천하에 밝혀졌다. 검찰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직권을 남용해서 국정원의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였으며 허위의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도록 지시하여 특정 후보의 당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혐의로 기소하였다.

그러나 1심은 "실체를 은폐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허위 발표를 지시한다는 의사도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2심도 "능동적, 계획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하지 않았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그리고 지난 29일 대법원도 "피고인이 특정 후보자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려는 의도로 여러 지시를 했다는 검사의 주장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며 역시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로써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중 가장 민감했던 사건 하나가 종결된 것이다. 이 결론을 국민들은 지금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관련 사건이 발생한 12월 11일부터 서울경찰청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가 있던 16일까지 짧은 기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돌아보자.

언론에 사건이 보도된 이튿날인 12월 12일 오전. 수서경찰서의 권은희 수사과장은 문을 열어주지 않는 역삼동의 오피스텔에서 철수해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권은희 수사과장은 이를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에게 보고했다. 이광석 서장은 곧바로 김용판 서울청장에게 보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용판 청장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당시 수사과장과 수서경찰서장이 받은 전화들

그런데 그날 오후 권은희 수사과장은 느닷없이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일개 경찰서의 수사과장이 서울경창청장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이례적인 것이었다. 김용판 청장은 뒷날 국회에서 이 전화에 대해 "단순히 격려하기 위한 전화였으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은희 수사과장은 "김용판 청장이 직접 전화를 해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그 이유로 내사사건인데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는 것은 맞지 않다. 또 만약 영장을 신청했는데 검찰이 기각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과연 어느 쪽 말이 맞을까? 격려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것으로 믿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러나 그 이전에 이미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에게는 영장을 신청하지 말라는 전화가 쇄도하고 있었다. 이광석 서장은 그날 이미 경찰청 지능과장으로부터도 영장 신청을 하지 말라는 전화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범죄사실이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고 영장 요건이 구비되지 않았으며 이런 식으로 영장 신청을 남발하면 경찰수사권 조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취지로 서울청 수사과장으로부터도 전화가 왔다. 그리고 조금 뒤 김용판 서울청장이 전화를 했다. 특히 김용판 서울청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수서 경찰서장은 권은희 수사과장을 만난 자리에서 “서울경찰청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라는, 공포감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극단적 심리를 토로하기까지 하였다.

결국 영장 청구는 무산되었다. 방문을 열지 않고 완강히 버티던 국정원 여직원은 자신의 노트북에 들어있던 187개의 파일 등을 복구 불가능한 방식으로 지운 후 노트북을 소위 임의제출 방식으로 경찰에 제출하였다. 그 때가 12월 13일 오후 3시 경이었다. 수서 경찰서는 단독으로 사이버 수사를 할 장비나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작업을 서울경찰청의 사이버분석 팀과 공조하여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모든 ‘격려 전화’가 사이버분석 팀에 몰렸을 것이다. 수서경찰서 수사과는 모두 100개의 검색어를 제시하여 조사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검색에 동원된 것은 단 4개의 검색어에 불과하였다. 서울청은 100개를 요구한 공문도 4개로 고쳐서 다시 보낼 것을 종용했고 수서경찰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공문을 다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김용판, 청와대 근처에서 점심 식사 결재를 오후 5시에...

이튿날인 12월15일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청와대 근처 모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업무추진비 28만원을 식사값으로 결재했고 결재한 시각은 오후 5시였다. 누군가와 매우 장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하는 것이었다. 서류상 함께 식사를 한 것으로 되어 있는 서울경찰청 정보과장 등은 한결같이 식사를 함께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결국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을 감추어야 했던 모임임을 추정케 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김용판 청장은 국회에서 일관되게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기억나지 않는다"

▲ 2013년 9월4일 주교좌 의정부성당에서 의정부교구 사제 157명이 참여하여 국정원 대선 개입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이윽고 문제의 12월 16일 오후. 심리전단을 관할하는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이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에게 전화를 했다. 김용판 청장은 공직 생활을 국정원에서 시작해서 잔뼈가 굵은 대표적인 국정원맨이었다. 이종명 3차장은 이미 국정원 직원 댓글 사태가 발생한 12월 11일 밤늦은 시간에도 김용판과 통화를 했고 12월 14일에도 통화를 했다. 국정원의 이해관계와 요구사항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수사 과정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컸다. 또 비슷한 시간에 국정원의 박원동 국익정보국장도 김용판 서울청장과 전화 통화를 하였다. 박국장도 이 전화와 관련하여 국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사건과 관련해 고생하고 있어 인사도 할 겸 궁금하기도 해서 전화했다”

수사 담당자도 모르는 중간 결과 발표

이 말을 믿을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밤 11시가 넘어 경찰은 전례 없는 수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수사의 일선 담당자인 권은희 과장도 모르고 있었던 발표였다. 김용판의 수사 방해 및 선거 개입 재판은 그런 점에서 너무나도 희한한 재판이었다. 이 사건의 전말과 누가 왜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였는가 하는 것은 판사들도 알고 있었고 검사들도 알고 있었고 피고인도 알고 있었고 방청인도 알고 있었다. 재판정 밖에서는 기자들도 알고 있었고 여당도 야당도 모두 똑같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재판의 결과는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아무런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의 김동진 부장판사는 원세훈 국정원장의 엄청난 범죄가 정치 개입이기는 하지만 선거 개입은 아니었다고 판시한 이범균 부장판사를 향해 의분의 일갈을 토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2014년 대한민국의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로 길이 남게 되었다.

1,2,3심은 하나 같이 권은희 수사과장의 증언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김용판의 무죄를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1,2,3심은 역시 하나같이 무엇에 찔리기라도 한 듯이 당시 경찰의 수사 방식이나 발표 내용, 발표 시기에 모두 ‘비상식적인 측면’이 있다고 인정했다. 마치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해 놓고 사실 “말의 머리 위에 뿔이 있다는 것은 좀 비상식적인 것이다”고 말한 셈이었다.

굽은 옛것이 다시 살아나는가...

김용판이나 원세훈의 범죄는 매우 중대한 범죄였다. 그것은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거머쥐고 유지하려는 집요한 욕망을 둘러싼 저 끔찍한 범죄 행각이 다시 고개를 쳐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바쳐 막아 왔던 후진국적 정치행태가 불과 25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악령처럼 되살아난 것이기도 했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면 결코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 마지막 보루가 사법이었다. 그러나 사법은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저버렸다. 사법은 굽은 것을 곧은 것 위에 올려놓았다. 일찍이 공자는 노나라의 통치자 애공(哀公)에게 이렇게 말했다.

“곧은 것을 들어 굽은 것 위에 놓으면 백성들이 따를 것이나 굽은 것을 들어 곧은 것 위에 놓으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哀公問曰;何爲則民服?孔子對曰;擧直錯諸枉則民服,擧枉錯諸直則民不服.) 논어 2,19

이 사건의 몸통 범죄라 할 수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정보국장의 선거 범죄에 대한 항소심 선고가 이달 9일에 있을 예정이다. 검찰은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원세훈에 대해서는 징역 4년, 이종명과 민병주에 대해서는 징역 2년을 각각 구형하였다. 사법이 정의에 입각하여 판결을 하느냐 권력의 흐름에 좇아 좌면우고하는 구시대의 관행으로 돌아가느냐를 두고 다시 한 번 모든 국민들은 숨죽이고 지켜볼 것이다.
 

 
 

이수태
연세대 법학과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의 관심은 철학과 종교학이었다. 그동안 낸 책으로는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 외에 에세이집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등이 있다.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 제1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등을 받은 바 있다. 퇴직 후 현재는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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