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하게도 세월은 흘러 우리는 다시 4월에 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우리는 돌아온 4월 앞에서 가슴만 먹먹하다. 팽목항의 난간을 잡고 바라보던 저 말 없는 바다처럼 우리도 그저 말없이 이 4월을 맞이하고 또 보내야 할까? 바람에 나부끼던 노란 리본들처럼 단지 하염없이 떨며 나부끼기만 해야 할까? 그러기에 우리는 너무나도 억울하다.

그날, 기울어진 배 속에 아이들은 갇혀 있고 배는 점점 기울어 갔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오직 제 발로 빠져나온 소수의 아이들과 비겁하게 피해 나온 선장과 선원들을 해경 보트가 실어 날랐을 뿐이다. 결국 배는 뒤집어져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아이들은 모두 죽었다.

제주도 수학여행의 부푼 꿈을 안고 재재거리고 떠들며 엄마 아빠에게 즐거이 문자를 날리던 300명의 아이들은 그렇게 죽어 갔다. 그 사이에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런 비참한 일이 일어날 수 없는 안전하고 튼튼한 나라를 만들지 못했고, 아이들을 엄청난 과적의 선박에 태워 속수무책의 맹골수로로 보냈다.

아니 우리는 반성조차 하지 못했다. 그동안 우리가 창조한다고 했던 나라가 과연 바람직한 나라였는지를 되묻지도 못했다. 나라를 자본과 물질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것은 아닌가, 인간의 세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돈과 재물의 세상을 만든 것은 아닌가 물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려고는 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들의 의지가 강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권력이 그것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권력이 막으면 도리가 없다. 권력은 그냥 예전처럼 하라고 했다. 그저 야바위꾼처럼 정부 부처만 이리저리 나누고 합쳤다. 세월호 이전부터 추진하던 규제철폐는 세월호 이후에도 두 눈 딱 감고 변함없이 추진되었다.

기괴한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바뀐 것은 없었다. 아니 바뀔까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보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이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진상규명이었다. 권력은 기를 쓰고 진상규명을 하지 않으려 했다. 왜 그럴까? 모든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진상이 규명되면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일까? 권력이 흔들리게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막무가내로 그것을 방해했다. 그 이유가 더 궁금하다. 그에 앞선 국정원 사태의 진상규명 때문에 무슨 진상이든 관계없이 그저 진상규명이면 다 공포에 질린 탓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이른바 '대통령의 7시간'이 거론되는 과정에서 그런 공포가 자리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왜 당당히 진상규명에 나설 수 없을까? 권력이 앞장서서 진상규명을 진두지휘할 수도 있는 일이고 실제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권력이 확고한 국민적 지지기반을 갖추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왜 그 좋은 일을 외면할까?

한마디로 기괴한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이 세상 그 어떤 국가에서 이런 유형의 참사가 이런 유형의 전개를 보일까? 어떤 나라에서 참사 1년이 지난 시점에 유가족들이 진상규명 특별법 시행령을 반대하는 농성을 벌일까? 어떤 나라에서 참사 1년이 되자 갑자기 몇 억이니 하는 피해자 보상금액이 언론에 유포되고 한동안 조용하던 대리운전기사 폭행 관련 사건이 다시 시작될까? 어느 후진국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이런 해괴한 일들이 참사 1주년을 맞아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고 해석해야 할까?

누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3월 천주교 주교단이 프란치스코 교종을 방문했을 때 교종은 "세월호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고 물었다. 언론 보도는 그것뿐이었다. 주교단의 어느 누가 무어라 답변을 했다는 얘기도 없었고 그에 대한 교종의 반응도 실리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누가 그것을 답변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설혹 답변을 할 수 있었다 한들 교종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은 교종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자청하여 명동성당 미사에 참석했다. 교종이 종교적 차원에서 임하는 미사의 중요성과 성스러움만큼이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 미증유의 참사에 임하는 것은 중요하고 성스러운 일이다. 그들을 위로하고 함께 슬퍼하며 더 이상의 비극이 없는 인간적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업은 한없이 중요하고 성스럽다.

어쩌면 그녀는 미사에 참석하러 갈 것이 아니라 광화문에 쓰러져 울부짖는 유족들을 만나러 갔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하느님이 기뻐하실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들의 소원대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프란치스코 교종이 평소 강조하던 바와 같이 인간이 돈과 재물에 희생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쪽으로 나라의 방향을 잡음으로써 그날 교종이 물었을 때 주교단이 기쁜 마음으로 답변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다시 온 4월에 우리는 우리의 못난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다. 팽목항의 난간을 잡고 우리는 저 바다처럼 차라리 말이 없고 싶다. 늘어선 리본들처럼 아직은 찬 바람에 떨며 그저 나부끼고 싶다. 시달리고 싶다. 미안하다. 아이들아.

 

 
 

이수태
연세대 법학과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의 관심은 철학과 종교학이었다. 그동안 낸 책으로는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 외에 에세이집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등이 있다.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 제1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등을 받은 바 있다. 퇴직 후 현재는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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