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셔먼 미 국무부 차관이 2월 27일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의 한 세미나에서 한 발언이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그녀는 세미나의 기조연설에서 “한국과 중국이 소위 ‘위안부’ 문제를 놓고 일본과 논쟁하고 있으며 역사 교과서 내용, 심지어 바다의 다양한 명칭을 놓고 이견이 나오고 있다”면서 “이해는 가지만 실망스럽다”고 시비조로 말을 꺼냈다. 그러면서 그녀는 “민족 감정은 여전히 악용될 수 있고 정치 지도자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는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불러온다”고 비판했다.

이례적으로 강도 높은 비판은 "동북아의 과거사와 관련하여서는 한국, 중국, 일본 모두가 책임이 있다"는 발언에서 우리는 더 이상 참기 어렵다. 무리한 논리로 치달은 웬디 셔먼의 연설은 "미국과 일본, 중국, 한국이 지속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가고 힘을 합친다면 세계가 좀 더 안전하고 풍요로우며 더욱 안정될 것"이라는 초등학교 교과서 같은 소리로 마무리되고 있다.

웬디 셔먼의 발언, 미국의 분명한 메시지

이 연설을 접한 당국자들은 적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조태용 외교부 차관은 3월 2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하여 일단 "웬디 셔먼 차관의 발언을 가볍지 않게 보고 있다"고 경각심을 보였다. 그렇지만 곧 "외교 통로를 통해 확인한 결과 미국 정부의 입장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뻔한 이야기를 보고했을 뿐이다. 국회 외교통상위원장인 나경원 의원은 “일본이 최근 미국을 상대로 역사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인 외교를 하고 있고 그 외교가 효과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면서도 “미국의 태도 변화라고 확대해석할 것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이라는 후방 지대의 사람이 일선 외교부의 차관보다 안이한 발언을 한 셈이다. 그렇다면 웬디 셔먼 차관의 발언은 단지 우발적이고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했을까? 그녀는 혹시라도 한국 정부가 자신의 발언 의도를 헤아리지 못하고 그냥 하는 소리려니 하고 말까봐 친절하게도 “이는 앞으로 몇 달간 오바마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강화할 메시지”라고 분명한 토를 달았다.

▲ 지난 2월 27일 국제평화연구소의 세미나에서 발언하는 웬디 셔먼.(사진 출처 = 민중의 소리 게시,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한마디로 세미나 기조연설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미국의 공식적인 외교정책을 위협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누구에게? 한 치의 이견도 없이 죽을 잘 맞추고 있는 일본을 겨냥해서? 어차피 말해 봐야 소용이 없는 중국을 겨냥해서?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그녀의 경고는 한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지도자"는 표면적으로는 한중의 지도자를 아우르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이런 모욕적이고도 공개적인 경고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이 문제를 두고 미국을 원망하고 웬디 셔먼의 엉성한 논리를 따져들고 일본의 교활한 로비를 비난하는 것은 전혀 무익한 짓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우리 정부의 값싼 처신이 낳은 결과였다.

우리나라, 군사 주권 스스로 포기

돌아보자. 노무현 정부에서 착수했던 전시작전권 회수는 안 받겠다는 미국 정부를 어루고 달래가며 간신히 반납했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더라도 미국 앞에서 한국이 과연 대등한 국제 관계의 당사자로 인식될 수 있겠는가? 힐러리 국무장관이 반복적으로 추진 의지를 비쳤던 한반도 정전체제의 종식 및 평화체제의 구축은 이명박 정부가 기를 쓰고 반대하여 결국 포기시켰다. 이런 나라의 자주성도 존중해 줄 필요가 있을까?

휴전선은 이미 남북의 대치 전선이기를 넘어서고 있다. 일찍이 토인비는 다가오는 새로운 천년(millennium)은 서방과 중동의 길고도 오랜 갈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서방과 중국과의 대결의 천 년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정녕 우리는 그 대결의 전선이 우리 국토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미 우리는 한미일 군사정보공유약정을 체결한 바 있다. 비록 군사정보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지만 전선(戰線)임은 분명하고, 놀랍게도 사상 최초인 이 전선의 의미는 더욱 분명하다. 일부에서 이것을 두고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미국의 공개 경고 이유, 사드 배치

미국은 왜 이 시점에 국무차관을 내세워 쓸데 없이 과거사 문제를 가지고 일본과 다투지 말라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공개 경고를 하기에 이르렀을까?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공동 방어 전선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뭣 때문에 일본의 아베 총리와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을 잇달아 미국으로 불러들일까?

예상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현안은 사드(THAAD)의 배치일 것이다. 이 땅에는 이미 북한의 모든 미사일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체계(MD)가 구축되어 있다. 사드는 중국 본토를 광범위하게 사정거리에 넣고 있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다. 우리가 사드를 도입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하반기에 박근혜 대통령을 미국으로 불러 사드의 도입을 강력히 주문한다면 어쩔 것인가? 눈웃음을 치며 손만 흔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시간만 끌고 버벅거리다가 결국 수용하고 만다면 이 땅에는 천년의 갈등을 담은 최전선이 걸쳐지고 국토는 여전히 미중일의 각축장이 되고 통일은 영원히 물건너가고 말지 않겠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동안 무난했던 한중 관계는 바로 갈등관계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제발 정부가 현명하게 판단해 주기 바란다. 미국은 중국의 급성장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미국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아시아는 미국에게 그다지 긴요한 땅이 아니다. 중동처럼 엄청난 석유가 매장되어 있지도 않다. 또 이미 베트남에서 철수한 경험도 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계획하고 일부 추진한 적도 있지 않은가?

아시아에서 미국이 빠지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약간의 자존심만 누른다면 내일이라도 가능한 일이다. 굳이 목을 걸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미 전략적 인내라고 하여 몸을 도사리기 시작한 미국이 아닌가. 그러나 미국이 빠진다면 심각한 국면에 빠질 나라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과거 제국주의의 맹목적 전횡에 편승한 이래 한국, 중국 등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에 '천 년의 한(恨)'을 심어 준 나라다. 미국이 빠진다면 그들은 태평양을 떠도는 고무신짝처럼 외톨이 신세가 된다. 설혹 미국이 빠지지 않더라도 한국이 방패막이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중국과 서방의 팽팽한 전선은 일본열도에 걸쳐질 수밖에 없다. 일본은 그런 상황이 형성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현실성보다 심리적 측면에서 더 그러할 것이다. 제국주의 시절에 그들이 아시아에 행한 원죄가 심저에서 어둡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배후에는 일본

결국 이번 웬디 셔먼 차관의 노골적 발언은 그 뒤에 미국이 있지만 그 뒤에는 일본이 있다. 사람들은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협정을 을사늑약에 비교한다지만 보다 길게 바라볼 때 나는 저 임진왜란 당시의 정명가도(征明假道, 일본이 조선을 거쳐 명나라를 칠 테니 조선은 길을 빌려달라던 전쟁 명분)가 생각난다. 그들이 미국을 가운데에 끼워 우리에게 강요하고 있는 현 사태는 봉중가순(封中假盾)이 아닐까? 한국이 팽창하는 중국의 세력을 막아줄 영원한 방패가 되어달라고 등을 떠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현 정권이 어떻게 해서든 이 요구를 막아 내야 한다고 본다. 이미 일본은 웬디 셔먼의 발언을 기다렸다는 듯이 온갖 보수단체들을 동원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대일 외교 기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연일 성토하고 나섰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언가? 그것은 국가의 정체성과 기본 노선을 확고히 하는 일이다. 미국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나을까 중국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나을까를 생각한다면 어느 쪽으로 기울어져도 나라는 도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문화, 경제, 국방 모든 방면에 걸쳐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참여하는 높은 정체성을 갖추어 나가야 한다. 종북이니 수구꼴통이니 하며 세월을 보내거나 심지어 정부라는 존재가 그런 대립적 구도에서 스스로의 입지를 찾을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주성 높은 국가만이 이웃도 있고 우방도 있다. 구심력도 잃고 자주성도 잃고 있던 말기의 조선에 과연 어떤 이웃이 있었고 우방이 있었던가? 단지 바짓가랭이를 잡고 "도와주세요" 하는 나라는 무시당할 수밖에 없고 결코 우방일 수도 없다는 것을 이번 웬디 셔먼이 일본을 대신하여 낭독한 경고문에서 뼈저리게 확인한다.
 

 
 

이수태
연세대 법학과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평생의 관심은 철학과 종교학이었다. 그동안 낸 책으로는 “새번역 논어”와 “논어의 발견” 외에 에세이집 “어른 되기의 어려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등이 있다.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 제1회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등을 받은 바 있다. 퇴직 후 현재는 강의와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