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 매튜 폭스
매튜 폭스(Matthew Fox)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 사제(수사 신부)였는데,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수장이었던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저술과 강의를 강행하다가 수도회에서 퇴회한 후 성공회로 이적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신학자입니다. 그런데 그가 ‘파문당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나 봅니다. 이에 대해 물어 오신 분이 있어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넓게 볼 때, 파문(破門)은 종교 집단에서 사용하는 단어로서, 라틴어로는 엑스코무니카시오(excommunicatio, 영어 excommunication)라고 합니다. 이것은 어떤 개인이나 모임을 일치된 상태(communion)에서 배제시키는 것, 다시 말하면 공동체(community)로부터 밖으로(ex) 내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구체적으로 가톨릭교회 내에서 본다면, 교회가 신앙에 위배되는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개인이나 단체에게 영성체를 할 수 없도록 제재를 가하는 것이 됩니다.

가톨릭교회는 영성체를 커뮤니온(communion)이라고 하는데, 성체를 모실 수 없게 되는 상황이 ex(~ 밖으로), communion(영성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영성체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해성사에 대해서도 제재를 받을 수 있고, 교회 내의 다양한 활동에서 배제될 수 있습니다. 독서, 봉헌, 성가 등의 전례 행위에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파문 처벌을 받는 이가 성직자 신분이라면 그는 성사 집행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파문 상태에서 그가 하는 성무는 무효로 처리됩니다.

파문의 성서적 배경은 마태오 복음(18,15-18)에서 보듯이 잘못을 저지른 형제에게 타이르고, 그가 말을 듣지 않아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타일러 보아도 듣지 않으면,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라는 지침에 있습니다.

교회법에서 처벌은 교정벌과 속죄벌로 크게 나뉩니다. 파문은 교회법에서 말하는 교정벌(혹은 치료벌 / 파문, 금지, 정직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음) 중의 하나로서 개인이나 단체를 완전히 교회 공동체 밖으로 추방하는 벌이 아닙니다. 회개를 통해 공동체로 돌아오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교정벌과 달리 속죄벌은 유기한이든 무기한이든 기한이 정해져 있으며 영성체를 금지하는 벌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파문을 받은 이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이것을 해당 지역 교구장이 받아들이면 파문이 철회됩니다. 파문은 보통 해당 지역의 교구장이 지역 상황에 따라 제정할 수 있습니다(교회법전 1315조 참조).

하지만 교구장, 주교 등의 선언이 필요 없이 자동적으로 파문, 금지, 정직 등의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사항을 전문용어로 “라태 센텐시애(Latae sententiae)”*라고 합니다. (* ‘선고가 이미 내려졌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어떤 행위는 그 즉시 처벌 대상이라는 것이며, 그 행위의 결과로 자동적인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이 자동처벌을 풀어줄 수 있는 권한은 죽음에 임박하여 죄를 고백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황이거나 해당 교구의 주교에게 있습니다. 아래 사항을 참고로 보시면 어떤 경우가 이런 제재에 해당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파문에 해당하는 사항
- 배교, 이단 행위 (교회법 1364조)
- 성체를 모독한 자, 독성 목적으로 성체를 보관하는 자 (교회법 1367조)
- 교황에 대해 물리적 힘을 쓴 자 (교회법 1370조 1항)
- 자신과 성관계를 맺은 이의 죄(십계명 중 제6계명을 위반한 죄)를 고해성사로 사해 준 사제 (교회법 1378조)
- 사도좌(교황)의 위임 없이 주교품을 준 주교와 그 수품자 (교회법 1382조)
- 고해성사의 비밀 봉인을 직접적으로 누설한 경우 (교회법 1388조)
- 낙태를 주선한 자 (교회법 1398조)
- 공범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실행되지 않았을 범죄의 공범자들 (교회법 1329조 2항)

금지 (사실상 파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만, 파문과는 달리 교회를 운영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주교에게 물리적 힘을 쓰는 자 (교회법 1370조 2항)
- 사제가 아니면서 미사 전례 행위를 시도하는 자 (교회법 1378조 2항 1호)
- 고해사제가 십계명 중 제6계명을 거스르는 죄로 자신을 유혹했다고 거짓으로 고소하는 자. 그가 성직자라면 정직(suspension) 제재도 받는다. (교회법 1390조 1항)
- 성직자가 아닌 종신서원 수도자가 국법상만으로 결혼을 시도할 경우 (교회법 1394조 2항)

정직 (성직자에게만 해당합니다.)
- 주교에게 물리적 힘을 가한 성직자 (교회법 1370조)
- 부제가 미사 집전을 시도한 경우 (교회법 1378조)
- 성직 성물 매매 행위로써 성사를 거행하거나 받는 자 (교회법 1380조)
- 불법적으로 서품을 받은 자 (교회법 1383조)
- 장상에게 거짓 고소를 한 자 (교회법 1390조)

이렇게 열거한 것을 보면, 배교나 이단 행위가 증명되지 않는 한 매튜 폭스는 ‘라태 센텐시애’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단으로 취급할 만한 신학을 전했는지 여부는 지속적으로 검토되었습니다. 아무튼 그는 순명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수도회에서 퇴회 당했고, 신앙교리성 장관은 그런 그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런 정황으로 본다면, 매튜 폭스가 파문을 당했다고 해도 잘못된 표현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많은 이들에게 신학적으로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켜 준 당사자의 억울함이 어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그가 좌절 속에 멀리 간 것이 아니라 옆집으로 가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함께 말입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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