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속풀이 - 박종인]

중세에는 영성체를 1년에 한 번, 그러니까 가장 큰 축일인 부활절에 했다고 합니다. 한 해에 한 번인 만큼 영성체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18세기에 프랑스에서 열심히 성체를 모시려는 신심운동이 퍼지면서 날마다 영성체를 하는 분위기가 생겨났습니다. 오늘날에는 영성체를 자주 하는 것을 신심운동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만, 적지 않은 분들이 주일 미사만이 아니라 평일 미사에도 열심히 나오셔서 성체성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영합니다.

날마다 성체를 모시는 것은 우리가 육신의 건강을 위해 날마다 밥을 먹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영혼을 위한 양식 역시 날마다 섭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맥락이라면 하루에 보통 세 끼니를 먹으니 세 번까지도 영성체를 허용하여야 할까요? 현실적으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미사 봉헌을 해야 하는 사제들이 아니라면 신자가 하루에 두 번 이상(한 번은 토요일 평일 미사, 다른 한 번은 토요 특전 미사 같이 말이지요) 미사 참례를 할 이유는 특별히 없습니다.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 제79조는 “같은 날 여러 대의 미사에 온전히 참여하는 사람이라도 두 번만 성체를 영할 수 있다(교회법 제917조 참조)”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규정의 배경에는 교회가 영성체를 권장하지만 그것의 남용이나 미신적인 집착은 금하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속풀이의 애독자분들이 성체는 클수록 좋다고 믿고 계시는 건 아니겠죠? 반대로 성체가 부족해서 잘게 쪼개진 것을 모셨다고 낙담하는 분도 안 계실 것입니다.

ⓒ한상봉 기자

프랑스 파리에서 사제서품을 위한 과정을 마무리할 무렵, 제가 머물렀던 공동체에는 전례학 교수님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공동체 모임에서 제안하신 것이 생각납니다. 수도회 공동체이기에 우리가 날마다 미사를 봉헌하기는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미사 대신, 다른 전례로 대신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요. 그렇게 하면, 날마다 성체를 영하는 것이 기계적인 예식이 되지 않고 영성체의 의미를 그런 날에 좀 더 깊이 되새겨 볼 수 있을 거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제게는 그 제안이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사실 날마다 너무도 당연하게 영성체를 하고 있었고, 때때로 의무적으로 전례에 참여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곤 했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에서 그것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는데 결과는 그냥 계속 미사를 하자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매일 미사를 강하게 주장하는 의견이 있었기에 기존의 방식을 지속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의 제안은 그 이후에도 제 개인적인 차원에서 영성체를 타성에 젖은 방식으로 하지 않도록 해 주고 있습니다.

영성체는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삶에 일치하게 됨을 경험하는 구체적인 사건입니다. 이 만남과 일치를 생각하면 큰 감사의 마음이 일어납니다.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보이던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고 나면 그만큼 더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박종인 신부 (요한)
예수회. 청소년사목 담당.
“노는 게 일”이라고 믿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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