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송전탑 건설로 고통 받는 밀양, 청도…천주교는 침묵하는가

▲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 철거 행정대집행 직전의 101번 현장에서 조성제 신부(농성장 지붕 위 가운데)는 주민들과 끝까지 함께했다. ⓒ장영식

천주교는 교구별로 독립적인 자치 체제를 갖춘 독특한 구조이다. 그런 면에서 밀양은 부산교구에 속해 있는 본당이 있고, 밀양 인근의 청도는 대구대교구에 속한다. 밀양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는 김준한 신부는 남밀양성당 주임신부를 지내고, 지금은 천주교 부산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101번 현장에서 끝까지 함께 연대했던 조성제 신부도 생태환경사목을 담당하고 있는 부산교구 성직자다.

부산교구가 김준한 신부에게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를 맡게 한 것은 한편으로는 교구의 사목적 배려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본당의 틀을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로운 관점에서 밀양 문제에 헌신할 수 있도록 교구의 특별한 관심과 암묵적 지지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부산교구는 교구에 속한 사제들과 신자들이 밀양 현장에서 연대하고 공권력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현장을 방문하지는 않았다. 교구에서 현장을 방문하여 주민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대안을 마련하는 등 밀양의 문제를 교구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했다.

부산교구는 2013년 5월과 10월의 공사 재개와 대규모 공권력 투입과 관련하여 개별 사제들의 연대와 참여는 제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구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의롭지 못한 공권력의 폭력적 상황과 비탄에 젖은 주민들의 절규에 대해서는 끝내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남녀 수도회들과 전국의 사제들이 엠마오 행사 등으로 연대 방문하여 밀양의 아픔과 함께했다.

▲ 전국의 성직자, 수도자들이 밀양 현장을 방문했다. ⓒ장영식

▲ 지난해 10월,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을 방문한 김준한 신부가 밀양경찰서장에게 헬기 운행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장영식

▲ 수도자들이 밀양 127번 현장을 찾았다. ⓒ장영식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밀양 115번 현장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장영식

한국 교회는 2014년 6월 11일 밀양에서 있었던 행정대집행과 그로 인한 공권력과 주민 간의 대규모 충돌로 발생한 수도자들과 연대 시민들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6월 10일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호소문 외에는 항의서나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 없었다. 한국 천주교 지도자들이 공권력의 부당한 개입과 폭력에 대해서 끝내 침묵한다면, 복음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 그 자체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지난 7월 21일 새벽, 청도 삼평리의 마지막 남은 345㎸ 송전탑 1기의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한전은 100여 명의 직원을 동원했고, 경찰은 3개 중대의 병력을 지원했다. 21일 하루만에 10명이 연행되고 다수의 시민들이 부상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청도 삼평리 주민들은 30도가 넘는 더위에도 불구하고 아스팔트 위에서 송전탑 건설 저지를 위해 레미콘 차량을 온몸으로 막다가 탈진하여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으며, 연대 시민들이 경찰서로 연행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또한 청도경찰서(서장 이현희)는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의 권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뜨거운 태양 볕을 가리기 위한 그늘막을 치는 것조차 공권력을 동원하며 막고 있는 처참한 상황이다.

이렇게 청도 삼평리의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대구대교구는 청도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대구대교구는 정의평화위원회 사제를 파견해서 청도 문제에 대해 기본적인 조사와 주민들과의 면담 등을 통해 한전과 정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교회의 입장을 발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고 있다.

이미 가톨릭교회는 2013년에 <핵기술과 교회의 가르침>이라는 문헌을 발표한 적이 있다. 이 문헌은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이라는 인류의 대재앙을 경험하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내놓은 핵발전에 대한 천주교회의 성찰을 전제하고 있는 문헌이다. 밀양 765㎸ 송전탑 건설과 청도 345㎸ 송전탑 건설은 신고리핵발전소 3 · 4호기 건설과 관련되어 있다. 또한 신고리핵발전소 3 · 4호기는 부품 성적서 위조 사태 이후 제어케이블 재설치 등으로 건설 완공이 무기한 연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핵발전소 건설과 관련된 부정과 비리 그리고 은폐는 ‘핵마피아’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핵발전소 건설과 관련하여 총체적 비리를 안고 있는 곳은 한국 외에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국민의 안전과는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는 핵발전소 건설과 그로 인한 밀양과 청도 주민들의 재산권과 생명권 강탈, 정의와 인권이 억압당하는 상황 아래에서 교회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한국 교회는 “교회 밖으로 나가라”고 외치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문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교회는 교종 방문의 역사적 의미를 희석하고 있다. 단지 교종의 방문은 하나의 대규모 행사를 위한 것으로 밖에 비추어지지 않고 있다. 교종의 방문 일정을 보면 불행하게도 가난하고 억압 받는 이들의 중심에 계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외면하고 있다. 비탄에 젖은 가난한 이들의 절규를 외면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문을 올곧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청와대와 밥 먹고 악수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한국 교회는 세월호의 아픔과 함께해야 하고, 밀양과 청도를 통하여, 밀양과 청도와 함께, 밀양과 청도 안에서 슬퍼하고 계시는 연민의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하느님 사랑의 참된 아름다움은 인간의 절망적 한계 상황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교회가 더 늦기 전에 교회 밖의 삶의 현장으로 문을 열고 나와야 한다. 교회가 거리에서 다치고 상처 받고 더렵혀지더라도 삶의 현장 안에서 현존하고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야 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하늘과 땅의 징조를 분별하고 시대의 표징을 분별하게 도와주소서.” (마태 16,3 참조)

▲ 청도 삼평리는 7월 21일 이후 매일 같이 경찰의 폭력에 의해 주민들이 병원으로 후송되고, 연대 시민들의 연행이 반복되고 있다. ⓒ장영식

▲ 한국 가톨릭교회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문을 앞두고, 삶의 현장에 현존하고 계시는 연민의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장영식


장영식
 (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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