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니온이라고 불리던 콘야는 지중해에서 250킬로미터, 흑해에서 500킬로미터, 수도인 앙카라에서 남쪽으로 250킬로미터 떨어져 내륙에 위치한 해발고도 1030미터의 고원도시다. 로마제국 당시 시리아에서 에페소와 로마에 이르는 대로가 지나가는 바람에 상업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고, 풍광이 아름답고 비옥한 땅이었다. 피시디아 산맥에서 흘러내리는 강물로 비옥한
광대한 사암 지역에 퍼져있는 카파도키아는 마치 예수가 세례 후 대면해야 했던 광야를 연상시킨다. 그곳에서 예수는 사탄과 세 번의 영적 전쟁을 치르고 고요한 가운데 아침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 아침은 카파도키아에 무슬림이 밀려왔을 때도 길고 오래 유지되었다.카파도키아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 남동쪽으로 280킬로미터 떨어진 네브쉐히르 주 일대의 광활한 고원지
첫 그리스도인 순교자 스테파노는 예루살렘에서 살해당했다. 은 그 자리에 “사울이라는 젊은이”(7,58)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그 젊은이가 훗날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회심한 ‘바울로’라고 한다. 이 바울로 사도의 고향이 타르수스다. 타르수스는 지중해로 흐르는 치드누스 강 양편에 자리잡은 도시로, 기원전 333년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치드누스 강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피아 성당이 있는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여행이란 좀더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을 보면서, 전혀 다른 풍광에 놀라고 부러운 시선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도시를 떠나 인구 10만명에 그리스도인은 고작해야 50여 명 남짓 남아있다는 안티오키아를 찾아 비행기에 올랐다.안티오키아는 33년경 예루살렘
최근 콘스탄티노플의 바로톨로메오 1세 일치 총대주교가 “인종차별, 대량학살, 인종청소, 반유대주의, 경배 장소의 파괴 등은 공식적으로 거부하고 비난받아야 할 야만적인 행위”라며, 이러한 행위에 “종교의 가면의 가면을 덧씌우는 행위는 더욱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나이지리아와 수단 등지에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도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고, 시
"신은 위대하다. 신은 위대하다. 신은 오직 한 분이시고, 그분 이외에 그 누구도 없도다. 무함마드는 그가 보낸 사도이시다. 예배 보러 올지라. 성공의 길로 올지라. 신은 오직 한 분이시다."이스탄불의 아침을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도시의 사방 곳곳에 자리잡은 모스크에서 독경사인 '무아진'이 부르는 '아잔' 소리다. 역사상 최초의 무아진은 에티오
가톨릭신자로서 이스탄불을 방문한다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성 소피아 성당이다. 성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제국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종교행사뿐 아니라 국가행사도 이 자리에서 치러졌다는 점에서 ‘종교건축의 형식을 빌어 제국의 위용을 드러낸 대표적인 건축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 소피아’란 이름은 그리스도교에서 하느님에게 봉헌한 세 가지 의미 가운데 ‘지혜
경부고속도로 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표지판이 있다. ‘아시아 하이웨이(Asian Highway)’. 아시아 하이웨이는 아시아 대륙 31개국을 연결하는 국제 자동차도로망으로, 길이가 14만㎞라는데, 31개국에 있는 기존 55개 노선의 도로를 국경을 초월해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을 관통하는 노선은 일본 도쿄를 출발해 후쿠오카[福岡]-부산-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인 에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 뿐 아니라 바오로 사도가 선교여행의 근거지로 삼은 안티오키아를 비롯해 타르소스, 밀레토스 등이 모두 ‘아시아’에 있었다. 여기서 아시아란 지금의 터키 땅이다. 지금은 그리스도인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무슬림’의 땅이 되었지만, 이곳 터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