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과 골목길 하나를 두고 이웃해 있는 집이 있다. 거기엔 한평 아주머니와 어르신이 살고 계신데, 아주머니가 50대 중반, 어르신이 60대 초반으로 마을에서 젊은 축에 드는 분들이다. 시골에서 그 나이면 한창 팔팔할 때라고 하는데, 어찌된 게 부부싸움을 하는 데 팔팔한 기운을 다 써버리시는 것 같다.문제는 바로 술! 어르신은 평소에는 큰 눈망울을 껌벅이
바쁜 농사철이 되면 아무래도 아이는 뒷전이 되기 쉽다. 다울이가 낮잠 자고 일어나자마자 책을 들고 와 읽어달라는데, 나는 계속 다른 일을 손에 잡았다. 밀린 설거지부터 하고, 쌀 씻어 불려 놓고, 모종해 놓은 콩에 물 주고, 옮겨 심은 고구마에 물 주고, 토마토 곁순 따주고…. 내가 계속 “잠깐만 기다려. 엄마 지금 바쁘거든.&rdq
우리 마을에는 다울이가 ‘이상한 아저씨’라 부르는 아저씨가 있다. 아저씨 기분에 따라 어떤 날은 인사도 안 받고 지나가시는가 하면, 어떤 날은 우리 집 앞마당에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끝도 없이 이야기(주로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 그분이 끈으로 주둥이를 꽉 묶은 비료포대를 지고 가시기에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더니, 나를 보며 한 마디 하
농기계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합천에 살 때는 사람이 서서 쟁기질 하듯 밀고 가며 모를 심는 이앙기만 보고 살았는데, 여기 오니 이앙기도 트랙터만 해서 흡사 전투기처럼 보인다. 그러니 몇 십 몇 백 마지기 모내기, 그까짓 게 뭐 일이겠는가. 옆에서 재깍재깍 모판 가져다 주는 사람만 있으면 하루 열 마지기 심는 것도 우습다고 한다. 문제는 기계가 움직이는 속도
이것저것 심느라 바쁜 때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무늬만 시골 사람인지라 머릿속으로 심을 때를 계산한다. 농사 관련 책을 들여다보고, 마을 사람들이 뭘 심나 눈여겨보다가 ‘그럼 이쯤에서 심어볼까?’하고 움직인다. 그러다보니 뭐든지 한 박자 늦을 수밖에 없다. 박자만 늦나? 풀도 대강 매고, 거름도 거의 안 하니 어르신들 보기에 밭 꼴
지난 해 11월, 우리 가족은 경상도 합천에서 전라도 화순으로 이사를 했다. 경상도에서 전라도 사이 그 마음의 거리만큼이나 우리 삶에는 큰 변화가 따랐다. 따끈따끈한 구들이 깔린 흙집에서 기름 보일러가 설치된 콘크리트 벽돌 집으로, 유기농 농사만 짓는 마을에서 제초제와 비닐 없이는 농사 못 짓는 마을로, 사실 거기에서 여기로 온다는 게 얼마나 두려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