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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4]
정청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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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15  13: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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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린 밀을 만지며 오늘도 똑같은 얘길 나누고 있는 두 사람...우리 신랑과 한평 아주머니.

우리 마을에는 다울이가 ‘이상한 아저씨’라 부르는 아저씨가 있다. 아저씨 기분에 따라 어떤 날은 인사도 안 받고 지나가시는가 하면, 어떤 날은 우리 집 앞마당에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끝도 없이 이야기(주로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

그분이 끈으로 주둥이를 꽉 묶은 비료포대를 지고 가시기에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더니, 나를 보며 한 마디 하신다.
“뱀 한 마리 가져갈라요? 이게 장어나 마찬가지여. 괴기 안 먹으면 이거라도 먹어야제 어찌 힘을 쓴다요.”

요즘 뱀 잡으러 다니신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정말 뱀을 잡아오시는 모양이었다. 맨손으로 잡으셨는지 눈에 보이는 다른 장비는 아무것도 없다. 저걸 가마솥에 넣고 푹 삶아 뱀탕을 해서 드신다나 어쩐다나. 가끔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불러 뱀탕 파티를 열기도 하신단다.

“내가 죽을병 걸려서 여기 와서, 뱀 잡아먹고 살아났소. 이게 완전 약이여 약!”
아저씨가 눈을 부릅뜨고 이 얘길 하시는데, 나는 아저씨 얼굴이 뱀처럼 보여 소름이 오싹 돋았다. 아저씨 눈에는 뱀은커녕 육고기나 생선회도 못 먹는 우리 신랑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일까. 이상하다 못해 안타까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며, 또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

부모가 고기를 안 먹어도 아이는 챙겨 먹여야 한다부터 시작해서, 텔레비전도 없이 뭔 재미로 사냐, 전에는 어쨌는지 몰라도 여기서는 친환경 안 된다, 쓰레기는 그냥 태우면 간단할 것을 왜 비싼 돈 주고 봉투 사서 담냐까지, 오늘도 줄줄이 이어졌다. 그러다가는 또 아저씨의 ‘농약으로 논 농사짓기’ 설교가 이어진다. 모 심을 때는 무슨 약을 하고, 심고 나서 며칠 뒤 무슨 약을 하고, 또 며칠 뒤 뭐를 하고…,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딱지가 않을 지경인데 또 그 얘길 하신다. 우리 신랑이 농약 값이 없어서 농약 못 친다고도 하고, 약 치면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농약 가까이에도 못 간다는 말도 하고, 하여간 농약 안 친다는 얘길 여러 번 했는데도 왜 자꾸 그 얘길 하시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한 건 늘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게 비단 이상한 아저씨 한 분의 일이 아니라는 거다. 뒷집 아저씨는 만날 때마다 산성 체질 알칼리성 체질 이야기를 하신다.
“배울만치 배운 사람들인께 내 말 잘 알아들을 것이여. 우리 몸 체질에는 산성 알칼리성이 있단 소리 들어봤제? 이게 체질이 산성이라야 병이 안 오는 것이여.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산성으로 만들 수 있냐. 생감자즙! 그것만큼 존 약이 없어라우.”

그 얘길 하고 또 하고 하시는데 감히 그 앞에서 “산성이랑 알칼리성이 앞뒤가 바뀐 것 같은데요.”란 말을 내뱉을 수가 없다. 그냥 속으로만 ‘저렇게 생감자즙을 예찬하시는 분이 왜 감자를 안 심으셨을까’ 그런 생각을 할 뿐이다.

또, 눈이 안 보이는 도리실 할머니는 우리 집에 놀러 오실 때마다 살아온 이야기를 하며 눈물 바람을 하신다. 큰 아들이 약혼녀에게 버림 받은 뒤 농약 먹고 저 세상에 간 이야기, 아들 둘을 키우느라 힘들었던 시절에 아들 낳아주면 곡식 준다고 해서 씨받이로 갔는데 내리 딸만 둘 낳자 쌀 한 되도 못 받고 쫓겨났다는 얘기까지, 듣고 있으면 어떻게 그런 세월을 살아오셨나 싶어 마음이 짠하다.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계속해서 또 듣고 또 듣고 하다 보니 나도 지쳐 버렸다. 더구나 해야 할 일도 많고 바쁠 때는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는 소리(지팡이 짚는 소리가 나니 대번에 알 수 있다.)만 들려도 어디로 숨고 싶을 정도다.

한편, 앞집 한평 아주머니는 며칠째 보리 타작을 하고 있는 우리 신랑에게 오늘도 묻고 또 묻는다.
“이게 뭔 보리래?”
“진도에서 구한 검은 보리에요.
“방아 찧어야지 먹제?”
“밀처럼 그냥 먹는 거라니까요. 방아 안 찧어도 돼요.”
“이걸 어떻게 먹어?”
“밥에다 조금씩 섞어 먹는다니까요.”
“에잇. 내년부터 짓지 말아블어. 성가시게 이런 거 하지 말어.”

신랑과 아주머니가 몇 번을 되풀이해서 똑같은 얘길 나누는 소리를 들으니, 저절로 피식 웃음이 난다. 여기 사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더 똑같은 얘길 듣고 똑같은 대답을 또 해야 할까. 서로가 서로에게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 그 날이 오면 좋겠다.

정청라
귀농 6년차, 결혼 4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몇 달 전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마음 여린 아들 다울, 이렇게 세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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