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2]

▲ 옥수수 새싹이 올라오고 있다. ⓒ 정청라
이것저것 심느라 바쁜 때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무늬만 시골 사람인지라 머릿속으로 심을 때를 계산한다. 농사 관련 책을 들여다보고, 마을 사람들이 뭘 심나 눈여겨보다가 ‘그럼 이쯤에서 심어볼까?’하고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뭐든지 한 박자 늦을 수밖에 없다.

박자만 늦나? 풀도 대강 뽑고, 거름도 거의 안 하니 어르신들 보기에 밭 꼴이 심란하다. "제초제 안 할 거면 비닐이라도 씌워라." "비료 안 하면 먹을 게 없으니 비료 좀 해라." 걱정들을 많이 하신다. 이런 말을 평소에는 그냥 흘려듣고 마는데, 마을 어르신들의 번듯한 밭을 볼 때면 풀이 죽고 주눅이 들 때도 있다.

‘벌써 옥수수가 저렇게 컸네. 저 상추 좀 봐.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게 정말 탐스럽네. 고추 모가 어쩜 저렇게 크냐! 나도 한번 거름 듬뿍 넣어 폼 나게 농사짓고 싶네.’ 이런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특히 요즘처럼 보릿고개 시기에는 시골에 살면서 상추 쌈 한번 푸지게 못 해 먹는 것이 한이 될 때도 있다.

이런 나와는 달리 우리 신랑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 ‘비닐 씌우지 않기, 쓸데없이 김매지 않기, 거름은 만들어서 쓰고 최소한만 투입하기’ 이 세 가지 원칙에 전혀 흔들림이 없다.

먹을 게 없으면 안 먹으면 된다는 식이니 정말 속 편한 사람이다. 농사짓는 것만 그런 게 아니고 돈에 대해서도 없으면 안 쓰면 된다는 식이다. 그래도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벌을 키우거나 특수 작물을 하거나 뭔가 방법을 찾아보라는 주위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돈 안 쓰는 게 돈 버는 일이라면서 말이다.

며칠 전에는 이웃집에 온 손님을 집에서 20분쯤 떨어진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다 줄 일이 있었다. 나갈 일이 있어서 그 김에 태워주는 것도 아니고, 하던 일을 멈추고 일부러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택시를 불러서 나가면 될 것을 우리 손님도 아닌데 왜 굳이 우리가 태워다 줘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쁜 철에 눈치 없이 신세를 지는 그 손님도 얄밉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손님을 내려다 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내 속내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오지랖도 넓지, 왜 당신이 나서서 태워다 줘요? 왔다갔다 기름값이 얼만데! 내가 어디 나가자고 하면 기름값 얘기부터 꺼내면서 남한테는 후하기도 하지. 돈 안 쓰는 게 돈 버는 거라면서 왜 돈 쓸 일을 만드느냐고요. 우리 형편이 그럴 형편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다 쏟아내고 말았다. 내가 말하는 동안 신랑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우리가 날마다 누굴 태워다 준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인데 그게 그렇게 못마땅해요? 그런 심보라면 앞으로 동네 아주머니들이랑 장에 갈 때도 차비 달라고 해요. 마음속으로만 아까워하지 말고. 지금껏 살면서 청라 씨는 남의 차 얻어 탄 적 없어요? 남한테 신세 진 적 없느냐고요!”

신랑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크게 울렸다.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차가 없을 때는 나도 남의 차 얻어 타고 다닐 때가 잦았으니까. 나를 태워준 그분들은 한 번도 아까운 내색을 보이거나 생색을 낸 적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인색한 사람이 된 것일까? 가난하게 살고 싶다고, 가난 속에 행복이 있다고 믿어왔는데, 내가 왜 이렇게 변했지? 예전에는 이렇게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차 타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속이 먹먹하고 심란했다.

▲ 호박 새싹 ⓒ 정청라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를 신랑에게 맡기고 혼자 밭으로 향했다. 비가 한두 방울 내리는 터라 고추모를 옮겨심기 위해서였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내가 고추모를 심으러 간다니까 달려나와 말리셨다.

“그 째깐한 거 언제 키우려고. 그거 심지 말고 모종 사다 심어.”

“이거 토종 고추 씨앗 받은 거예요. 작아도 언젠가는 크겠죠.”

언젠가는 클 거라고 말했지만, 정말 클까 확신은 없었다. 다만 잘 크기를 바랄 수밖에. 다른 밭에 있는 고추모들은 심을 때부터 키가 크고 어느새 꽃까지 핀 것도 있지만, 우리 고추도 클 때 되면 크겠지, 믿는 수밖에.

착잡한 마음으로 고추모를 심기 전에 밭을 한 바퀴 돌아보았는데, 여기저기 새싹이 돋아 있었다. 비닐 안 씌우면 새가 다 빼 먹어서 안 된다는 땅콩도 기특하게 쑥쑥 올라왔고, 늦게 심어 걱정했던 강낭콩도 어느새 쑤욱 자라 있었다. 심지어 실수로 떨어뜨린 옥수수와 동부도 새싹을 틔우고 땅 위로 기운차게 올라왔다.

새싹들을 보고 있자니, 그제야 내 마음이 살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모든 축복과 기적은 내 계산 너머, 안 보이고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온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까. 싹이 날까 안 날까, 고추모가 클까 안 클까는 내 계산과 능력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에 맡길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을! 특별한 경제활동 없이도 먹고 살 수 있을까, 돈 없이도 살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불안은 믿음 없음의 증표인 것을!

새싹을 보며, 내 마음이 다시금 한없는 고마움과 사랑으로 차올랐다.

정청라
귀농 6년차, 결혼 4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몇 달 전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마음 여린 아들 다울, 이렇게 세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