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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우와, 다울이 놀이터다!"[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5]
정청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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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29  11: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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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농사철이 되면 아무래도 아이는 뒷전이 되기 쉽다. 다울이가 낮잠 자고 일어나자마자 책을 들고 와 읽어 달라는데, 나는 계속 다른 일을 손에 잡았다. 밀린 설거지부터 하고, 쌀 씻어 불려 놓고, 모종해 놓은 콩에 물 주고, 옮겨 심은 고구마에 물 주고, 토마토 곁순 따주고…….

내가 계속 “잠깐만 기다려. 엄마 지금 바쁘거든” 하며 일을 하자 다울이는 심술이 났다. 안 익은 토마토를 따고, 고구마순을 발로 밟는 행동으로 소리 없는 시위를 한다. 그 속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화가 나는지 소리를 꽥 질러 아이를 울리고 말았다.

이럴 때는 마을에 다울이랑 함께 어울려 놀 또래가 없는 것이 정말 속상하다. 집에 텔레비전이 있으면 한창 바쁠 때 조금 수월하려나 하는 이상한 생각까지도 든다. 그러다가 다 내려놓고 다울이랑 저수지에 놀러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수지에 물이 다 말라서 흙 놀이하기 딱 좋겠다 싶어서 말이다. 저수지 가에 있는 뽕나무에서 오디를 따야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 물이 마른 저수지가 다울이의 놀이터가 됐다. ⓒ정청라

“다울아, 우리 저수지 가서 놀까?”

“응! 엄마랑 같이 저수지 갈래. 야, 신난다!”

다울이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환하게 웃었다. 저수지까지 풀숲을 헤치고 가야 하기에 장화를 신고 오디를 담을 그릇을 하나 들고 집을 나섰다.

가는 길에 논둑과 도랑에서 올챙이와 개구리, 송사리도 실컷 보고 긴 막대기도 찾아서 폼 나게 들었다. 저수지에 다다르니 다울이가 소리쳤다.

“우와, 다울이 놀이터다!”

그러더니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맨땅을 밟고 걷는다.

“야, 가시 있으면 어쩌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나도 신발을 벗었다. 곳곳이 갈라진 저수지 바닥은 밟아 보니 꽤 촉촉했다. 또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워서 마치 초코케이크 위를 걷는 듯했다. 저수지 바닥에는 이미 새 발자국, 짐승 발자국이 선명했는데, 그걸 보면 물 빠진 저수지가 우리 말고도 꽤 많은 친구들에게 신나는 놀이터인 모양이었다.

   
▲ 초코케이크처럼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저수지 바닥 ⓒ정청라

나는 다울이가 노는 것을 보고 그대로 한번 따라해 보기로 했다. 여기저기 걷다가 뛰다가, 흙바닥에 있는 작은 구멍을 막대기로 콕콕 찔러 본다. 그러다가는 털썩 주저앉아 흙으로 뭘 만들기 시작한다.

“뭐 만들 거야?” “빵!” “엄마는 똥 만들어야지.” “나도 똥 만들래.”

그렇게 한참을 조물락거리며 놀았다. 괴물도 만들고, 눈사람도 만들고, 떡도 만들고,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 막대기 꽂아 축하 노래도 부르고……. 그러다가 마침내 흙공을 만들어 높이 던지며 놀았다.

“엄마, 바위에 올라갈래.”

우리는 저수지 가운데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도 올라갔다. 물이 가득 차 있을 때는 섬처럼 보이던 바위인데, 우리가 그 섬 위에 올라타다니! 우리를 섬과 같았던 바위 위에 올려놓은 지금 이 시간이 마치 마법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또, 오디를 따러 비탈진 저수지 가에 올라갔다가 거기서 내려오며 미끄럼틀도 탔다. 모래가 흘러내리는 미끄러운 비탈을 거슬러 오르는 것도 얼마나 재미있는지, 다울이 못지않게 나도 꽤 신나게 놀았다. 오디는 얼마 없어서 거의 못 땄지만, 별로 아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 움큼 입에 넣고 먹었으니 그걸로 됐지, 뭐.

그런데 놀이에 빠져 있던 다울이가 갑자기 땅 위에 돋아난 풀 포기를 한 움큼씩 캐서 모으기 시작했다. 뭘 하려나 싶어 가만히 지켜보았더니 캐낸 풀을 다른 자리에 옮겨 심는 것이 아닌가. 누가 농부의 아들 아니랄까봐 모종 옮기는 놀이를 하다니! 너무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혼자 보기 아까운 광경이었다. 이래서 보고 자라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 걸까? 그렇다면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허투루 살면 안 되겠구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 넓은 놀이터에서 다울이와 나 단둘이만 놀다 보니, 마음 한구석이 조금 허전하다. 마을에 아이들이 있다면 모두 함께 모여 한바탕 진창 놀 텐데. 비가 오면 사라지는 놀이터, 일 년 가운데 한때만 나타나는 이 특별한 놀이터에서, 함께 놀 수 친구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 "누가 농부 아들 아니랄까봐 모종 옮기는 놀이를 하다니!" ⓒ정청라

   
ⓒ정청라

정청라
귀농 6년차, 결혼 4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몇 달 전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마음 여린 아들 다울, 이렇게 세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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